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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언제나 놀러 갈 수 있는 방

사랑해, 늘 함께 있어줄게

by 리안천인

얼마 전 히마리가 오전에 패밀리 서포터(*주 1) 집에 갔던 토요일의 일이다. 天仁네에는 오후에 놀러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도서관에 나가다가 집 앞에서 우연히 서포터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히마리를 만났다.


“가고이케籠池 상, 안녕하세요? 히마리 짱, 늦었네 지금 가니?”

“우~와, 파파오지상이다. 어디가?”

“응, 도서관에. 빌려온 책 반납하고, 책도 읽으려고.”

“히잉, 히마리도 도서관에 가고 싶은데”

“오늘은 안돼. 히마리 짱은 가고이케 상 집에 가야 하니까. 다음에 같이 가자”

“히잉, 그럼, 가고이케 상 집까지는 함께 가줘 “

“그래, 히마리 짱이 가고이케 상 집에 들어가는 것 보고 도서관에 갈게”

히마리는 만나면 헤어지기를 싫어한다.


가고이케 씨 집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5분 정도의 거리다. 갑자기 天仁과 함께 가게 된 히마리는 신이 났다. 가고이케 씨와 天仁의 손을 잡고, 몇 번이나 점프를 하고, 깔깔 거리며 폴짝폴짝 뛰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멜론빵과 우유를 먹었고, 밤에 자다가 동생 유 짱이 울어서 깼더라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보통 때 天仁과 외출하면 화단의 꽃도 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야기도 하느라 시간이 꽤 걸린다. 그러나 고령인 가고이케 씨가 피곤하실까 봐 히마리가 한눈팔지 않고 빨리 도착하도록 유도했다.


“天仁님 덕분에 빨리 왔네요. 고맙습니다. “

“아닙니다. 저도 좋았습니다. 히마리 짱, 잘 다녀와. 오후에 놀러 와”


히마리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天仁의 손을 잡고 흔든다. 히마리는 헤어질 때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런 모양이다.

“히마리 짱, 이제 들어가. 가고이케 할아버지도 집에서 기다리시니”

“응” 하며 들어가려고 하더니 다시 또 돌아서서 터치(*주 2)를 하자고 한다.

“그래, 터치!” 라며 터치를 했는데, 들어가려고 하던 히마리가 다시 몸을 돌린다. 이제는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자고 한다. 다음 주에는 꼭 도서관에 데려다 달라는 확약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얼마 전에 한국식 손가락 약속을 가르쳐 줬는데, 적재적소에 써먹는다.

“그래, 약속” 이라며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사랑해”라고, 한국말을 했더니 히마리도 ”나도 사랑해, 바이 바이”라고 답하며 쏙 들어간다. 히마리는 헤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돌아서서 가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는 天仁에게 볼 일이 있어 히마리가 오후에 놀러 오기로 되어 있었다. 예정보다 조금 빨리 귀가하다가 아파트 입구에서 또 히마리 가족을 만났다. 아무튼 히마리와는 외출 중에도 참 잘 만난다. 코로나 이후 거의 매 주말 함께 지내다가 오랜만에 오전에 만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밖에서 만나게 되다니 신기한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히마리는 어김없이 天仁의 손을 잡아끌고 고소다테사롱(육아살롱, *주 3)까지 함께 가자고 한다. 자동차 통행이 적은 아파트 공원 길이기는 하지만 엄마 혼자서 2살, 4살 아이 3명을 데리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여 함께 가기로 했다.


2년 정도 지켜보니 히마리는 헤어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집에서 놀 때도 그렇고, 밖에서 만나도 그렇다. 아이 마음으로 헤어짐이 섭섭한 모양이다. 그래도 헤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영국 작가 조셉 코엘료의 '추억은 사라지지 않아(おもいではきえないよ)'를 빌려다 주었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아'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야기다. 소녀 곁에서 지켜주며 늘 함께 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러나 소녀는 슬퍼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 아무 데도 가지 않아(だいじょうぶ、どこにもいかないよ).' 늘 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소녀는 가슴속에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면서 할아버지가 고이 간직했던 무지개색 팬, 장난감 자동차, 책 속에 꽂아 둔 나뭇잎도 찾았다. 그리고, '추억이란 언제나 놀러 갈 수 있는 방(おもいではきっと、いつでもあそびにいけるへやなんだって'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아버지, 손 잡아줘”, 소녀는 지금도 추억 속의 할아버지와 함께 산보하고 있다.


밝은 그림과 책의 내용이 너무 좋다고 아이 엄마가 히마리에게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4살 히마리는 소중한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 죽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다소 수준 높은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히마리 엄마의 표현처럼 '기적 같은 인연'으로 이 년 가까이 히마리를 만나 왔다. 서로의 정도 많이 깊어졌고, 히마리를 만나는 것은 늘 즐겁고 아련한 추억이 된다.


히마리야, 만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것이 운명이고,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란다. 헤어짐은 아쉽지만, 그 추억들을 차곡차곡 가슴에 담아서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렴.



주)

1. 구청에서 주관하는 아이 돌보미 서비스. 시간당 8백 엔을 부담하면 구청에 등록된 서포터가 아이를 픽업하여 자신의 집에서 돌봐준다.

2. 요즘 일본 유치원 아이들에게 하이파이브 같은 터치가 유행이다. 아이들이 하는 '터치'는 하이파이브처럼 손을 높이 들지는 않고, 악수하듯이 손만 부딪힌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하이파이브(high-five)를 일본식 영어 '하이 탓치(ハイタッチ)'라고 한다.

3. 고소다테사롱(육아살롱) : 육아 전문인력이 상주하고 장난감을 비치하여 3살 이하의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도록 만든 정부 지원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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