특히 점심은, 점심 시간대에 식당이나 카페가 있는 마을을 만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대비책은 바게트 샌드위치였다. 사실, 우리의 바게트 샌드위치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바게트 사이에 성의 없이 치즈 조각을 꽂아 넣은 듯한 유럽식 샌드위치에 책정된 가격은 적정한 가격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까미노 길에 아무 준비 없이 들어선 첫날 묵었던 훈토 알베르게에서 다음날 점심때 먹으라고 싸준 바게트 샌드위치가 그 첫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샌드위치는 “이런 맛에 먹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나는 맛이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매일 점심 바게트 샌드위치 먹는 맛에 푹 빠졌던 것 같다 (바게뜨 샌드위치에 대한 에피소드는 제3화 "때로는 모르는게 약이다"를 참고하세요).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한 우리의 만반의 준비는 이러했다.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서면서 근처에서 갓 만든 바게트 하나를 사서 배낭 옆에 꽂아 넣고, 샌드위치를 만드는데 필요한 칼, 치즈, 약간의 야채, 잼 등은 늘 우리의 배낭 안에 있었다. 사실 이러한 만반의 준비는 약간의 컨닝으로 터득된 것이었다. 어느 날 길가에 앉아 작은 칼로 빵을 자르고, 그 안에 생햄, 치즈를 슉슉 넣고 바로 먹기 시작하는 순례자 모녀를 보게 되었고, 우리는 ‘아 저렇게 먹으면 되는구나’ 하고 바로 그 날 작은 칼을 하나 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지금까지 매일 해왔듯이 주변 빵집 위치를 파악하러 나섰는데, 이상하게도 작지도 않은 마을에서 빵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빵집의 위치를 파악하고 내일 아침에 몇 시에 문을 여는지도 파악해둬야 오늘의 일과가 마무리되는데 난감했다. 알베르게 주인에게 물어봐도 여긴 빵집이 없다고 했다. 빵집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내일 걸어가며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빵을 살 수 있길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두리번거리는 눈은 열심히 빵집을 찾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주 보이던 빵집이 그 날 따라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가 걷고 있는 길 건너편에 하얀 밀가루 색을 연상시키는 흰색의 벤 한대가 멈춰 섰다. 그리고 운전석에 있던 사람이 내려 벤의 뒷문을 열고 바게트가 한가득 담긴 상자를 꺼내 옆에 보이는 가게에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도 빵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냉큼 그 흰 벤으로 다가갔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우리는 손으로 빵을 가리키며 이 빵을 우리도 살 수 있는지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자 “Si (Yes)”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우리는 바게트 빵 하나, 우리의 식량을 무사히 구비할 수 있었다.
우리의 식량을 무사히 구비한 것에 대한 기쁨을 나누다, 갑자기 이 바게트 빵의 맛을 보고 싶어 졌다. 배는 고프지 않았으나, 이 작지 않은 마을에 외부에서 빵을 배달하러 온다면, 분명 엄청 맛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샘솟았다. 그래서 조금만 먹어 보기로 하고 바게트 한쪽 귀퉁이를 조금 뜯어 입에 넣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바게트를 뜯어먹던 중 정신을 차린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가 적지 않은 시기였기에 항상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순례자들이 있었고, 노란색 화살표를 굳이 확인하며 걷지 않아도 앞에 가는 순례자들이 가는 방향으로 가면 되었던 때와 달리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우리 앞에 걷는 순례자도, 우리를 따라오는 순례자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에게 물었다.
“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 뒤에 아무도 안 오는데…?”
남편도 이상함을 느낀 듯 말했다.
“어? 그러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그러다 우리는 이내, 점심시간이라 다들 어딘가에 멈춰 서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나 보다. 그래서 지금 걷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계속 빵을 뜯어먹으며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남은 빵으로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고, 이제 본격적으로 걸어보려고 하는데, 길 가에 있던 한 가정집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나와 우리에게 손짓을 하며 뭔가 말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래서 다가가니 여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돌아가라고, 이쪽으로 쭉 가면 안된다고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는 우리를 몸짓 발짓 손짓으로, 온몸으로 말리고 있었다.

“앗!”
그때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가 빵에 정신이 팔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순례 길이 아닌 다른 길로 한참 걸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뒤로 돌아야 했다.
꽤 긴 거리를 빵을 먹으며 힘든지도 모르고 걸어왔기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리도 만만치 않았지만, 빵 먹다 길을 잃은 경험도 처음, 이 당황스러운 기분도 처음인지라 그저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이 길에서 배운 교훈,
그 교훈을 우리의 상황에 바로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