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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Aug 18. 2023

기술제휴, 일본어 공부 그리고 일본과의 인연

어학은 이해 과목이라는 것이 天仁의 지론

天仁의 일본어 공부 하는 법 3-1화


공채 신입사원들의 연수가 끝날 무렵 그룹 인사담당 부장과의 면담이 있었다. 면담은 계열사 및 부서 배치를 위한 목적이었는데, 天仁은 모기업의 창원공장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말씀드렸다. 부장은 왜 다른 사람들은 다들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데, 공장 근무를 희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돌한 얘기이지만, "최고 경영자가 되는 것이 天仁의 목표이고, 전문가가 되려면 먼저 회사의 제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신입사원 天仁의 희망이 받아들여져 창원공장으로 발령이 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침 공장의 완제품 가공부에서도 현장 자동화와 공정 개선을 위해 신입 인력을 요청 중이기도 했다고 한다.


부임 인사차 제품 생산담당 전무 방에 들렀더니 온화해 보이면서도 날카로운 눈매의 김 전무께서 사원카드를 보시며 물었다.

“일본어가 ‘중(中)’이라고 되어 있는데, 일본어로 업무를 하는데 문제는 없겠나?”

“네? 교양 과목으로 두 학기 수강했던 경험밖에 없습니다만.”

“그럼, 중(中)이 아니지. 숙소는?”

“네. 독신자 아파트를 배정받았습니다.”

“석 달 뒤이면 일본 T사의 상호 기술제휴가 시작되고, 일본에서 먼저 출장을 오실 예정인데, 알고 계신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당장 숙소부터 옮기시게. 독신자 아파트에 있으면 동기생, 선후배들과 자주 어울리고, 술도 마시게 될 터인데, 그러면 자기 계발은 언제 하겠는가? 자네가 맡을 가공(加工) 부서 업무가 이번 기술 제휴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일세. 언어를 일본어로 하기로 해서 일본어가 원활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걸세. 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하네. 당장 일본어부터 다시 공부하시게”


김 전무의 말씀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3개월간의 신입사원 OJT(On the Job Training, 직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업무를 지도 교육을 받는 시스템)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 곧바로 회사 부근에 집을 구해 이사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일본어 학원의 기초 일본어 회화 과정에도 등록했다. 학교 때 교양 과목으로 일본어를 수강하면서 기본적인 일본어 문법은 알고 있었기에 회화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다. 50대 후반의 일본어 선생님은 매우 열심히 수업을 진행해 주셨다. 부근의 기업에 근무하신다는 남녀 직장인 5 명이 함께 공부했는데, 수업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돌아가면서 교재를 읽기도 하고, 교재 내용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교재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회화가 생각처럼 숙달되지는 않았다. 몹시 배가 고플 때 일본어로 '오나카 페코페코(お腹ぺこぺこ)'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정도의 생생한 표현을 쓰면 일본인들이 일본어를 잘한다고 인정해 줄 것"이라며 알려주시던 선생님의 농담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런데, 학원에 다닌 지 한 달이 지나고 보니 수업 출석 횟수가 채 열 번이 되지 않았다. 나름 열심히 참석하려고는 했지만, 야근, 회식 등으로 수업에 빠지기 일쑤였다. 한 달을 더 다니다가 고민 끝에 독학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본래 天仁은 외우기를 싫어하고 잘하지 못한다. 역사도 마케팅처럼 스토리텔링, 흐름으로 이해하며 공부했었다. 퇴근 후 방에서, 점심시간에, 화장실에서도 틈만 나면 교재를 펴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나름대로 얼마나 열심히 읽고, 읊조렸던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일본어 교재 한 권을 모두 외워버렸다. 어학은 이해 과목이고, 단순히 단어를 외운다고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 天仁의 지론이다.


현장의 생산, 창고 자동화 업무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공장 근무 3년이 되어 업무가 파악되자 지연스럽게 서울 사무소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서울에서는 내수영업을 담당했지만, 일본어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사내 일본어 교육에도 계속 참가했고, 승진 외국어 능력 시험에 일본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하게도 되었다. 일본 T사와의 기술제휴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김 전무님의 방향 제시와 지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어 비전공자 天仁의 일본어 공부와 일본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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