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초, 우리는 부르고스 (Burgos)에서 며칠을 머무르고 있었다. 며칠 동안 우리는 이 순례길을 계속 걸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두어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우리가 이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외국인 순례자들과의 대화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두 개의 질문 때문이었다.
(참고: “순례길에서 한국 사람은 왜 빠르게 걷는가?”, 오마이뉴스 2017년 8월 16일, 옥상철)
긴 이야기 끝에 나와 아내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도 경주장일 뿐인 거라면 계속 갈 필요 없다. 그만두고 다른 데로 가자.”
그러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우리를 엄습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러한 경주장에서 어떻게 나만의 페이스대로, 나만의 삶을 오롯이 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려면 여기 있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3박 4일 동안 부르고스에서 누렸던 꽤 긴 일탈과 휴식을 마무리하고, 다시 걷기로 했다.
그렇게 2016년 10월 5일이 되었다. 우리는 부르고스에서 3박 4일 동안 머물렀던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서야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나왔다 (부르고스에서 3박 4일 동안,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에서 머물렀던 이유는 "범인은..."을 참고하세요).
너무 많이 쉰 것인지, 몸은 걷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몸도 무겁고, 매우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왔다.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우리는 부르고스에서 10KM 정도 거리에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하루를 묵어갈 알베르게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에 빨래를 말리고, 침구류를 일광 건조해두고, 또 어슬렁 거리며 쉴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한 다리 위에서 엘사를 만났다. 엘사는 맨발이었다.
우리: “와우 엘사! 왜 너 여기에 있어?”
엘사: “어제 부르고스에서 쪼리 신고 돌아다녔더니 발 다친 게 더 악화됐어. 오늘은 안 걷고 쉬려고 버스 타고 여기로 왔어.”
그렇게 우리는 엘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엘사에게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지, 이곳에서 가장 너에게 인상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우리가 지난 2주 동안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을 네덜란드 사람인 엘사에게 던진 것이다. 엘사의 대답은 이랬다.
그리고 엘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희는 어떤데? 너희는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거야? 뭐가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니?”
나: “난 사실 한국사회의 사람들 간의 지나친 경쟁 그리고 비교하는 것이 싫어서 왔다. 첨엔 까미노에는 스트레스가 없는 것 같아서 좋더라. 근데 여기서도 한국 사람을 만나면 항상 묻더라, 생장에서 출발한 지 며칠 됐는지. 그리곤 천천히 왔구나 빠르구나 등등의 말을 하더라… 나의 순례길을 그들의 순례길과 비교해서, 어떠한 일반적인 기준을 적용해서 판단하더라. 그래서 여기 와서도 한국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런 현실에 스트레스받을 때가 있다.”

엘사: “그럼 한국사람들이 기준으로 삼는 게 보통 며칠 정도인데?
나: “4주, 약 한 달 정도? 많은 가이드북이 그것을 일반적인 것이라고 말하더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준에 맞춰서 가려고 하는 것 같아.”
엘사: “Really (정말)??? 네덜란드에서는 5주, 6주 정도를 일반적인 순례 기간이라고 말하는데, 딱히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 거의 없어. 나도 그렇고. 너희도 그러지 마라. 너만의 페이스로 걷고 즐겨라. 그게 너한테 좋다”
하지만, 엘사가 우리에게 던진 “그게 너한테 좋다”는 말이 “그게 나한테 좋다”로 바뀌기까지, 진정으로 우리가 그 말을 소화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고, 우리의 마음에 한 번 자리 잡은 그 틀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마다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묵상했다. 아니 그 단어들, 또 영웅담과 같은 이야기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4주, 5주, 6주…
하루에 평균 20km, 25km, 30km,

한국인 순례자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질문, 거의 의례적으로 듣게 되는 질문도 한결같았다.
이 두 질문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질문에 숨겨진 질문들…

“언제 출발하셨어요?”와 “어디에서 출발하셨어요?” 이 질문들을 들을 때마다 아팠다, 많이 아팠다. 이 질문들에 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대답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순식간에 분석당하는 게, 나의 삶이, 나의 순례가 말 몇 마디에 평가되는 게 불쾌했다.
이 질문들이 듣기 불편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나의 삶을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나의 삶을, 나를 다른 사람들과 부단히 도 비교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 질문 앞에서 나의 삶을 숫자로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고…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것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이 불편한 질문들, 숫자들에 집중한 질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이 이름도 알 수 없는,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은 한국인 순례자에게 전해졌을 때, 여지없이 돌아왔던 평가들은 나를 더욱 아프게,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걷고 계시네요”
“천천히”라는 말이 듣기 거북했다. “천천히”라는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대열에서 뒤처진 낙오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국인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어느 순간 한국말이 들리면, 한국인 순례자를 피하고자 속도를 높이던지, 낮추던지, 한국 사람이 아닌척했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 숫자의 저주를 벗어나기까지, 나의 속도로 걸어도 괜찮다는 확신을 갖기까지 나에게는 꽤 많은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점프를 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다가 작은 대합실에서, 함께 점프를 하려고 모인 순례자들과 즐거운 만담을 나누었다. 나는 다른 나라의 순례자들에게 이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는 어떠한 숫자를 연상시키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나는 한국의 가이드북에서 제시하는, 또 많은 한국인 순례자가 목표로 하고 있는 4주의 산티아고 순례길 플랜에 대해서 설명했다. 4주 동안 새벽 또는 이른 아침부터 계속 걸어야 하는 강행군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던 스페인 순례자가 그게 다 뭐냐고, 도대체 하루에 얼마를 걷든, 이 길을 완주하든 “누가” 신경 쓰느냐고, 그런 계획과 일정에 맞춰서 걸으면, 내 발만 아프다고, 나만 힘들다고…
그냥 즐겨야 한다고
그리고 그 스페인 순례자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독일 순례자, 이탈리아 순례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들의 결론은 매우 단순했다

그랬다. 그 숫자에 얽매여 나의 순례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은 ‘나’였다.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리고 내가 숫자의 굴레를 벗어던지자 자유와 평안이 나를 찾아왔다. 나의 순례, 나의 삶을 내가 사랑하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의 평가도 필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나의 삶을, 나의 순례를, 나의 까미노를 자랑스러워하는가, 아닌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