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디지털화, 권력자 중심의 계급사회와 복종하는 국민들
내시경 검사 예약을 위해
병원에 직접 가야 하는 나라
정기 건강검진 위내시경 검사 예약을 위해 구메(久米) 내과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내시경은 간호사와 일정을 의논해야 하는데, 직접 병원에 와서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어쩔 수 없어 의료보험증을 챙겨 도보 10분 거리의 병원에 갔다. 전화드렸던 天仁이라고 했더니 우선 접수를 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내시경 예약을 하러 왔는데 접수를 하라고? 토요일 아침 10시, 의사 2명이 상주하는 내과 병원인데 스무 명 정도의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쯤 걸릴 것 같다고 한다.
“내시경 예약만 하면 되는데 왜 일반 진료자들과 함께 기다려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했더니, 접수창구 직원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원장에게 말하라고 한다. 일본에 살면서 가능한 권력자 위주의 시스템, 뒤떨어진 디지털 환경의 일본을 이해하며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왜 나약한 환자의 불편함은 무시하고, 전화 예약을 받지 않고, 인터넷 시스템도 도입하지 않으며 병원의 편의만 생각하는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초면에 말을 놓는 의사,
자신이 권력자라는 뜻
집에서 가까워 3년 전 정기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이 병원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 난다. 가슴 X선 사진 등을 보며 60대 후반의 깐깐해 보이는 구메(久米) 원장이 말했다.
“天仁상은 별 문제가 없는 갓 같네.”
다른 의사들과는 달리 상세한 설명도 없다. 이 한 마디를 들으려고 30분을 기다린 것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혼잣말처럼 말을 하지만, 말도 놓는 듯해 보인다. 일본말은 우리말 보다도 더 존경어가 발달해 있는데, 처음 보는 환자에게 하대를 하는 것은 아니 것 같다. 반말은 권력의 표현이다. 그래도 우선 존칭으로 답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사진의 하얀 부분은 왜 그렇게 보입니까? 심장이 나쁜 것은 아닌지요?”
별 문제가 없다고 하면 그냔 돌아갈 줄 알았던 모양인지 의외라는 듯이 天仁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제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혈압이 높으면 그 부분이 하얗게 보이는데 그 정도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아.” 확실하게 반말이다. 전형적인 나쁜 일본 꼰대의 모습이다.
감정을 억제하며, 天仁도 낮은 목소리의 반말로 답했다.
“그래? 비 전문가인 내 눈에도 조금 다르게 보여 물어봤는데,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이 설명 들으려고 30분이나 환자가 기다리는 것은 불합리한 것 같네. 문제가 없으면 결과를 프린트해서 우편으로 보내줘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天仁의 반말 응대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눈이 동그래져 天仁을 쳐다보며 정중하게 말투를 바꿨다.
“아닙니다. 규정 상 검사 결과는 환자에게 직접 설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설명 잘 들었습니다.”
“네. 안녕히 가십시오. 검사결과서는 접수창구에서 드릴 겁니다.”
나쁜 일본인들은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다.
뒤처진 행정 디지털화,
권력자 중심의 계급사회 일본
구메 내과 사례를 보면 일본의 뒤처진 디지털화, 권력자 중심의 계급사회와 복종하는 국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일본의 디지털화에 대해서는 ‘아날로그 대국 일본에서 살아가기(https://brunch.co.kr/@thesklee/62
)'에서도 포스팅했던 적이 있지만 선진국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연되어 있다. 행정의 디지털화는 우리나라에 비해 10년 이상 뒤쳐져 있다는 의견도 있고, 디지털화 순위 세계 23위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실 행정 디지털화가 이루어지면 개별적인 수속, 서비스가 일관되게 디지털로 완결되고, 한 번 제출한 정보는 두 번 낼 필요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지금도 개인의 금융정보와 납세정보 등이 상호 연계되어 있지 않아 거짓 신고를 하더라도 시스템에서 찾아낼 수가 없다. 시스템이 허술하다 보니 자격도 없는 기업들이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여 받아 가기도 한다. 회사들은 아직도 결재 도장을 요구하고 있고, 은행 등 공공기관에서는 수기와 인쇄된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젊은 병원은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과 문진표를 작성하도록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은 수기로 문진표와 카르텔을 작성하고 있다. 2021년 9월 디지털청이 발족했지만,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구메 내과가 환자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편의만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일본이 계급 사회임과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말의 뜻부터 이해해야 한다. 일본인의 계층 제도에 대한 생각은 개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국가, 국제관계의 기초가 된다. 2차 대전에서 패했던 미국은 늘 일본보다 우위에 있는 나라이다 보니 미국에는 우방이라며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하수라고 생각하는 한국, 중국 등 동남아 국가에 대해서는 늘 아래로 보는 시각을 가진다. 이러한 계급 사고가 존재하다 보니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기업, 사회에도 다수 존재한다. 구메 내과의 일방적인 자기중심적인 방침에 대해서는 힘없는 환자들은 항의도 하지 않고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기만 한다.
최근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스바시 대학 명예교수가 도요게이자이, 겐다이비즈니스에 '이대로 가면 한국에 역전당한다'는 칼럼을 기고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는 일본이 지난 30년간 근본적인 경영혁신, 경제정책을 펴지 못하고 통화 정책에만 몰두한 것,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 교육의 참패, 외국어 능력의 격차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외국인 天仁의 눈에는 '행정 디지털화의 지연'과 '계급사회에 순응하기만 하여 변화를 싫어하는 국민성'이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