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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숀앤펀 Jan 17. 2024

이탈리아에서 단체관광객 따라가다 경찰서 갈 뻔한 사연

무계획 I의 나 홀로 유럽여행기 - 이탈리아(1)

Episode 1.


'제발 나는 아니길, 하나님!'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앞니가 다 깨지고 얼굴에 험상궂은 칼빵(?)과 멍으로 가득한 한 남자가 드르륵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내 내 앞자리에 앉았다. 이탈리아로 향하는 유레일 열차칸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Hi와 함께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얼른 다른 곳을 보았다.

 옷 속에 지갑을 어디다 두었더라 괜스레 온몸에 힘을 주며 지갑의 위치를 더듬었다. 하필 장거리 이동에서 이런 사람과 같이 타야 한다니.. 무섭고 불안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하는 수 없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I am from Ko.. Korea" 그랬더니 그가 매우 반가워한다.  

 "Korea? Korea saved me! I love Korea!"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뭐라고?

 알고 보니 그는 이탈리아인으로 3개월 전 스위스에서 큰 교통사고가 났단다. 상대방의 차에 탑승한 사람은 애석하게 바로 사망했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고 한다. 그도 역시 큰 피해를 입을 뻔했지만 다행히 '현대차'가 튼튼하여 그나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몇 가지 수술과 회복을 거쳐 퇴원 후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의 험악한 얼굴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마피아 조직 우두머리쯤으로 오해했던 나 자신이 괜스레 민망했다. 가만 보니 선하고 장난기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정말 심한 사고였는데 정말 '현대차' 덕분이라며, 자기가 여기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하였다. 다만 사고 충격이 커서 본국에 돌아가 정신과 치료를 좀 더 받은 후에 일상복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현대차를 구매하겠다고 했다.

 어쨌든 우리나라 자동차가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니 애국심이 솟구치며 어깨가 펴졌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지만 그런 끔찍한 사고를 경험했다니 안타까웠고,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갑자기 기차가 멈췄다. 고장이 났다고 언제 다시 출발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안내멘트도 이해 못 해 당황하고 있는 나를 그가 괜찮다고 통역해 주며 안심시켰다.

 그는 이번 사고로 인생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는 고맙다고,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겐 사랑한다고, 아낌없이 미루지 않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덧 17시간이 지나고 기차가 로마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빌며 인사했다.

"좋은 기차여행을 선물해 줘서 정말 고마워!!"


Episode 2.


 길치면서 지도도 못 읽는 여자가 여기 있다. 어릴 때부터 공간지각능력이라고는 1도 없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미아 돼서 경찰아저씨 손 붙잡고 집 찾아가는 일은 예사였다. 다 큰 성인이 돼서도 도서관을 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잃어먹어 한참을 헤매곤 했다. (이쯤 되면 바보 아니냐고 의심하겠지만 바보 아니다-_-; 이렇게 글도 쓰고 있지 않은가!)

 유럽여행 때는 어차피 길치라 숙소를 미리 예약해도 찾아가지 못하기에, 늘 역에 도착해 돌아다니며 만만한 숙소에 묶곤 했었다. 특히 이탈리아 베니스에서는 지도 보는 일을 애초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 똑같아 보이는 물길과 골목이 굽이굽이인 곳이었다. 이럴 땐 역 바로 앞 숙소가 최고다.

숙소에 짐을 풀고 주요 관광지 구경을 위해 나섰다. 도로에 관광지 이정표가 있으면 그쪽 방향으로, 아니면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가는 방향으로 무조건 걷다 보면 어디 하나라도 걸리게 되어있다.

 그날도 사람 많은 쪽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운 좋게 깃발을 들고 있는 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 단체관광객인가 보다! 저 사람들 따라다니면 주요 관광지 갈 수 있겠네?' 나이스를 외치며 깃발 들고 있는 사람 옆에 한보 떨어져 같이 걸었다. 뒤꽁무니를 따라가다간 길도 좁은데 갑자기 골목으로 들어가면 깃발을 놓칠 우려가 있었다.  그 무리를 따라다니는 인파도 엄청났기 때문에 앞자리를 공략하여 따라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난 후 도착한 곳엔 고풍스러운 양식의 멋진 건물이 있었다.

'역시 내 선택이 옳았어!' 좋아하며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외관만 구경하는 건가? 뭐지?' 일단 무리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깃발 든 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나에게 전단지 다발을 건네주곤 문 앞에 서있으라는 듯 내 몸을 문쪽으로 끌어당겼다.

'뭐지? 나 진짜 그룹에 속한 사람이라고 착각했나? 이 전단지는 관광지 안내서인가?' 당황하며 뻘쭘하게 서있는 그때였다.

"쾅!!!! 쾅!!!!! 쾅!!!!!!"

갑자기 무리의 앞에 있던 사람들이 나와 발과 손으로 문을 밀어 부수기 시작했다.

'????'

깜짝 놀라 얼이 빠져 쳐다보고 있는 내게도 그들은 소리 지르며 같이 발로 문을 차라고 하는 듯했다.

알고 보니 그 무리는 단체관광객이 아니라 시위대였고, 그 건물은 베니스 시청사였다.

주변에 있던 경찰들은 관광지 보호를 위해서 서있던 게 아니었던 듯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일제히 우르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뛰어들어간 순간 경찰들은 그제야 그들과 몸싸움하기 시작했다.

맨 앞에 멍청히 서있던 내게 경찰이 뭐라 뭐라 말했다. 주동자 옆에 전단지 뭉치 들고 있으니 아마 주동자 오른팔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난 세상 무고한 얼굴, 금방이라도 눈물 쏟을 것 같은 얼굴로 그에게 전단지 뭉치를 주고 황급히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사람들에 등 떠밀려서 그런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그런지 자꾸 넘어질 것만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가뜩이나 영어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감방에서 남은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줄 붙잡고 냅다 달렸다. 혹시라도 찾을 수 없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미로 같은 베니스의 굽이길에 고마워하며 최대한 소리가 나는 곳과 먼 쪽을 향해 계속해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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