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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Aug 18. 2023

주재원, 일본 현지에 부임하니 더 어려워진 일본어

경제신문 번역, 현지인과 프리토킹, 드라마 시청으로 극복

天仁의 일본어 공부 하는 법, 3-3화


도쿄(東京)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 부임하고 보니 한국에서 보다 일본어가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TV 뉴스나 토크쇼는 말이 빠르고 생소한 단어가 많아 반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업무 상 만나는 고객과의 대화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가게에서 물품을 구매할 때나, 은행, 관공서에서 행정 업무를 보는 일상의 대화는 한국에서 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서울에서는 꽤 잘하는 일본어라고 생각했는데, 당황스러웠다. 왜 그럴까?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만났던 일본인들은 天仁을 외국인으로 대접해 주었기에 대화가 쉬웠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그런 특별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문제가 있고, 원인을 알았으니 노력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


업무와 관련된 일본어를 향상하는 방법의 하나로 매일 읽는 신문 기사를 정독(精讀)하고 스크랩했다. 대학 노트를 준비하여 왼쪽에 일본경제신문(日本経済新聞), 산업신문(産業新聞), 업계 전문지 등의 주요 기사를 복사하여 붙이고, 오른쪽에는 사전에 나오는 단어의 발음, 용례를 적으며 익혀 나갔다. 이 작업은 2년 정도 계속했는데, 일본어 실력 향상뿐만 아니라 산업, 경제 트렌드 파악 등 비즈니스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별도로 수집된 본사 업무에 관련된 정보와 주요 기사를 요약하거나, 소논문을 작성하여 본사에 보고하기도 했다. 부임 1년 후 연말에는 그룹 38개 해외지사 중 최우수 정보 보고 주재원으로 선정되어 금반지 5돈을 부상으로 받는 행운도 따랐다.


처음 얼마 동안은 일본어 스터디 그룹에도 참가했다. 오테마치(大手町) 사무실 근처에 있던 K은행 도쿄지점 주재원들이 아침 업무 시작 전에 주 3회, 매 50분 간 일본어를 공부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마침 학교 선배님이 계시기도 했고, 다른 분들도 흔쾌히 동의해 주셔서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일본어 조사'와 같은 교재도 사용했지만, 일본인 선생님과의 다양한 주제의 프리토킹이 현지 적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별 재미는 없었지만 TV 드라마를 보는 것도 어휘, 청해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노래를 배우는 것도 좋은 공부 방법 중의 하나였다. 간혹 동행했던 거래처 분들과 모임을 위해서 일본 노래를 공부해 둘 필요도 있었다. 가사의 뜻을 이해하고 음미하다 보니 일본어 공부에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할 목적으로 배웠던 이루카(イルカ)의 '나고리유키(なごり雪, 철 지난 눈)', 가야마유조(加山雄三), 타니무라 신지(谷村新司)가 부른 사라이(サライ, 고향이라는 뜻), 우미 소노아이(海・その愛, 바다 그 사랑) 등은 일본인들 앞에서도 언제든지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웃지 못할 경험도 있다. 우연히 잘못 건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멘트를 알아들을 수 없어, 들릴 때까지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던 적도 있다. 전화기 버튼을 잘못 눌러 벌어졌던 일인데, 일부러 버튼을 잘못 누르고, 들리는 멘트를 메모해 가며, 들릴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다.

“당신이 거신 전화번호는 지금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번 더 확인한 후 다시 걸어 주십시오.(貴方がおかけになった電話番号は、現在使われておりません。 もう一度確かめた上、かけ直しください)”.

존경어와 수동태가 사용되어 초보자에게는 어려웠을 수도 있는 멘트, 天仁에게는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문장이 되었다.


‘날카롭다, 예리하다’는 뜻의 ‘鋭い(するどい)'도 잊지 못할 단어 중의 하나다. 부임 후 1년 정도 지났을 때 일이었다. 회장님과 일본 M 상사 대표의 오찬 모임 후 환담 중 비즈니스로 화제가 바뀌자 일본어를 꽤 잘하시던 회장께서 갑자기 통역을 시켰다. 아마 天仁이 통역하는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하셨던 것 같다. 그때 그 뜻을 몰라 순간적으로 매우 당황했던 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스루도이’다. 전후 문맥을 파악하여 뜻을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진땀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 아찔했던 경험으로 '스루도이'는 평생 잊지 못할 단어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현지인이 아주 많이 사용하는 말을 한국 교재에서는 다루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과연, 그렇군요'라는 뜻의 '나루호도(なるほど)'가 대표적인 예다. 대화 중 남의 말을 긍정하거나, 맞장구치는 말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을 수 있는 단어인데, 한국에서는 공부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なるほど”는 그대로 사용해도 전혀 실례가 되지는 않지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라는 뜻인 “おしゃる通りです。”로 바꾸어 말하면 조금 더 고급스러운 표현이 된다는 것도 일본 현지에서 배웠다.


도쿄 지사에 부임한 지 6개월이 지난 후 일본어 능력시험 1급에 도전해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건이 되면 일본의 대학에서 공부를 더 해 볼 생각도 있었기에 준비해 둔 것이었다. 일본 현지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노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천 점 만점의 일본어 점수가 2백 여점이나 껑충 뛰었다. 좌충우돌하며 天仁의 일본어는 현장에서, 그렇게 조금씩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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