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안천인 Aug 18. 2023

일본어 공부하고 있는데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호텔 로비에서 네이티브와 대화로 배운 일본어 회화

天仁의 일본어 공부 하는 법, 3-2화


드디어 내일이면 일본 T사에서 출장을 오신다. 일본어로 얼마나 대화가 가능할까? 걱정이 앞섰지만 일본어 교재 한 권을 통째로 외우고 있으니, 잘 될 것이다. 아직 신입 사원이라 회의에 참석할 기회는 많지 않겠지만, 가능한 한 일본어로 많은 대화를 많이 해 보고 싶다. 그래서 지난주에 ‘비즈니스 일본어’라는 교재도 한 권 더 샀다. 역시 이 책에는 좀 더 고급스러운 일본어 표현들이 많다. 敬語(경어)에 대한 설명도 많았다. 예를 들면, ‘저는 天仁입니다’를 기초 교재에서는 ‘와타시와 천인데스(私は チョニン です)’라고 배웠는데, 이 책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를 사용하여 ’ 와타시와 天仁토 모우시마스(私は チョニン と申します)’라고 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역시 비즈니스 일본어 교재를 구입하기 잘했다. 기초 일본어와는 레벨이 다른 수준 높은 책이다.


기회를 봐서 질문할 문장도 몇 개 더 외웠다. '비행기 여행은 어떠셨어요?'라는 뜻의 “소라노 다비와 이카가 데시다카?(空の旅は如何でしたか)”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이게 좋겠다.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고, 대화가 자연스러워질 것 같다. 난생처음인 일본인과의 대면을 앞두고 흥분되는 가슴을 안정시키며 문장을 외우고, 또 외웠다. "하지메 마시데, 와타시와 천인토 모우시마스, 소라노 다비와 이카가 데시다카? 와타시와 천인토 모우시마스..."


다음 날, 남 부장의 지시라며 일본 출장자들이 도착하면 환담 티타임에 天仁도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드디어 일본어로 대화할 기회가 왔다. 남 부장은 공학사인데도 특이하게 영어, 일본어는 물론, 사우디 아라비아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한 분이다. 부서 회의실에서 일본 T사 나카야마(中山) 품질관리 부장, 니시무라(西村) 가공담당 과장 일행과 만났다.


명함을 꺼내며 인사를 하는데, ‘와타시와 天仁데스’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뭐야? 어제 밤늦게까지 경어 ‘天仁토 모우시마스’를 수 없이 읊조렸는데 어이가 없다. 긴장한 탓일까? 그 이후 귀를 쫑긋 하고 있었지만, 남 부장, 김 과장 등과의 대화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눈만 껌뻑이고 있는데, 남 부장이 “天仁도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한마디 해보라”라고 한다. 또다시 기회가 왔다.


“소라노 다비와 이카가 데시다카?”

이번에는 실수 없이 깔끔하게, 고급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天仁의 2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질문에 “아~ 소 데스네~”로 시작하는 답변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당황하고 있는데, 빙그레 웃음을 짓고 있던 남 부장이 끼어들었다.


“못 알아듣겠지?” “요약하면, ‘덕분에 안전한 여행이었다. 실제 오사카에서 부산까지 비행기 탑승 시간은 90분 정도인데 비해, 그 외에 소요되는 시간이 매우 많아 집에서 창원공장까지 총 8시간 넘게 걸렸다. 집이 오사카 외곽이라 집에서 공항까지 이동시간, 공항에서 대기 시간, 부산공항에서 창원까지 이동 시간 등 부대 시간이 매우 많이 걸렸다.’라는 답변이야.”


뒤통수를 한 대, 그것도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일본어 교재를 한 권 달달 외우고, NHK 아나운서의 표준어 발음으로 녹음된 교재의 히어링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인가.


일본 출장자들이 돌아가고 난 후 일본어가 들리지 않았던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어휘력이 부족하고, 직접 대면할 기회가 적고, 다양한 어휘의 히어링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 게다가  天仁보다 더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끄러워 말을 꺼내지 못하게 되고, 말할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부끄러움이 없어야 외국어 공부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래서 3가지 방법으로 다시 일본어 공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겨우 기초 일본어 교재 한 권을 외우고, 모든 대화를 잘 알아들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은 큰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도전하려던 정신은 가상한 것이었다.


첫째, 어휘력을 늘리기 위하여 모든 생각을 일본어 문장으로 바꾸어 보기로 했다. 일본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같기 때문에 기본적인 문법을 이해하고, 단어만 많이 알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패턴을 알아야 말이 되는 영어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휴대용 한일-일한 포켓 사전을 구입했다. 평소에 하는 생각, 대화를 모두 일본어로 작문하는 연습을 했다. ‘지금 길을 걸어가고 있다’, ‘도로에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는 간단한 표현부터 일본어로 만들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도 사전을 꺼내 생각을 일본어로 작문하고, 잠자리에서도 포켓 사전을 들쳤다. 거짓말처럼 일본어로 꿈을 꾸기도 했다.


둘째, 시간이 될 때마다 일본 라디오 방송을 켜 두고 들었다. 창원은 일본의 규슈(九州) 지방과 멀지 않기 때문에 후쿠오카(福岡) 라디오 방송을 비교적 깨끗하게 들을 수 있다.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간혹 야구중계라도 할 때는 몇 마디 들리는 말도 있었고, 그 수도 점점 늘어났다. 무엇보다, 일본어 특유의 인터네이션에 적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셋째, 답변을 예측할 수 있는 질문으로 일본인과 대면 대화를 시도했다. ‘비행기 여행이 어떠했냐’는 추상적인 질문을 하다 보니, 긴 답변이 나왔고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명함 크기의 종이에 “어디서 오셨습니까? 언제까지 체재하실 예정입니까? 회사에서 어떤 아이템을 취급하십니까?”는 등 어느 정도 답변의 예측이 가능한 질문서를 만들어 마치 커닝 페이퍼처럼 포켓 속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퇴근하여 시간이 될 때마다 회사 유니폼을 입고, 신분증, 명함을 지참하고 용감하게 창원, 마산의 호텔로 나갔다.  


마산, 창원지역은 공업단지다 보니 일본에서 출장 오는 분들이 많았다. 일이 끝나 로비에서 차를 마시거나, 쉬고 있는 분들이 天仁의 공부 대상이었다. “天仁이라고 합니다만,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바쁘지 않으시면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젊은 한국인이 자국 언어를 공부하겠다는데, 매몰차게 거절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몇 분은 심심하던 차에 차 한잔에 이어 맥주까지 함께 마시기도 했다. 알코올이 용기를 북돋아줘 대화가 더 자연스러워졌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연락하는 인연이 되기도 했다. 이런 天仁만의 현장 수업이 반복되면서 일본어 회화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보충할 수도 있었다.


이런 시간들이 수개월 흐른 뒤의 가을, 처음으로 2주일간의 일본 출장길에 오르는 기회가 왔다. T사의 공장은 미에현 욧카이치시(三重県四日市)라는 곳에 있었는데 주말에는 1백 km 이상 떨어진 오사카(大阪)까지 시장 조사를 나가기도 했다. 오사카에서는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걸어가는 도중에 길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저도 그리 가는 길이니 함께 가시죠. 도쿄에서 오셨어요?”라는 답을 듣고, 매우 흥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天仁의 일본어를 들은 일본인이 天仁을 일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너무너무 기뻤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몇 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NHK 아나운서의 발음을 흉내 내며 공부한 덕분에 현지인은 도쿄에서 온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부산 출신인 天仁의 한국어 억양이 일본어와 비슷해 그리 느꼈을 것이다. 어쨌든 일본어 초보 天仁에게는 너무도 기쁜 일이었다. 그 출장 이후, 일본과의 기술제휴뿐만 아니라 일본 정보 수집에 도움이 되도록 현장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들을 번역한 사전을 만들어 현장에 배포하여 많은 칭찬을 들었다. 현장 직원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용어를 정리하고 만들면서 일본어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를 만든 것이 天仁에게는 매우 큰 성과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술제휴, 일본어 공부 그리고 일본과의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