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8일, 우리 부부는 훈토(Huntto)에서 론세스바에스(Roncesvalles)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이 구간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맞닿아 있는 피레네 산맥을 타고 넘는 구간이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험난한 구간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생장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생장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 날 론세스바에스로 출발한다.
2016년 9월 17일, 생장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생장에서 1 시간도 머무르지 않았다. 생장에 있는 순례자협회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과 가리비를 받고 나니, 이제 준비가 다 마쳐진 것 같았다. 특히 순례자를 상징하는 가리비를 가방에 부착하고 나니, 우리의 모습은 그동안 사진과 영상에서 보던 전형적인 순례자와 같아 보였다. 우리는 순례자가 갖춰야 할 배낭, 신발, 스틱, 가리비 등을 모두 완벽히 준비한, 준비된 순례자처럼 보였고, 우리는 의욕과 열정이 넘쳤다.
완벽히 준비된 것처럼 느껴지는 데다가, 비가 와서 많은 순례자들이 생장에서 숙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보니, 약간의 호승심이 발동된 것 같다. 뭔가 이 비를 뚫고 훈토까지 가면, 뿌듯할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훈토까지 가보 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의욕과 무모함만을 가지고 훈토로 출발했다.

처음엔 6.5KM 정도쯤이야! 하면서 정말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내 당황하기 시작했다. 생장에서 훈토까지는 완만한 경사로 구성된 길이 아니었다. 갑자기 급격하게 솟아오른,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이 눈 앞에 펼쳐졌다.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숨이 차올랐다. 고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쉬면서 걷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러다가 배낭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 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발가락이 뽀 사질 것 같고, 배낭 무게를 허리에 분산시키려고 아무리 허리끈을 졸라매도 배낭끈이 어깨를 짓눌러 방황의 장소로 산티아고를 택한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2016년 9월 17일, 훈토에 도착했다. 훈토에 도착한 우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온 순례자들,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와 같은 숙소에서 머무르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날을 훈토에서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당황했다. 아침 식사를 먹는데, 알베르게 관리자가 점심 도시락을 구매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아! 그랬다. 우리의 배낭에는 먹을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음식을 언제 어디서나 돈만 내면 먹을 수 있는 여행지에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먹을 것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순례길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외관상 완벽히 준비된 순례자였지만, 실상은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을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매우 무모한 왕초보 순례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각각 6유로를 내고, 투박한 바게트 사이에 사과와 하몽 몇 조각 끼워진 샌드위치를 점심 도시락으로 구입했다. 우리의 순례길에 필수적인 에너지로 바뀔 샌드위치였지만, 이런 샌드위치를 6유로 내고 사야 하는 상황에 뭐가 이렇게 비싸지라며 투덜거렸다. 아마도 그 투정은 우리가 초보 순례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아침 식사 후, 우리는 함께 숙소에서 머물렀던 순례자들과 함께 론세스바에스로 출발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그 순례자들과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순례자들은 이 길을 오기 전에 정기적으로 자전거도 타고, 트래킹도 하면서 체력도 비축하고, 순례길을 연습해 왔다고 했다. 또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는 트래킹이 취미인 준프로 수준의 산악인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돈으로 살 수 있는 배낭, 신발, 몇몇 등산 용품만으로 치장된 우리는 이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해온 준비된 순례자들과 같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그 준비된 순례자들과 나누었던 인사는 마지막 인사가 되었고, 다시는 그들을 순례길에서 만날 수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우리의 속도로 피레네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오르막에 도저히 계속 갈 수가 없어, 잠시 멈춰 섰다. 눈 앞의 오르막이 아닌, 뒤를 돌아다봤다. 눈 앞에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동화 속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살고 있을 것 같은, 만화영화에서 봤던 아름다운 푸른 초장이 우리의 눈을 채웠다.
낭만적인 감상도 잠시, 다시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현실, 앞에 우뚝 서있는 오르막 길을, 아름다운 산 줄기 중간중간에 갈라진 틈처럼 생긴 오르막 길을 보니 다시 한 숨이 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한 숨이 나오는 것은…그 순간 아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며 말했다.
“저 길의 주인공이 되어 걷는 이는 힘들겠지만, 멀리 떨어져서 그 사람과 그가 걸어가는 이 풍경을 같이 바라보면 아름다울 것 같네요. 내가 살아가는 삶이 힘들어도 멀리서 바라보면, 그 힘든 삶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다시 힘을 내서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판초우의를 꺼내서 입고 나니, 비가 그쳤다. 땀과 습기에 답답해져서 판초우의를 정리해서 집어넣고 나면, 다시 비가 내렸다. 나는 사관후보생으로 육군 3 사관학교에서 훈련받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독도법 훈련을 하던 날, 정말 그 날과 비슷했다. 우의를 입으면, 비가 안 오고, 우의를 벗으면 비가 내리고… 짜증이 날래야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참고로 내가 육군 3 사관학교에서 사관후보생으서 받았던 여러 힘든 훈련들(유격, 행군, 독도법, 각개전투, PRI 등)보다도 힘든 훈련은 ’ 환복’이었다 (군대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비가 좀 그쳐가는가 싶더니 이제는 안개가 우리를 덮쳐왔다. 생전 그렇게 짙은 안개는 처음이었다. 정말 한 치 앞도 안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안개로 눈 앞이 가리어지니, 피레네 산맥에서 길을 잃고, 실족사를 한 순례자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무서워졌다. 그래서 더욱 내 발 앞만 보면서, 거의 고개를 숙이고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 두 걸음 앞은 길인지 아닌지 겨우 보였고, 등산용 스틱을 이용해 앞에 길이 있는지, 장애물이 있는 것은 아닌지를 계속 확인하면서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지 않고서 눈 앞에 있는 길만 쳐다보며 걸었다. 우리는 우리의 발이 딛고 있는, 또 다음의 한 걸음이 디딜 땅만 보면서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눈 앞의 길만 집중해서 바라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우리가 어디쯤인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잊어버리고 걸었던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초집중 상태로 길을 걷다 보니, 안개가 걷혔고, 우리는 꽤 높은 고도까지 도착했다.
아내는 일기장에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위로만 위로만, 설상가상으로 안개가, 자욱해지기 시작했다. 불과 내 앞 몇 미터, 밖에는 보이지 않고 앞서가는 순례자들도, 뒤따라오는 순례자들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길만 따라 피레네 산맥을 올라야 했다. 처음엔 안개 때문에 시야가 짧아지자 조금 불안해졌다. 앞에 어떤 길이 있는지, 아니 앞에 길이 있긴 한 건지. 낭떠러지는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한 발짝 한 발짝 계속 나가보는 수밖 에는... 그런데 계속 오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안 보여서 다행이다. 앞에 얼마나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니까 그냥 보이는 길만 보며 한 발짝 한 발짝 걷게 되었고, 앞으로 내가 이겨 내야 하는 어려움은 생각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도 1410m까지 찍을 수 있었다. 얼마나 경사가 계속되는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내 앞에 보이는 길만 따라 걷다 보니 말이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몰라 두려워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삶을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그게 다행인 거구나 깨닫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느끼는 두려움보다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두려움이 더 클 것이기에...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면 정말 두려워서 한 발짝도 못 나가겠지.”
정말 모르는 게 약이었다. 안개 덕분에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험한 경사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지를 알 수 없었고, 멀리 있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 당장의 한 걸음에 집중해야 했고, 눈 앞에 상황만을 직면해야 했다.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걷다 보니, 그 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 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고개를 숙이고 바라다보는 발 밑의 길은 그저 평평한 평지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