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빴지만 경험이지만 지나고 나니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토요일, 도서관에서 귀가하던 중이었다. 히마리가 타고 가던 자전거를 세우더니 안아 달라고 한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놀이터에서 놀았던 터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도서관까지는 집에서 1km 조금 넘는 거리라서 늘 유모차로 가곤 하는데 오늘은 히마리가 우겨서 자전거를 타고 갔었다. 天仁이 히마리를 안고 앞서고, 아내는 자전거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귀가 길은 조금 서두르고 있었다. 12시에 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었는데, 히마리가 책을 더 읽겠다고 해서 예정보다 20분 정도 출발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집 부근 요양시설을 지나는데 반대편 측면에서 큰 개가 한 마리 나오는 것이 언뜻 보였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잠깐 고개를 돌렸는가 싶었는데, 안고 있던 히마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누군가가 天仁의 발목을 잡아당긴 듯했다. 넘어지는 순간 몸을 비틀며 돌리려고 했지만, 이미 히마리의 머리가 ‘쿵’하고 아스팔트 도로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바닥에 앉아 큰 소리로 우는 아이를 안고 머리부터 살펴보았다.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낮은 분리봉에 발이 걸렸던 모양이다. 피가 나지도 않고, 이상은 없어 보였다. 주변을 걷던 여자분이 괜찮은지 달려왔다.
히마리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많이 놀랐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옛날 과자집을 지나며 과자를 사주려고 해도 싫다고 한다. 후회 막급이다. 더워서 싫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헬멧을 씌웠어야 했는데. 자주 다니는 길인데, 왜 낮은 봉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반대편에서 나오는 개에게는 왜 신경을 썼을까? 조금 늦어도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리 서둘렀을까. 왜 아이를 조금 더 옆으로 돌려 안아 시야를 더 확보하지 않았을까. 아이와 얘기하느라 주의를 소홀히 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다. 걸려 넘어진 중앙 분리봉은 天仁이 오래전 처음으로 한국에 도입한 것이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여 히마리에게 바로 엄마에게 가겠냐고 물어보니 天仁네로 가서 놀겠다고 한다. 많이 아프지는 않은 것 같아 우선 안심이다. 놀러 갔다가 귀가할 때는 꼭 天仁네에 먼저 들러 좀 더 놀고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 아이 엄마 미도리(碧, みどり) 씨에게 집에 도착했노라고 문자를 보냈다. 귀가 중에 안고 오다가 넘어졌는데, 우선 이상은 없어 보인다는 말도 미리 덧붙였다. 히마리의 말하는 모습, 머리, 입 주위, 몸 여기저기를 다시 살폈다. 다행히 문제는 없어 보인다.
블록을 하며 놀던 히마리가 엄마가 오니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놀랐던 때가 다시 생각난 모양이다. 히마리 이야기를 들었던 엄마가 머리를 만져보며 “혹도 없네. 괜찮은 것 같은데? 아직 아파?”라고 물어본다. “지금은 괜찮은데 아까는 아팠어”라고 답한다. 다행이다. 엄마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아이를 보내고 나니 天仁의 다리와 팔꿈치, 손목도 욱신 거린다.
주말이기는 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서울에 있는 친구인 정형외과 의사,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전화로 의견을 물어보았다. “우선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일주일 정도 잘 지켜봐야 한다. 토하거나, 비정상 적으로 보채거나, 계속 잠을 자거나 하면 이상이 있는 것이니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 봐야 한다”라고 한다. 미도리 씨에게도 상담 내용을 전달했다. 저녁을 먹고, 히마리는 문제가 없는지 미도리 씨에게 또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뛰어놀고 있는 히마리 짱의 모습을 담은 짧은 동영상을 보내왔다. 안심이다.
전에도 함께 놀면서 간식을 먹고 간 뒤 장염을 앓아 놀랐던 적이 있었다. 3일간 어린이집도 쉬었는데, 天仁네에서 먹었던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天仁이 직접 딱딱한 호박 껍질을 벗겨가며 아내가 호박죽을 몇 번 끓여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온갖 생각에 며칠간 잠을 설쳤다.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에게 제일 중요한 머리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히마리의 건강에 문제가 없기를 기도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이 엄마에게서 ‘히마리가 놀러 가고 싶어 하는데 9시쯤 보내도 되겠는지’ 문자가 왔다. 다행이다. 괜찮은 모양이다. 더 빨리 보내도 된다고 답했다.
머리의 부딪힌 부분이 조금 부은 것 같기도 하지만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히마리가 파파오지상의 다리 상처를 보여 달라고 한다. 어제 넘어졌을 때 바지에 피가 묻어 나와 상처가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지혈 소독연고를 발라 둔 상처를 보더니 “많이 아프겠다”며 빨리 나으라고 조그만 입을 쫑긋하며 “호~호!”하고 불어준다.
그리고, 기억이 났던지 연필꽂이에 꽂혀 있던 노트북 화면보호기 접착용 테이프를 가져와 붙여준다. “이렇게 하면 빨리 나아”
용도가 다른 테이프를 붙인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마음 씀씀이에 눈물이 핑 돈다. 이래서 이 아이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모양이다. 세 살 히마리가 너무 대견하고 고마워 꼭 안아주며 속삭였다. “앞으로는 절대로 아프게 하지 않고, 잘 지켜 줄게.”
이후 꽤 오랫동안 애써 넘어졌던 곳을 피해 다른 길로 다녔다. 그래도 넘어졌던 순간이 천 번도 더 생각났다. 2002년 월드컵 한국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했던 스페인의 후아킨 선수가 그 악몽 같은 상황을 3만 번도 더 떠올렸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이후에도 놀러 온 히마리에게 테이프 치료를 몇 번 더 받았다.
天仁의 아픈 기억이 희미해지는 만큼 히마리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키는 넘어졌을 때보다 5cm나 더 자라 이젠 101cm가 되었다. 어제는 히마리와 함께 동네의 유명한 ‘다카하시 더 스테이크’에서 스테이크와 시푸드 요리를 먹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