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에 묻힌 이기심

열한 번째 조각

by 진언

2020년 10월의 어느 일요일, J는 에어팟을 끼고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귓가엔 조수미의 <Mother of mine>이 흐르고 있었다.


Mother of mine, now I am grown and I can walk straight all on my own. I'd like to give you what you gave to me. Mother, sweet mother of mine.
어머니, 이제 저는 어른이 되었고 제힘으로 곧게 걸어갈 수 있어요. 어머니가 제게 주셨던 것을 이제는 돌려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 간병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J는 신체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이 곡을 들었다. 특히 이 소절이 그녀의 마음을 잡아주었다. 이 시간은 지금껏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리는, 지극히 당연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아이 같은 투정이 올라올 땐 사고 첫날을 떠올렸다. 그러면 모든 것이 감사함으로 변했다.


어머니는 대학병원을 퇴원하신 후 정형외과 전문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J는 여전히 어머니 곁을 지켰고, 그런 딸이 안쓰러우셨던 아버지는 토요일마다 딸의 자리를 대신해 주셨다. 토요일은 J의 꿀맛 같은 휴가였다. 물론 집에도 밀린 빨래와 일이 쌓여 있었지만, 푹신한 침대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달콤했다. 짧디 짧은 자유 시간은 일주일간의 피로를 녹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그렇게 일요일 오전이 되면, 그녀는 어김없이 병원으로 다시 향했다.




버스 안, 여전히 J의 귓가엔 <Mother of mine>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최면을 걸듯, 한 곡을 무한 반복 중이었다. 그때, 고소한 치킨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 그녀의 손엔 어머니가 유독 좋아하시는 동네 치킨 두 마리가 들려 있었다. 부모님과 오순도순 먹을 생각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차례였다. 버스가 속도를 줄여 정류장에 다가갔다. 순간, 어디선가 날 선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그녀는 부모님의 연이은 사고 이후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눈앞이 아찔해졌다. 버스에서 내린 그녀는 보행자 대기 공간에 다가가 사이렌이 울리는 맞은편을 바라봤다. '설마?' 사이렌 소리는 어머니가 계신 병원 근처에서 울려 퍼졌다. 그때 건물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병원이었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황급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병원 우측 현관에 다다르자,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에서 빨간 불길이 벽을 타고 치솟고 있었다. 그녀는 쥐고 있던 가방과 치킨을 내팽개치고 병원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곤 울부짖으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엄마!! 아빠!!!!"


건물 안에 들어가자, 귀를 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심장 박동을 더욱 높였다. 건물 안은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극도로 긴장한 J는 발을 헛디디며 여러 차례 휘청거렸다. 몸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계속 넘어지다 결국 손으로 계단을 짚으며 올라갔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3층에 도착하자, 감사하게도, 어머니를 업은 아버지를 만났다. 안도의 한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곳은 몸이 성치 않은 환자들로 가득한 정형외과였다. 엘리베이터 안은 위층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타려면 빨리 타요, 빨리 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악! 악!" 짓눌린 사람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쏟아졌다. 결국 어머니를 업은 아버지는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와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아버지 뒤에서 어머니를 받치며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그때까지 사이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건물을 빠져나오자, 현관 앞 소방차가 가족을 반겼다. 불길이 솟았던 건물 간 좁은 틈새는 검은 그을음으로 칠갑이 되어 있었다. 한숨을 돌린 J의 가족은 환자들 무리에 섞여 소방대원의 분주한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 옆 친절한 식당 주인은 의자들을 내어 놀란 환자들을 위한 안식처를 제공했다. 위급한 상황이 종료됐음을 인지한 그녀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위한 담요와 각종 소지품을 챙겨 나왔다. 병원을 나와 부모님에게 향하던 찰나, 그녀는 어머니 옆 병실의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일었다. 그리고 그녀의 뇌리에 조금 전 엘리베이터 장면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있던 자신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다 눈앞에서 멈췄다. 그녀의 눈은 속된 말로 돌아가 있었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어떻게든 부모님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삐이-익-' 엘리베이터의 만원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를 무시한 채 그녀는 있는 힘껏 부모님을 밀었다. 그 찰나,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옆 병실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점점 선명해지며 뇌리를 가득 채웠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 장면을 떨쳐내려 했지만, 얼굴은 이미 부끄러움으로 붉어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실은 302호였다. 양옆 병실엔 어머니만큼 심각한 상처를 입은 환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301호엔 근무 중 옥상에서 떨어져 척추 수술을 받은 청년이 있었고, 303호엔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한 어르신이 있었다. 평소 모녀는 두 환자와 아픔을 공감하여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치솟는 불길에 경악한 J는 그들을 완전히 잊었다. 머릿속엔 온통 부모님뿐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현장을 바라보던 그녀에게 어머니가 말을 건넸다.


"우리 옆 호실 청년 말이야. 정말 좋은 사람이더라. 먼저 대피했다가 내 걱정에 다시 건물로 들어왔었대. 아빠가 계신 걸 보고 마음을 놓았던 모양이야. 그리고 옆 호실 아주머니가 놀라 침상에서 떨어졌는데, 그 청년이 모시고 내려왔다더라고. 정말 대단하지 않니?"


당시 병원엔 관리자가 당직 간호사 한 명뿐이었다. 병원장은 사고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부랴부랴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때 301호 환자가 본인보다 더 약한 환자들의 보호자로 나선 것이었다. J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멀리 앉아 있던 301호 환자를 바라봤다. 그는 다른 환자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도 전혀 으쓱해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순간, 그녀는 공포에 질려 부모님만 좇던 자신의 이기적인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그 얼굴을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가장 건강하고 성한 몸은 그녀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포에 질려 가족 외엔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공포에 질리지 않았다면 그들을 챙겼을까?' 그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그 얼굴은 오랫동안 잔상을 남겼다.




그 후 1년이 지났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고, J는 회사에 복귀했다. 그녀는 업무와 간병을 병행하며 여전히 기진맥진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를 마치며 그녀는 좋아하는 배우의 드라마 방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악마판사>였다. 지친 몸으로 나른히 누워있던 그녀 앞에 갑자기 성당 화재 장면이 등장했다. 자신만 살겠다고 남을 뿌리치며 달려가던 인물들의 표정이 슬로 모션 장면으로 그려졌다. 그녀는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았다. 금방이라도 힘이 풀려 넘어질 듯한 사지, 희번덕거리던 눈, 그리고 허공에 울려 퍼지는 절규. 그들의 얼굴에서 그녀는 1년 전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숨이 멎는 듯했다. 그녀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속 그들은 철저히 악인으로 그려졌다. 악마판사는 악인들을 처단하기 위해 더 큰 악마로 변신했다. 멈춘 그녀의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도 악인일까?'


물론 J 역시 자신의 질문이 비약임을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이 언제나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제껏 그녀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마음 깊은 속에서 부정적 감정이 일 때마다 그녀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 모습이 자신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고, 그럴수록 타인의 못된 행동이 그녀를 더욱 자극했다.


그녀는 자신의 희번덕거렸던 눈을 떠올렸다. 그녀 역시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어머니에게 건넸던 따뜻한 미소도 떠올렸다. 다른 환자의 안타까운 소식에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정작 도움이 필요한 순간엔 그 존재를 잊은 자신도 떠올렸다. 이제 막 입사한 후배에겐 살가운 미소를 보이지만, 팀장이 주는 상처엔 저주를 퍼붓던 자신의 모습도 뒤이었다. 노래 가사처럼 그녀 안에는 수많은 얼굴이 존재했다. 그녀는 상황에 따라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될 수 있었다. 긍정과 부정의 감정을 모두 지닌 인간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면서, 나쁜 사람이기도 해.'


그녀는 자신의 부정성을 인정하고 이를 기존의 모습과 통합했다. 그러자 그녀 마음속 무거운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그녀는 그녀 자체로도 괜찮았다. 타인도 타인 그 자체로 괜찮을 것이었다. 2020년 10월의 어느 밤, 사이렌에 묻힌 이기심은 J가 자신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찰나의 조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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