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사탕

첫 번째 조각

by 진언

2019년 7월 1일 월요일 오전 7시 25분, 휴일을 맞이한 J는 단잠에 빠져 있었다. 정확히는, 불안감에 휩싸여 잠들지 못한 시간을 뒤늦게 보상받는 중이었다. 어제도 그녀는 새벽 2시가 넘어 힘겹게 잠이 들었다. 의지했던 선임이 타 부서로 발령 나며, 업무를 오롯이 이끌어야 하는 부담감에 그녀는 짓눌려 있었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아찔한 순간으로 장면이 전환되었다. '괜찮을 거야.'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이내 불안감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불안감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밤새 불안감과 씨름했던 그녀는, 그 시각 핸드폰 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J야! 일어나! 아빠가 병원에 실려가셨대! J야!"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J의 귓가를 날카롭게 헤집었다. '도대체 여긴 어디지? 꿈인가?' 찢어질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그녀는 순식간에 일어나 앉았다. 서둘러 잠옷을 갈아입던 어머니가 소리쳤다. "119 구급대원의 전화였어. 아빠가 산책하시다 갑자기 쓰러지셨대. 지금 OO대학병원 응급실로 이동 중이래!" 허겁지겁 옷을 걸친 그녀는 황급히 핸드폰과 차키를 집어 들고 현관문을 뛰쳐나갔다. '침착해야 해,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J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핸들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그리곤 오른손을 뻗어 울먹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께서 산책 중에 갑자기 심정지가 온 듯해요. 서 계시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셨답니다. 함께 계시던 친구분과 행인분이 CPR을 해주신 덕분에, 다행히 구급차 도착 전에 호흡을 되찾으셨어요. 현재는 의식이 있는 상태입니다."


응급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따라 간 자리엔, 초점을 잃고 멍하니 앉아 계신 아버지가 있었다. 좌측으로 쓰러지신 탓에, 좌측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가 한가득이었다. "아빠, 괜찮아?" 차에서부터 눈물샘이 터진 J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강하고 대담한 아버지가 한순간에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응, 괜찮아. 괜찮아." 아버지는 조용히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아버지가 검사를 받으러 간 사이, 그녀는 응급실을 나왔다. 오빠에게 사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응급실 문이 열리자마자, 맞은편에 넋을 잃고 앉아 계신 아버지 친구분이 보였다. 눈물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녀에게, 70대 어르신은 본인 역시 무서웠다며 눈물을 터트렸다. 응급실을 가리키는 어르신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일상의 순간에 잠시 심장이 멈췄던 이도, CPR로 그의 생명을 구한 이도,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을 뻔한 이도 모두 삶의 경계를 경험했다. 아버지도, 어르신도, 그녀도 존재의 허망함 앞에 모두 손을 떨고 있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어머니에게 잠시 아버지 간호를 맡기고 병원을 나섰다. 입원 준비물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당시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한동안 크게 울었고, 또 한동안 감사 기도를 올린 기억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 이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야.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거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아버지가 입고 계셨던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등산복 조끼를 세탁망에 넣으려는데, 무언가 동글한 것이 여러 개 만져졌다. '이게 뭐지? 아! 사탕인가 보다!'




보름 전 어느 날 밤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저녁식사 중이었다.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아버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 요새 숨이 잘 안 쉬어질 때가 있어."

"갑자기? 요새 갑자기 그래? 아빠, 나랑 같이 병원 가보자. 내가 다니는 병원에 가보자."

"근데 신기한 게 사탕을 하나 입에 물고 있으면 괜찮아져.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 그런 것 같아."

"정말이지? 조금이라도 안 좋다 싶으면 말하는 거야, 꼭!"

"알았어. 걱정 마."


J는 주머니의 지퍼를 열어 사탕을 모두 꺼냈다. 주머니엔 8개의 사탕이 들어있었다. 그녀와 식성이 닮은 아버지는 평소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8개의 사탕은 모두 숨을 쉬기 위한 비상용이었을 것이다. 한 손 가득 담긴 사탕을 보며, 그녀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자주 그랬길래 한 줌이나 들고 다니신 걸까? 왜 난 한 번 더 여쭙지 않았을까? 왜 병원에 모실 생각은 하지 않은 거지?' 후회와 반성이 그녀의 온마음을 휘저었다. 조끼를 붙들고 한참을 울던 그녀는, 다신 부모님의 말씀을 쉬이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의 불안을 녹여주던 사탕이, 그녀에겐, 소중한 것 역시 쉽게 녹아 사라질 수 있음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날밤, 그녀는 아버지 침상 곁에 누워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잠들었다. 잠결에 손이 떨어지면, 바로 침상을 향해 손을 뻗어 아버지의 따뜻한 손을 다시 잡았다. 다음날 오전, 아버지는 그녀의 배웅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아빠, 건강하게 잘 마치고 와요. 나 요 앞에 있는 거 잊지 말고! 알았지?" 10분 후 수술실 알림판엔 아버지 이름과 함께 수술 중이라는 세 글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째깍째깍째깍, 수십 번 이어진 기도에도 불구하고 시계의 작은 바늘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가빠진 숨을 달래려, 그녀는 잠시 건물을 나왔다. 정문을 나와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눈에 들어온 벤치에 잠시 몸을 가눴다.


5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며칠 전 새벽녘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불길한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그녀를 불면의 밤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장이 멎었던 순간, 진실로 두렵고 무서웠던 그 순간,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난 도대체 자신을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생각했던 거야? 불안한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거야?' 순간, 맑은 하늘이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아이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란다. 네가 느끼는 불안은 허상일 뿐이야. 진실로 두렵고 무서운 순간은 네게 보이지 않아. 네가 두려워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고. 그저 너는 시간의 흐름을 타면 되는 거야. 그저 주어진 대로."


순간, J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과 온몸으로 맞닥뜨린 후,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마음의 평화와 마주했다. 온갖 걱정과 불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상의 중심이 그녀에서 자연으로 옮겨가는 찰나였다. 온몸을 가득 채운 압력이 조금씩 낮아졌다. '그래, 나는 이처럼 가벼운 존재였어.'




나갈 때와는 전혀 다른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녀는 다시 병원 정문을 통과했다. 얼마 후, 감사하게도, 수술실 알림판이 아버지의 회복 소식을 알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반가운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중환자실 치료를 마친 아버지는 일반 병실로 옮겨오셨다. 그날밤 J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으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아버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너 요새 불면증으로 고생한다고 하지 않았어? 보조 침대에서도 쿨쿨 자던데?"

"아빠, 나 갑자기 불면증이 사라졌나 봐. 불안이 갑자기 스위치를 끈 것 같아. 어떻게 푹 잘 수 있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라보는 J를 향해 아버지는 예의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대담한 성격답게 아버지는 빠르게 건강을 되찾으셨고, 다시는 사탕을 찾지 않으셨다. 주머니 속 사탕은 무심한 딸에겐 또 한 번의 기회를, 자아중심적 인간에겐 자연의 순리를 일깨워주었다. 2019년 7월 1일, 아버지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사탕 한 줌은 그렇게, J의 찰나의 조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