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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Nov 10. 2021

역전 마라톤의 대국 일본

하코네 에키덴 이야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마라톤 대회, 하코네 에키덴(箱根驛傳)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년 이벤트다. 매년 1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10명의 주자가 도쿄 오오테마치(大手町)에서 하코네 아시노코(芦ノ湖)까지 217.1km를 왕복으로 달린다. 관동지방이 넓은 평야지대이기에 대부분의 코스는 평지이지만 하코네 목표지점 부근에서는 해발 874m까지 치고 올라갔다가 돌아올 때는 내려와야 한다.


이 대회에는 모두 21개 학교만 출전할 수 있다. 전년도 10위까지는 시드를 받아 자동 출전하고, 나머지 10개교는 예선을 거쳐 선정된다. 1팀은 출전하지 못하는 학교의 선수들 중 성적이 좋은 선수들로 구성된 연합팀이다. 여름에 열리는 고시엔 고교야구대회만큼이나 인기 있고,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이다 보니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1920년부터 시작되어 2022년에는 98회 대회가 열린다. ‘하코네 에키덴(箱根駅伝)’은 이 대회를 공동 주최하는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사의 등록상표이기도 하다.


箱根駅伝은 요미우리신문의 등록상표


이 대회는 요미우리신문 계열사인 니혼(日本) TV에서 왕복 전구간을 생중계하는데, 그 시청률이 무려 30%를 넘는다. 계속 달리기만 계속하는데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각 구간별 우승, 왕로, 복로 우승, 신기록도 발표되는데 구간마다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 각기 다른 선수들의 목표, 그 노력과 정열을 이해하면서 보면 다른 어떤 구기 종목보다도 재미가 있다.


에키덴, 역전 마라톤의 묘미 중의 하나는 릴레이라는 점이다. 자기가 맡은 구간을 전력 질주하고, 다음 주자에게 어깨띠를 전해주고 녹초가 되어 쓰러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올해 2021년 대회에서는 마지막 구간 결승점을 2km 정도를 남겨두고 1위가 역전되는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3위로 달리던 고마자와대학(駒沢大学)이 마지막 구간에서 1위 소카대학(創価大学)을 56초 차이로 따돌리며 10시간 56분의 기록으로 우승한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마라톤, 에키덴을 정말 좋아한다. ‘전 일본 대학 에키덴(驛傳)’, ‘이즈모 전 일본 대학선발 에키덴(出雲全日本大学選抜驛傳)도 ‘하코네 에키덴’과 함께 대학 3대 역전이라 불린다. 지난달에 열렸던 이즈모 에키덴에서는 도쿄고쿠사이대학(東京国際大学)이 우승했다. 지난 주말에 개최된 전 일본 대학 에키덴에서는 올해 하코네 에키덴 우승자인 고마자와대학(駒沢大学)이 명문 아오야마가쿠인(青山学院大学)에 8초 앞서며 우승했다. 마지막 주자 두 명이 목표 2km 전까지 함께 달리다가 고마자와대학의 하나오 교스케(花尾恭輔) 선수가 마지막에 스퍼트,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역전 마라톤에 대한 인기를 반영해 하코네 에키덴 이야기가 소설로 탄생하기도 했다. 제135회 나오키 상을 수상한 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 씨는 2006년 하코네 에키덴을 무대로 한 소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風が強く吹いている)’를 발간했다. 다이토분카대학(大東文化大学), 호세이대학(法政大学)의 마라톤 감독과 선수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취재, 집필, 탈고하는데 6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지금도 인기가 많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하코네 에키덴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청순 소설이다. 가케루에게는 고교시절 불상사를 일으켜 육상부에서 퇴출당한 씁쓸한 경험이 있어 육상과는 관계가 없는 간세대학(寛政大学)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는 달리는 것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힘든 날을 보내던 가케루는 어느 날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도박으로 날리고, 결국 편의점에서 빵을 훔치게 된다. 빵을 훔쳐 전속력으로 도주하던 중,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자전거로 쫓아와서 묻는다. “달리는 걸 좋아하니?” 이 인연으로 카케루에게 다가온 기요세 하이지와 함께 10명이 훈련에 돌입한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골을 목표로 해 어깨띠를 묶음으로써, 동료와 연결되어 간다. 빨리가 아니라 강하게 달리며, 개성 강한 열 명은 하코네 에키덴 예선을 통과한다.


바람의 저편이 목표


‘바람이 분다. 바람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곳에 찾고 있는 답이 있으리라’ 그렇게 믿으며 달린다. 젊은 청춘들이 가고 싶은 목표는 하코네가 아니었다. 달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어딘가, 좀 더 멀고 좀 더 깊고 아름다운 장소,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높은 곳으로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하이지는 말한다. ‘역시 생각만 해서는 안돼. 소원은 입 밖에 내야 해. 자, 나가자 하코네 에키덴에.’ 운명은 스스로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 힘이란, 달리기란, 산다는 것, 모든 것은 바람의 저편에 있다. 희망은 우리 가슴속에 있고, 눈앞에 길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달린다. 에키덴의 묘미 중의 하나는 여러 명의 주자가 함께 달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록을 위해 달리기도 하지만 팀원을 배려하여 최선을 다한다. ‘혼자가 아니었다.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언제라도, 언제까지나 기다려주는 벗들이 있었다.’ 에키덴은 그래서 재미가 있다.


하코네 에키덴 주 스폰서인 삿포로 맥주는 학생 대회인 만큼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글을 광고 카피로 4년 동안 내보내기도 했다. 매년 성인식 날이면 작가 이주인 시즈카(伊集院 静) 씨가 성인이 되는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글을 신문에 게재하는 산토리 위스키의 광고 글처럼 말이다. ‘달리는 것에 대해 말한다’ 제4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슴 뭉클한 카피가 나왔다.


‘달릴 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의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떠난다. 하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다. 구름은 그저 손님일 뿐이야.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이다. 더운 날에는 더위를 생각한다. 추운 날에는 추위를 생각한다. 힘든 일이 있는 날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조금 빡빡하게 한 바퀴 여분으로 달리기로 했다. 그리고 뒤에 오직 하늘만 남긴다.'


이렇듯 일본의 마라톤 역사는 오래되었고, 인기 스포츠 중의 하나다. 마라톤 대회도 뉴욕 마라톤이 1970년, 런던 마라톤이 1981년부터 시작된데 비하면 그 역사도 훨씬 오래되었다. 특히, 2차 대전 패전 후 국가재건을 위한 분위기 조성의 일환으로 많은 기업들이 스포츠팀을 창단해,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좋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이 최근 국제대회의 성적이 좋지 않아 울상이다. 에키덴 선수들은 좋은 기록을 내고 있는데, 정규 국제대회의 성적이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 정규 풀 코스보다는 에키덴 하프코스의 흥행에 너무 집중한다는 비판도 있다. 혹자는 쉬지 않고 너무 열심히 연습만 한다고도 한다. 황영조, 이봉주 선수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다시 번 새겨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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