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히마리에게 읽힐 그림책을 고르다가 읽게 되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이 너무 좋다. 수채화로 된 그림책을 보노라니, 마음까지도 편안해 짐을 느낀다. 그림책이 가져야 할 장점을 고루 갖춘 작품인 것 같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 ’사에라’는 프랑스어 '이곳저곳'을 뜻하는 단어와 발음이 같다고 한다.
그림책은 프랑스의 식물원에서 식물학자가 일본 소녀를 만나는 인연을 그렸다. ‘식물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뿌리도 이 공기를 마시려고 땅 위로 나온다. 식물학자는 좋아하는 오솔길을 바삐 걸어가는 소녀를 보았다. 연구실. 30년 넘게 책을 읽고, 세상의 나무와 나무의 관계를 연구해 온 곳. 나는 지금도 이곳을 여행 중이다.' 식물학자는 자신의 30년 식물 연구를 여행에 비유한다.
식물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사에라. 할아버지 생신 선물로 드리려고 해바라기를 뽑았다가 관리인에게 들켰다. 그런 연유로 식물학자는 시에라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인연의 시작이다.
"너도 으아리 꽃을 좋아하는구나" 그림을 그리는 사에라에게 말을 걸었다.
“보지 마세요"
“해묵은 그루터기에서 새 생명이 나오는 것이 보이지? 움동이라고 한단다.”
식물학자는 식물원의 규칙도 모르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말썽꾸러기 소녀 사에라에게 차분히 식물 이야기를 들려준다. 식물도감도 보여주고, 해바라기 씨앗도 준다. 400살 된 아카시아 나무와 3천3백 년 된 나무의 화석도 알려주었다. 250년 된 플라타너스에게는 밤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나무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가시나무에는 왜 가시가 있는 거예요?"
“벌레나 동물에게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란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 호랑나비는 탱자나무에 알을 낳거든"
"이 가시로 호랑가시나무 꽃 속을 살짝 찔러봐. 수술이 놀라서 한데 모여들어. 곤충 다리인 줄 알고 말이야. 너는 내일 당장 아이들에게 설명하겠지. 식물학자처럼 그럴듯하게 설명하면서"
사에라는 식물에 푹 빠지며 점점 식물원의 식구처럼 되어간다.
“사에라야 너는 해바라기를 잘 키워 냈잖아. ”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한 그루 나무를 가지고 있어. 人はみな心の中に、一本の木をもっている"
언제나 말없이 기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큰 나무, 식물학자는 사에라에게 큰 나무 같은 사람이다. 사에라는 밝고 예쁜 그림과 감사의 편지를 남기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사에라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은 식물에 매료된 사에라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리라.
사에라는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식물원에 사에라의 그림을 여기저기에 걸어두니 칙칙한 겨울 빛깔 속에서도 사에라의 봄꽃, 여름 꽃들이 알록달록 빛난다. "사에라야, 내년에는 네가 키운 해바라기 씨앗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려 한다. 여름 마을의 이곳저곳에 너의 웃는 얼굴이 피어나겠지."
큰 나무 같은 식물학자와 사에라의 인연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히마리도 머지않아 天仁의 집이 있고, 히마리의 아빠가 계신 서울로 떠날 것이다. 天仁도 히마리에게 큰 나무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