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우리는 초보 순례자 딱지를 떼고, 매일매일 “그냥” 걷는 삶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초반에는 그동안 안 쓰던 근육들을 쓴 탓에 온 몸에 알이 배어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도,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신음소리를 내며 걸었고, 또 서로의 그런 모습을 보며 키득키득거렸다. 이런 상황 자체가 새롭고 그저 재밌어서 즐겼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 겪는 모든 일들에 즐거움을 느끼던 시간도 잠시, 생장을 출발한 지 대략 10일쯤 되자 매일매일 정말 그냥 걷고 있는 삶에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걷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이 시기에 나는 일기에 이렇게 딱 한 줄 적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저녁 먹고 알베르게 주변, 식당가를 산책하다가 맛보게 된 '샹그리아'였다. 우리가 지나고 있던 한 식당 외관 벽면에는, 와인잔에 오렌지 등의 달콤한 과일이 가득 담긴 샹그리아 그림이 2유로라는 글자와 함께 붙어 있었다. 궁금했다. 무슨 맛인지. 이 길에서 재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시기였기에, 무료해질 대로 무료해진 시기였기에, 새로운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을 설득했다. 저거 마셔보자고. 우리는 냉큼 샹그리아 한잔을 주문했다. 무슨 맛일지 아직은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한 잔만 시켜서 나눠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그 맛은 과연, 그간의 무료함을, 그리고 앞으로의 무료함 또한 채워줄 그런 맛이었다.
눈이 떠지는 맛이었다.

원래 우리 부부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나는 언젠가 한번 맛본 맥주와 소주의 맛이 그저 쓰기만 하여 별 호감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두통이 시작되고 피부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가 맛본 샹그리아 맛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술이 아니었다. 샹그리아를 나눠 마신 그날 밤, 남편의 피부에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샹그리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들을 알게 되고 나서 깨달았다. 결국 우리는 단 맛, 설탕 맛이 좋았던 것이었구나………).
이렇게 샹그리아에 맛들 린 나는, 그때부터 매일 저녁마다 한 잔씩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편과 한잔으로 나눠마시다가, 어느 날은 각자 한 잔씩 시키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샹그리아를 좀 더 싸게 마실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각자 한 잔씩 시키기 시작한 데다, 앞으로도 계속 마시고 싶은 마음까지 계산하면, 그리고 한잔에 2유로 하던 샹그리아는 점점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음 또한 감안하면 좀 더 합리적인 소비를 고민해야 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있던 어느 날, 장을 보러 마트에 들어갔다가 내가 원하던 것을 발견했다. 1.5L짜리 팩에 든 샹그리아였다! 나는 저녁 재료를 찾느라, 샹그리아를 못 본 채 지나가던 남편을 불러 세우려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결국 그 1.5L짜리 샹그리아 팩을 구입했다. 그리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 잔씩 나눠 마셨다. 그러고도 샹그리아는 당연히 많이 남았다. 남편은 남은 샹그리아를 버리고 가려는 눈치였지만, 나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 어떻게 이걸 버릴 수 있냐며, 내가 들고 다니던 물통에 남은 샹그리아를 모두 부어, 다시 한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오늘의 걷기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날 걷는 내내 홀짝홀짝. 남편도 내 물통을 홀짝홀짝. 그렇게 샹그리아가 주는 기쁨과 함께 벨로라도(Belorado) 라는 곳에 도착했고, 우리의 샹그리아는 동이 나있었다(지금 생각하니 음주 트래킹이었다. -_-;;;). 샹그리아 덕분에, 우리는 벨로라도까지의 하루를 아주 기분 좋게 걸었고,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벨로라도에서 자고 난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느껴지던 감기 기운이 더 심해진 것 같았고, 남편은 갑자기 온몸이 간지럽다며, 온몸을 긁기 시작했다. 나의 몸 상태야 감기인가 보다 하겠는데, 남편의 상태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길을 나서지 못하고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에 앉아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피부에 올라오는 발진 비슷한 것들의 형태와 검색을 통해 발견한 여러 가지 증상들의 사진들을 비교한 끝에... 우리는 남편이 베드 벅에 물린 것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폭풍 검색을 통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베드벅(Bed Bug, 한국어명: 빈대)은 이 산티아고를 향하는 길을 걷는 동안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로 악명이 높았다. 알베르게의 침실이 습한 경우, 해가 잘 안 드는 경우 특히 더 조심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베드벅이 번식하기 쉽고, 또 그 베드벅은 그 침대에서 순례자들에게 옮겨져 그 순례자가 다음 날 묵는 숙소의 침실에서 또 번식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서 피부 상태를 보고 베드벅에 물린 것 같으면 어떤 알베르게에서는 재워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큰일이었다. 나는 베드벅인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너무 놀라, 큰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남편은 나의 큰 목소리에 놀라며, 조용히 이렇게 속삭였다.
“조용히 해요. 여기도 알베르게 카페인데 베드벅이라는 말 알아들으면 어떡해요.”
그래서, 나도 이렇게 속삭였다.
“네.. 진짜 배드벅이에요?”
우리는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베드벅에 물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다음 마을 알베르게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호텔이 있을 법한 가까우면서도 좀 큰 도시로 버스를 타고 '점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호텔에서 우리의 배낭, 침낭 등 모든 소지품들을 소독 및 햇볕에 건조하기로 했다. 어딘가에 또 베드벅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이 부르고스였다. 부르고스는 고딕 양식의 부르고스 대성당이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호텔에 체크인하자마자 배낭을 탈탈 털어 모든 것을 끄집어내어 햇볕이 드는 창가에 널어놓았다. 빨았던 옷들도 혹시 몰라 근처 세탁방에 가서 다시 한번 빨고 건조까지 마쳤다. 남편은 호텔 욕실에 있던 욕조에 상당히 뜨거운 온도의 물을 받아 몸을 담그도록 했다. 우리를 혹시 따라왔을지 모르는 모든 베드벅이 박멸되기를 바라며.
이렇게 대대적인 베드벅 퇴치 작전을 펼친 후 지친 우리는 호텔에 온 김에 푹 쉬기로 했다. 일단은, 약국에 가서 감기약을 샀다. 사실, 베드벅 물린데 바르는 약도 사보려고 하였으나 남편이 원치 않았다. 괜히 베드벅이라는 말을 꺼냈다가 부르고스에 베드벅 물린 순례자가 있다는 소문이 날 수도 있으며, 자기를 어디로 잡아가거나 격리시키면 어떡하냐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래서 우리는 약국에서 베드벅에 ‘베’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감기약만 사들고 와서 숙소에서 푹 잤다. 한 이틀은 최소한의 음식만 먹고 계속 잔 것 같다. 나는 감기약 덕분인지, 오랜만에 푹 잔 탓인지 이제 제법 살만해졌다. 아무것도 먹기 싫고 그냥 자고 싶었는데, 이제는 뭔가 좀 먹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잠에서 깨어 ‘부르고스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잘 자던 남편도 일어났다. 제일 먼저 살펴본 것은 당연히 남편의 피부였다.
베드벅에 물린 것으로 생각했던 발진들이 다 사라져 있었다. 간지러운 건 어떠냐 물으니 하나도 간지럽지 않다고 했다. 우리의 베드벅 퇴치 작전이 이렇게 바로 효과를 보다니?!

우리는 우리의 컨디션 회복과 베드벅 퇴치 작전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내가 찾아놓은 부르고스 맛집으로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이틀간 잠만 자느라 못 마신 '샹그리아'도 다시 주문했다. 각자 한 잔 씩!
그리고 우리는 그 날밤 깨달았다.
다시 남편의 피부에 조금씩 올라오는 아주 익숙한 발진들을 보며...
베드벅은 아무 죄가 없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