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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 순례자 Oct 07. 2022

논비둘기와 땅비둘기

검은 아스팔트 위에 살던 비둘기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다시 가을이 되었고 벼는 고개를 숙였다. 들판이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작은 열매에 욕심을 내지 않았던 인내에 대한 보상일까? 보이지도 않았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 지나가는 바람에도 벼가 떨어진다. 영리한 비둘기 몇몇이 논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노란 열매를 만끽하고 있다. 많이 움직이지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고개만 숙일뿐이다. 딱 제 키높이만큼 달려있는 이파리를 힘껏 잡아당겨 벼를 떨어뜨리고 또 먹는다. 그렇게 회색 빛깔 논비둘기가 어느새 황금빛깔 논비둘기가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람이 멈추고, 노란 열매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바람을 기다린다. 이파리를 당기고 흔들어도 더 이상 노란 열매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논비둘기 하나가 날갯짓을 하며 뛰어오른다. 벼 이파리를 움켜쥔다. 다행히 튼튼한 줄기에 올라왔다. 그렇게 다시 식사를 계속한다. 옆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논비둘기 하나도 뛰어오른다. 실패다. 줄기가 연약한 것인지, 몸이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벼 줄기에 올라가 자리 잡은 황금빛깔 논비둘기 곁으로 비둘기가 모여든다. 우아하게 벼 줄기에 앉아 노란 열매를 먹는 그 논비둘기가 미처 입에 넣지 못한 부스러기가 논에 떨어진다. 황금빛깔 논비둘기 여럿이 어느새 회색 빛깔이 되었고, 어떤 논비둘기는 보랏빛이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 몇 곱절의 비둘기가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다니다 흙에 내려앉는다. 검은 아스팔트가 아닌 풀도 듬성듬성 나있고, 돌과 모래도 있으며, 흙먼지가 일어나는 땅이다. 많은 땅비둘기가 함께 고개를 숙여 부리로 그 땅을 파낸다. 가을은 누렇게 물든 논에만 찾아온 것이 아니라 땅에도 찾아왔나 보다. 유독 가을에 땅비둘기는 분주하다. 땅비둘기가 흙빛으로 물들어간다.


노란 가을이 지나면 황금빛깔 논비둘기는 더욱 반짝이고, 흙빛 땅비둘기는 보이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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