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용팝 "빠빠빠" 중에서)
링크 및 출처: "[Crayon Pop] 크레용팝 빠빠빠(Bar Bar Bar) - M/V", POP CRAYON, https://www.youtube.com/watch?v=yMqL1iWfku4)
점프는 신난다. 내가 가진 점프에 대한 기억이 많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점프는 즐겁고, 또 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은 경험이었다. 어렸을 적을 떠올려보면, 검은색 그물망 (트램펄린) 안에서 방방 뛰었던 기억과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서 건너 다녔던 기억이 난다. 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옥상과 옥상을 건너뛰었던, 위험천만했던 놀이도 생각난다. 점프를 통해서 나는 내 키보다 높이 올라가 잠깐이지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고, 공포감을 주는 다소 위험한 상황을 극복함으로써, 내가 마치 슈퍼맨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라는 착각에 빠진 적도 있다.

2009년 여름, 경북 영천 육군3사관학교에서 학사장교 54기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을 때, 점프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화산 유격장에서 받았던 산악극복 훈련, 헬기 하강 훈련, 막타워 훈련에서 나는 다소 겁나는, 아니 많이 겁나는 ‘점프’를 해야 했다. 줄 하나에 몸을 의지해 ‘점프’를 하기 직전에, 나에게는 상당한 긴장감과 불안함, 떨어져서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등이 쉴 새 없이 밀려왔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점프를 하는 일이 많이 줄어드는 것인지, 하지 않게 되는 것인지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점프를 하는 게 점점 더 두려워지는 것 같긴 하다.

2016년 9월과 10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점프는 즐거움도 두려움도 아닌 죄책감이었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모두 내 걸음걸음으로 걸어내고 싶었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중간에 버스나 기차를 타고, 800KM의 순례길을 다 걸어내지 않으면, 순수한 순례가 아니게 될 것만 같았고, 영적 깨달음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고행… 고생스럽게 뭔가를 해야만 값진 무엇인가가 보상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컨디션이 나빠도, 2011년에 했던 왼쪽 발목 인대 수술 부위가 아파와도, 그래도 걸었다.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뭔가를 이루면… 아니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2009년 독도법 훈련 때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쳤었다. 그리고 이어진 유격훈련 때, 화산 유격장까지 입소 행군 40KM, 퇴소 행군 60KM를 이를 악물고 버텨내어, 열외 하지 않고, 앰뷸런스에 타지 않고 완주했다. 이후로도 나의 왼쪽 발목은 계속 수난을 당했고,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나로 인해서 고생 고생하다가, 참고 참다가 2011년에 결국 발목 인대 재건 수술을 받았다.

나는 2016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여전했다. 순례자로서, 나는 고생스러움과 인내가 순례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나를 계속 채찍질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택시, 버스, 기차 등을 타고 일부 구간을 건너뛴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옳지 않은 행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베드벅 사건’으로 인해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참고: “범인은…”, https://brunch.co.kr/@theroadnottaken/7).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기까지, 버스에 올라타기 전까지, 버스에 타서 앉아 있을 때도, 버스에서 내려 부르고스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아 걸을 때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마음이…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왜 그렇게 마음이 불편했을까? 무엇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참 이상했다. 내 건강 상태를 생각하면, 특히 발목을 생각하면 울퉁불퉁한 길, 급경사 길, 급 내리막 길 등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또한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순례자는 어떠한 교통수단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심지어 순례길 인증서도 순례자 여권과 거기에 찍힌 스탬프만 확인하고 인증서를 발급해주지, 중간에 택시를 탔던,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든 간에 상관없다고 하던데…
그런데 처음이 어려웠지, 버스를 타고 누리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경험하고 나니, 다음에는 조금 더 쉬웠다. 급 내리막이 있는 구간을 앞두고, 우리는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편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우리의 무릎 건강이 염려된다는 매우 합리적인 이유를 계속 되뇌면서…
그리고 그늘 하나 없는 황량한 구간을 앞두고 우리 부부는 점프를 위한 매우 그럴듯한 이유들을 만들어냈다.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요상하게도, 점프를 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마다, 실행할 때마다, 실행한 이후에도 계속 뭔가 모를 불편함, 찜찜함, 죄책감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리의 점프를 범죄로 규정하는 어떠한 법도 없는데... 즉, 죄를 지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버스, 택시에 이어 기차까지… 점프를 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을 모두 경험했다. 그리고 기차에서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를 만날 수 있었다. 기차에 착석한 우리 옆에는 호주인 4인 가족이 앉아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기찻길과 나란히 나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 밖을 바라보다, 호주 4인 가족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런 느낌이 들면서,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그리고 이내 반갑게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처럼 그 호주 4인 가족도 순례길을 걷다가 ‘점프’ 중이었다. 그 점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단어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 호주인 아저씨는 이 상황이 매우 길티 하다고, 즉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가족도 우리처럼 이전에 점프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유독 길티 한 느낌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호주인 4인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두 명의 딸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막내가 청소년이었고, 걷는 게 익숙하지 않아 유독 힘들어하고 있어, 점프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내 드러났다. 우리 부부와 그 호주 4인 가족은 기차를 타고, 거의 100? 150KM를 점프 중이었다. 이전에 10, 20KM를 점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전에는 하루 정도를 점프하는 것이었지만, 기차를 탄 지금 우리는 일주일을 점프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뙤약볕 아래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다른 순례자들을 바라보는 게 미안해서, 그들이 느끼고 있을 고통을 나도 느껴봤기에 마음에 더 찔림이 있는 것 같다고 무거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호주인 아저씨가 그 무거운 대화와 죄책감을 잠시나마 벗을 수 있는 한 마디를 날렸다.
호주인 아저씨의 멋진 합리화 덕분에 잠시나마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21세기 순례자’라는 말이 주는 효과는 길지 않았고, 우리는 다시 ‘점프’의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상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전까지만 해도,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길을 찾을 때면, 최단거리, 최소 환승구간, 최소비용 등을 고려하는 게 당연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빨리 갈수만 있으면 장땡이었다. 특히 다른 사람보다 어딘가에 먼저 도착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기분 좋은 성취였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그래서는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을 어기고 불법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