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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Oct 23. 2021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매력에 빠지다

天仁이 가장 닮고 싶은 최고의 작가、米原万里

2006년 7월 7일, 일본 TBS TV ‘News 23’은 이례적으로 4분 이상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한 작가의 죽음을 알렸다. “작가이며, 전 러시아어 통역사였던 요네하라 마리(米原万理, 이하 마리)씨가 암으로 가마쿠라(鎌倉)의 자택에서 돌아가셨습니다. 56세였습니다.”

 

“마리 씨는 최고의 러시아어 통역사로 활약했는데, 국내외에서 그 압도적인 역량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일본 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의 일 때문에 감성이 풍부하던 9살부터 14살까지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살았습니다. 프라하에서는 외국 공산당 간부 자녀 전용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그때 배웠던 러시아어가 마리 씨의 전문 분야가 되었습니다. TBS ‘시베리아 대기행’에서는 마이너스 60℃, 극한의 시베리아에서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의 역사에 남을 사건, 1991년 소련 붕괴 당시에는 고르바초프, 열친 대통령의 통역도 담당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우주비행사 아키야마(秋山豊寛)씨가 소련 우주선으로 첫 우주비행에 성공했을 때도 동시통역을 했습니다. 1992년에는 보도의 신속성을 높이 평가받아 일본 여성 방송가 간친회의 SJ상도 수상했습니다. 그 후 작가로 전환, ‘不実な美女か貞淑な醜女か(한국어판, 미녀냐 추녀냐)’로 요미우리(読売) 문학상 수상하고, 고단샤(講談社) 에세이상,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등 매우 짧은 기간에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또, 선데이 모닝 등 TV의 코멘테이터로 출연하여 날카로운 말로 시청자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3년 전에 암이 발견되어 치료했으나, 암이 재발하여 투병생활을 계속해 왔지만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리듬감 있는 특유의 문장력


사실 그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친구의 추천으로 ‘嘘つき アーニャ の真っ赤な真実(한국어판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으면서부터였다. 2001년에 출간된 책이라 교바시(京橋) 도서관에서는 지하 서고에서 꺼내 주었는데, 페이지가 슬슬 넘어가 단번에 다 읽어 버렸다.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프라하 소학교 시절 추억이 가슴에 와닿는 재미난 내용이기도 했지만, 마리 특유의 재미난 문장력도 한몫을 했다. 마리의 글은 유머스럽고, 리듬감도 좋다. 일본어는 다른 언어에 문장을 비교적 짧게 끊어 나가는 특징이 있는데, 마리의 글은 길어도 어색하지가 않다.


인간과 커뮤니케이션


이후 상세 프로필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1986년 ‘マイナス50℃の世界(마이너스 50℃의 세계) 출간을 시작으로 20년간 25권이나 집필했다. 물론 잡지에 기고한 글이나 공동 저술한 책들도 더 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몇 권의 읽은 책과 지인들의 추억을 더듬어 감히 말자면, 마리의 저술 근저에는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소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은 의문으로 시작된 주제는 초등학교의 추억에서 러시아, 동유럽의 근대사로,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은 식재료와 식문화의 역사로 뻗어 나간다. 자그마한 주제로 시작하지만, 인류학, 문화, 유머론으로 까지 다양하게 발전해 나간다.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고 결론지으며, 팬티 한 장으로 동서양의 문화적 특성을 풀어낸 것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래서, 마리의 글은 너무너무 가벼운 듯 하지만 매우 깊이가 있다.


자유스러운 토론 교육


물론 마리의 기본적인 자질이 있었기에 최고의 통역사, 에세이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소비에트 학교의 자유스러운 토론 교육이 바탕이 되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소비에트의 학교에서는 서서 책을 읽고 난 뒤 반드시 요약해서 설명을 하고 난 후 자리에 앉도록 했다고 한다. 통역에는 화자의 말속의 含意(함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과 그것을 다시 통합 정리해서 표현하는 능력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 마리는 그 기본 훈련을 프라하 초등학교 때 이미 마쳤던 것 같다. 天仁도 업무 특성상 번역, 통역을 간혹 하고 있지만, 그 나라 글을 알고, 말을 할 수 있다고 통역이 되는 것이 아니다. 통역은 단지 상대방의 말을 번역하여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련 업무에 대한 지식, 환경, 서로 다른 나라의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까지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래야 올바른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이 天仁의 지론이다.


20년간 하루 7권 多讀(다독)


마리가 다양한 주제로 박식함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많이 발표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多讀(다독)이 아니었던가 한다. 마리는 프라하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후 러시아어를 잊지 않도록 하겠다는 부친의 제안으로 주일 러시아 도서관에서 매주 서너 권의 러시아어 책을 빌려 읽었다고 한다. 대입 시험 이후 20년 동안에는 하루 평균 일곱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과 함께 걷거나 먹을 때에는 상대방과 속도를 맞추어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즐거움을 만끽하라”라고 어머니께 잔소리를 들었는데, 책은 아무리 빨리 읽어도 아무도 참견하지 많더라던 말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책을 많이 읽으며 자기를 계발하였기에 일본에 귀국 후 오히려 부족했을 일본어도 누구보다 수준 높으며, 쉽고, 리듬감 있게 적을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주변 눈치를 봐야 하는 폐쇄적인 사회


일본은 장점도 많지만, 매우 폐쇄적인 나라이다. 회사나 관공서 조직도 매우 상하 수직적 조직 구조라 자율적으로 제안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가 생겨도 모두 공동책임으로 넘겨 버리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마나베(真鍋)씨가 재직 중인 프린스턴 대학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왜 국적을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꿨냐"는 기자의 질문에 "컴퓨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기도 하지만, 동조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일본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기 때문에 늘 주변을 신경을 써야 한다. 미국에서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고, 상사도 내가 원하는 대로 연구를 하게 해 줬다"라고 답해 미국인들에게는 조크로, 생각 있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많은 충격과 공감을 얻어냈다. 마리도 일본에서 조직에 순응하도록 하는 교육만 받았다면 일본 최고의 통역사, 대작가가 되지 못했음에 틀림이 없다.


입은 여왕, 손은 하인


마리는 유머스러운 표현도 많이 남겼다. 그중에서도 ‘식욕은 식사 때 찾아온다(食欲は食事のときにやってくる)’만큼 재미난 말도 없는 것 같다. ‘입은 여왕, 손은 하인(口は女王、手は サーバント)’, 입은 여왕이시니 절대로 입을 음식에 가져가면 안 된다. 요리를 얹은 젓가락이나 스푼을 입으로 가져가야 한다.


마리는 지금까지 본 가장 닮고 싶은 작가이다. 이렇게 재능이 많은 분들은 왜 그리도 빨리 가시는지 모르겠다. 이 짧은 글로는 마리의 매력에 대해 일만 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이 글의 제목도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매력에 빠지다 1'로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기회 되는대로 출간된 책을 차근차근 더 읽어 보고 싶다. 마리를 읽으면서 한국과 일본의 주입식 교육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요네하라 마리 님의 명복을 빈다.


https://youtu.be/t8Rgjb0Hi4s


소비에트 학교 시절의 마리. 춤추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마리의 동생 이노우에 유리(井上ユリ)와 함께. 그는 '언니 마리(姉・米原万里)'라는 책을 출간하여 마리의 추억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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