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단의 한글교실, 어린이 문화교류회에도 참가
드디어 히마리의 한국행이 결정되었다. 신청했던 여권도 나왔다. 天仁은 히마리와 멀어지는 것이 너무너무 아쉽지만, 드디어 온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으니 참 잘 된 일이다. 서울에 가면 아이들을 한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겠다고 한다. 2 살 쌍둥이는 아직 말을 제대로 못 하니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일본어 그림책을 많이 읽은 히마리는 히라가나를 잘 아는 것이 오히려 한글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이들의 외국어 습득 속도는 어른보다 빠르니 히마리도 한국말을 빨리 배우고 잘 적응해 나갈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도쿄 주재원인 지인의 에피소드가 있다. 아이가 한국말을 잊어버릴 것이 우려되어 집에서는 일본어 대신 한국말만 쓰라고 했더니 아이가 그러더란다. "아빠, 내가 일본어 가르쳐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 눈에는 LG전자 선임 연구원인 아빠의 일본어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래도 갑자기 바뀐 환경에서 히마리가 받을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어 우선 天仁네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진도가 너무 늦다.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놀이 감각으로 조금씩 공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히마리가 天仁을 선생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편한 가족, 파파오지상으로 대하니 학습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天仁이 중등학교 교사 자격도 있고, 일본어 사내강사 경험이 있는 원어민 선생님인데도 이런 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아내는 국립대학의 국문학과 출신이기도 하다.
4살 아이가 단기간에 한국말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동경한국교육원을 방문했더니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 정보, 참고 자료를 주시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도쿄東京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 교육원은 샘물한글학교, 다이토민단한글학교 등 도쿄 도내 28곳의 한글 교실을 지원하고 있고, 한복체험, 사물놀이 등 다양한 우리 문화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부에서 파견 나오신 하광민 원장님은 天仁이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인연도 있었다.
동경한국학교는 '토요한글학교'를 운영하는데, 만 4살 아이부터 수강이 가능하지만 4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1년 코스라 하마리에게 기간이 맞지 않다.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에도 일본에 살고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강좌가 있지만, 초등학교 이상 아이들, 어른들이 대상이라 히마리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히마리에게는 민단의 한글학교가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다이토민단台東民団 한글학교에 문의를 했더니, 3월부터 월 1회 아이들과 놀이를 하면서 한글을 공부하는 '토요한글문화교류회'를 연다고 한다. 보통 참가자가 초등학생 이상이지만 그래도 히마리가 한국말을 하는 아이들을 접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한국에 가기까지 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은 아쉽다. 매주 월, 금요일 주 2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교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업에 참석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님 중 한 분이 한국인인 아이들이라고 하니 완전 초보인 히마리와는 레벨이 맞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개인교습도 가능해, 한글교사 김지은 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먼저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의논을 드렸더니 한 번 부딪혀 보자고 하신다. 김 선생님은 초등학생인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데, 놀이 방식의 한국어 지도 방법도 좋은 것 같고, 인정스러운 분이라 신뢰가 간다. 한국의 고향이 天仁의 선친 산소가 있는 양산이시라는데, 히마리의 한국어 공부에 큰 힘이 되어 주실 것 같다.
개인 교습을 한 번 받더니 히마리에게서 변화가 느껴졌다. 한국어를 대하는 마음가짐, 자세가 달라진 것이다. 함께 놀면서도 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말로 말하려고 한다. 놀이, 인사, 색깔, 모양 등의 간단한 단어도 조금씩 한국어로 말한다. 히마리는 친척에게 “히마리는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자랑도 하더란다.
히마리가 한글학교에 더 가고 싶다고 해서 시간이 되는대로 더 보내기로 했다. 수업은 낱말 카드로 단어 익히기, 크레용으로 색칠하며 색깔이름 익히기, 도형 그림으로도 공부한다. 김 선생님의 초등학교 1학년 따님도 한글 교실에 참여하고 있는데, 수업이 끝난 후 두 살 어린 히마리에게 한글도 가르쳐 주고, 함께 놀아 주기도 해서 히마리가 더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두 번째 교습을 받는 날에는 天仁도 가 보았다.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두워진 밤하늘에 뜬 둥근달을 보며 혼자서 "동그라미, 동그라미"라고 소리를 내며 몇 번이고 되뇌고 있었다. 이후 한국어 사용 빈도도 조금씩 더 늘리고 있다. 놀이터의 기구 이름도 한국말로 시켜보고 있는데, "그네 밀어줘", "미끄럼틀, 미끄럼 한 번 더 타고 싶어 “ 등의 한국말도 곧 잘 따라 한다.
오늘은 다이토민단에서 주최하는 토요한글문화교류회에도 다녀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5시간 동안 한글교실, 한국 동요 배우기, 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히마리는 자기보다 큰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처음에는 서먹서먹해하며, 시큰둥했는데 점점 재미를 붙여 나갔다. 특히, 스크래치 미술 놀이를 재미있어했다. 김지은 선생님이 손톱으로 검은 종이를 긁어내자 알록달록 아름다운 그림이 나타났다. 이를 본 히마리는 아주 재미있어했다. 스크래치는 히마리가 재미있게 읽었던 '까만 크레용(クレヨンのくろくん, 그림동화, 까만 크레용 (brunch.co.kr))'의 내용과 비슷한 미술놀이로 아이들의 상상력, 창조력, 집중력도 높여줄 것 같다.
민단 게시판에 붙여 놓은 한글 자음모음표에도 관심을 가진다. 히라가나도 적혀 있으니 '이모', '무지개' 등 간단한 단어 찾아보기 놀이도 잘 따라 한다. 민단에서 자음모음표 포스터도 주셔서, 냉장고에 붙여두고 히마리와 아이 엄마도 언제나 보고 익히도록 했다. 문화교류회에 참가한 성과는 처음으로 5시간 동안 한글로 이루어지는 수업에 참가하고, 자음모음 글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드디어 일본어 사이에 한국어 단어를 섞어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4살 히마리가 본격적인 한국어 공부에 첫 발을 내디뎠다. 좋은 선생님도 만나, 히마리가 잘 따라 하며 기억하는 단어의 수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한국에 이사 갈 때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만, 가능한 한국어를 많이 익혀 서울의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