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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May 12. 2023

도시락 천국 일본, 그 뒤에 감춰진 엄마들의 애환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도시락에서 해방되는 일본의 엄마

점심시간 시내 사무실이 많은 곳에서는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직장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편의점이나 도시락 트럭 네오포차ネオ屋台에서 구입한 도시락을 들고 가는 모습이다. (주*1) 이 도시락은 사무실이나 주변의 공원에서 먹는다. 신칸센이나 장거리 열차에 앉아 역에서 구입한 도시락 에키벤駅弁(주*2)을 먹는 모습도 일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의 재미 중의 하나도 응원 온 가족들과 둘러앉아 먹는 도시락 점심이다. 우리나라처럼 치맥, 프라이드치킨이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는 만발한 벚꽃 아래 자리를 펴고 즐기는 벚꽃놀이의 주역도 역시 도시락이다. 해외에서 출장 오신 고객과의 상담 중에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공사 현장에서도, 이벤트 행사장에서도 스태프들은 도시락을 먹는다. 일본은 그야말로 도시락 천국이다. 일본에서 이렇게 도시락이 발달한 것은 우리나라의 김치, 나물처럼 액체류의 음식, 반찬보다는 튀김, 구이, 조림요리 등 비교적 건조한 음식이 많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로 보인다.


도시락의 ‘휴대 편리성'을 생각해 보면 도시락의 발달 과정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일본의 도시락 역사도 꽤 깊다. 5세기경 사냥, 농사로 집을 나설 때 ‘찐쌀’을 휴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를 도시락의 원조로 본다. 그 이후에는 농사일을 할 때나 어업, 산에서 일할 때 주먹밥을 지참했다고 한다. 이제는 도시락이 필요한 곳도 행사장, 여행, 산행, 뱃놀이, 연극 관람, 통근, 통학, 자택에서, 요리 취미 등으로 더 다양해졌다.


일본어 도시락 ‘벤토弁当’는 중국어 ‘편리하다, 편리한 것’이라는 뜻의 '便當'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전국시대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때 생겨났다고도 한다. 오다는 성에 사람들을 불러 식사를 할 때, 여러 명이 함께 밥을 먹더라도 개별적으로 음식을 차려 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간단한 식사', 그 자리에서 '나누어 먹는다配当を弁ずる'라는 의미로 ‘벤토弁当’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어떤 제품이든 필요와 함께 기술 개발이 어우러져야 시장이 성장하고 성숙한다. 도시락 용기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신사의 제사 때 깊이가 깊은 쟁반에 떡을 담고, 노송나무껍질로 뚜껑을 덮어 음식을 올렸는데 이를 도시락 용기의 원조로 본다. 물론 그 이전에는 조릿대나 대나무 잎으로 주먹밥을 감싸 휴대했다. 이후 16세기에 들어와 칠기로 만든 찬합과 도시락이 생겼고, 1897년에는 알루미늄 도시락, 1970년대에는 보온밥통이 등장한다.

1988년 일본의 편의점 수가 1 만 점포를 돌파하고, 때맞춰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되는 내열도시락용기가 개발된다. 그러자,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도시락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다른 편의점, 마트들도 도시락을 판매하기 시작하며 직장인들도 쉽게 도시락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일본은 도시락 천국이 되었다. 도시락 천국의 일등 공신인 일회용 플라스틱 도시락 용기도 이젠 환경문제로 땅에서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일본에서는 역에서 파는 에키벤駅弁도 아주 유명하다. 코로나, 편의점의 발달로 그 규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전국 약 150개 기차역에서 2,100 종류의 에키벤이 판매되고 있다. 에키벤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에키벤마다 각 지방의 특색을 살렸기 때문이다. 마니아들은 에키벤을 먹기 위해 일부러 인기 있는 역을 여행하고, 블로그에 사진, 소감을 포스팅하기도 한다. 天仁도 신칸센과 특급열차를 갈아타며 약 5시간 정도 가야 하는 후쿠이福井에 있는 거래선에 출장을 갈 때는 에키벤을 사 먹기도 한다. 기차에서 도시락을 먹으면 비록 출장이지만 여행의 묘미도 느낄 수 있어 좋다. 일본의 에키벤은 역사도 꽤 깊어 메이지 시대 철도가 생겨나면서부터이다. 1885년 오미야大宮에서 우츠노미야宇都宮까지 철도가 개통되었을 때 한 여관이 역에서 도시락을 팔기 시작한 것이 에키벤의 시초라고 한다.


도시락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마쿠노우치도시락幕の内弁当’이다. '마쿠노우치'란 가부키, 연극의 막과 막의 사이라는 뜻으로 막간에 먹는 도시락이다. 天仁의 다른 글 ‘일본 도쿄 코로나 요양시설의 도시락(https://brunch.co.kr/@thesklee/194)' 에서도 다룬 적이 있지만, 극장에서 막간에 도시락을 먹는 것은 일본인들의 또 하나 재미다. 극장에서 마쿠노우치 도시락을 판매하는 메이자明治座 그 역사가 무려 150년이나 된다.


64.8%

우리나라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 문부과학성文部科学省이 발표한 ‘21년 5월 일본 중등학교의 급식률이다. 숫자로 보면 급식률이 높아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립 중등학교와 고등학교는 개인이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엄마들은 적어도 6년 동안 아이들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초등학생도 운동부에 속한 아이들은 개인이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의 정서 상 이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아이들끼리 서로의 도시락을 비교를 하게 되고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진다. 우리처럼 친구들을 둘러앉아 도시락 반찬을 나눠 먹지도 않고 각자 자신의 도시락을 먹는데도 그렇다. 도시락을 예쁘게 만들지 않으면 아이 도시락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형편없는 엄마로 낙인찍힌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업주부 엄마에게도 도시락 준비는 힘든 일이지만, 워킹맘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도시락을 준비할 때 맛도 있어야 하지만 영양 밸런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색깔, 모양 등의 외관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캬라벤 キャラ弁当’이다. 캬라벤은 밥이나 반찬을 만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모양으로 만든 도시락이다. 캐릭터와 도시락의 벤토를 합친 말 캐릭터벤토를 줄이고 가나식으로 읽은 것이다. 캬라벤은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외관을 중시하는 일본의 정서에 잘 맞는 도시락이다.


반죠식품万城食品의 조사 결과를 보면, 워킹맘 3명 중 2명은 아이들 도시락 준비가 매우 힘들다고 답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을 싸는 것보다 ‘메뉴를 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일주일 5일 동안 매번 다른 메뉴를 생각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 도시락 싸기 정보 공유사이트에서 여러 가지 메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엄마에게 “오랫동안 도시락을 싸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엄마들은 “드디어 도시락 졸업, 도시락에서 해방되었다”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한다. 도시락 천국, 일본의 또 다른 숨겨진 모습이다.


주*)

1. 신세이은행新生銀行이 '22.6.27 발표한 ‘직장인의 용돈 조사’에 의하면, 일본 직장인의 58%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34%는 집에서 만든 도시락, 24%는 시판 도시락, 그 외 사원식당 15%, 일반 식당에서 외식 13%, 기타 14% 등.

2. 역을 뜻하는 에키, 도시락을 뜻하는 벤토弁当를 합친 말 에키벤토駅弁当를 줄인 말.


도쿄국제포럼東京国際フォーラム 건물 앞에는 도시락을 파는 10여개의 네오포차ネオ屋台村가 성업 중이다.
일본의 약 150개 기차역에서 2,100 종류의 에키벤을 판매 중. 본래 300개 정도의 역에서 판매했는데 코로나로 여행자가 줄면서 에키벤 판매역도 반으로 줄었다(인터넷 사진)
연극, 가부키 막간에 먹는 마쿠우치도시락(인터넷 사진)
밥이나 반찬을 만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모양으로 만든 캐릭터 도시락, 캬라벤(인터넷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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