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억 못 하는 할머니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

by 이이구

최근 들어 할머니는 자꾸 아빠를 동생이라 생각하신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막냇동생이 있으셔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버지가 막내아들이라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할머니의 기억에서는 막내자식인 아버지는 항상 할머니 집에 있었던 거 같다.

자꾸 집에 돌아가시려는 이유가 아버지가 집에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일까.

그래서 아버지는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아버지는 운전해 주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맛있는 걸 사주시는 분이었다.

집에 오셔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같이 식사를 하는 고마운 분이었다.

어딘가에 가야 한다면 같이 가주시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갔다.

할머니가 뒤에 앉으시고 아버지가 앞에서 운전하면 할머니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 할머니는 노인돌봄센터에 다니시기 시작했다.

고모네 집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시면서 센터에 가신다.

그러면 아버지는 금요일에 퇴근을 하면서 할머니를 모시고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 주말 동안 시간을 보내신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에는 다시 아버지는 할머니를 고모네 집에 모셔다 드렸다.


아버지에게 들리는 소식에 할머니는 돌봄 센터에서 잘 지내신다고 하신다.

센터에서 찍은 영상들을 시청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집에 있으면 자주 보였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시는 것에 거부감이 없으셔서 다행이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할머니는 외견적으로는 과거와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할머니는 건강해 보이셨기에 이 상황이 더욱 무서웠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할머니의 머릿속이 무서웠다고 할까.

몸의 건강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마음의 병과 그 내부는 볼 수 없다는 게 무서웠다.

확인할 수 없는 것도 그 진의를 알 수 없는 것도 두려웠던 거 같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계셨을 때는 우리 가족이랑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주 놀러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갔던 거 같은데 이젠 그런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나도 동생도 부모님도 그리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가족인데 만나는 게 쉽지 않아 졌다.

어렸을 때는 한 달에 몇 번이고 만났는데 그게 이제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섭섭했다.


할머니를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얼마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동생,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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