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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학교 서울 May 09. 2018

일요일 아침마다

On Sunday Mornings

평일이라면 지금쯤 당신은 집밖에 나가 있겠지만, 오늘은 아직 침대 속이다. 벌어진 커튼 틈새로 빛이 어떻게 비쳐드는지 바라볼 시간도 있다. 바깥은 평소보다 조용하다.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잠잠하다. 도로 저편에서 자동차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오늘은 할 일도 별로 없다. 욕실에서 꾸물거려도 괜찮다. 평일이었다면 이를 닦으며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밤새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출근 복장으로 급히 갈아입으며 머릿속으로 오늘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을 가늠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잠깐이나마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봐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 있고 긴장할 필요도 없다. 내일 아침까지는 당신에게 뭐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없다. 창밖으로 구름떼가 느릿느릿 흘러간다. 오후 무렵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겐 한동안 입지 않았던 에든버러에서 사온 재킷이 있다. 조금 있다가 카페에 갈지도 모른다. 책 한 권이나 일기장을 들고 가 시금치를 곁들인 스크램블에그를 먹고 공원을 거닐며 오리가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 사람의 성격을 나라에 비유해 볼 수 있다. 당신은 수없이 다양한 지역으로 구성되어있다. 일하는 자아가 있고 가정에서의 자아가 있으며, 아버지에게 말할 때 맨 앞으로 나서는 자아가 있고, 노르웨이의 피오르 사진을 볼 때 얼핏 드러나는 자아도 있다. 그 모든 자아를 자르듯이 공평하게 방문할 필요는 없다. 사실 삶의 요구라는 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몇몇 소수 지역에 주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부분은 무시당하거나 미개발 상태로 머물러 있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지역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미개척지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채소를 가꿀 수 있고,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 있으며, 룸바를 추거나,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한 지역은 사람이 사는 도시의 중심가까지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지 몰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머나먼 지방이다. 일요일은 우리가 스스로를 탐험하면서 아직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면모를 발견하거나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에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업무상 요구와 타인의 기대 때문에 그 면모에 대한 관심을 서서히 몰아내왔다.


특히 서구사회에서는 꽤 오랫동안 일요일이라는 개념이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일요일은 신이 하루를 떼어놓았던 유대의 안식일을 기독교식으로 개정한 날이다.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일요일은 긍정적인 명분으로 구성된 일종의 제한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날 하루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금지사항이 있었다. 사업체는 쉬어야 하고 극장과 술집도 문을 닫아야 하며 열차편도 축소 운행되었다. 재미없는 하루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다른 일들을 할 시간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랬던 집단의 규칙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은 개인이 디지털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겠다거나 신문을 읽지 않겠다거나 하루를 반복적인 행정업무로 채우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의를 빼앗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면 정말로 위험할 수 있다. 


전통적인 안식일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은 하루는 길지만 무한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자극을 받아 24시간이라는 특별히 지정된 이 시간에 긍정적으로 몰두할 일들을 찾아야 한다는 기대감이었다. 이 시간을 절대로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은 교회에 가야 했다. 예배는 중요하지만 흔히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었던 질문을 사람들의 마음을 향해 던지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나의 인간관계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내가 실제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요일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종교적 틀에 갇혀 있었지만 그 사고방식이 해결하는 요구는 완전히 그 틀에서 벗어나 있었다.


일요일 아침의 세속적인 즐거움은 단순히 느긋함과 자유가 주는 즐거움만은 아니다. 이 즐거움은 우리 인생의 지평을 다시금 넓힐 기회가 생긴다는 느낌 - 반드시 명쾌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 과도 관련이 있다.

일요일에는 잠시 현재의 일들에서 고개를 들고 고상한 것. 조용하고 영원한 것을 향해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한다.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는데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고차원'의 의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우리는 보통 실용적이고 자기성찰에 능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면 가치관에 젖어 있는데 이런 특징을 흔히 '저차원'의 의식이라고 부른다. 저차원의 의식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꽤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곳은 누가 자기 말 좀 들어주기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호되게 비난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고통과 헛된 수고만이 가득한 곳이 된다. 그러나 세상은 또한 다정함과 열망과 아름다움과 연약한 감수성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에 어울리는 반응은 보편적인 연민과 친절일 것이다. 이때 스스로의 삶은 덜 소중하게 느껴진다. 더 이상 평온함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예상할 수도 있다. 개인의 관심사를 잠시 한쪽으로 미뤄놓고 일시적이거나 자연적인 것들. 즉 나무, 바람, 나비, 구름,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 같은 것들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사회적 지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소유는 중요하지 않다. 불만사항도 별로 급하지 않다. 이런 상태에 있는 우리를 우연히 목격한 사람들은 우리의 변화와 새롭게 발견한 너그러움과 공감 능력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고차원적 의식은 당연히 수명이 짧다. 이런 상태가 영원하길 바랄 수는 없다. 고차원적 의식은 우리 모두 중요하게 돌봐야 하는 수많은 실질적 임무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고차원적 의식에 들어가면 그 상태를 최대한 이용해 필요한 통찰력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일요일 아침이 선사하는 즐거움의 핵심은 바로 이 시간이 흔치 않고 특별한 때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일요일 저녁의 기분은 어떤가요? ©The School of Life



번역 이주혜 

편집 손꼽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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