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 산길을 걷는 것이 행선行禪, 곧 참선
지구의 날인 토요일, 쿠사도야마草戸山에서 미나미다카오南高尾 풍경림風景林 구간 약 20km를 걸었다. 본래 토우노다케塔ノ岳에 오를 생각이었는데, 체력 걱정에 조금 쉬운 코스로 바꿨다. 토우노다케는 일본의 명산 100에 들어가는 단자와산丹沢山의 줄기로 표고 1,490m의 꽤 높은 산이다. 2주 전에 599m의 다카오산高尾山과 670m의 시로야마小仏城山 구간 약 20km를 걸어보니 체력을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늘 히마리와 주말을 보내느라 산행은 거의 일 년 만이었고, 그 사이 코로나에 확진되기도 했다.
서울처럼 한 나라의 수도에서 산에 접근성이 좋은 곳도 드물 것이다. 내사산內四山 외사산外四山이 있어 서울 시내에서 바로 산에 접근할 수가 있다. 국토 면적의 75%가 산지인 일본이지만 도쿄東京는 등산을 하기에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다. 도쿄 시내에서 최소 60km 이상 벗어나야 산다운 산에 갈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교통비도 평균 2.5배 정도 비싸다. 도쿄 시내에서 60km 떨어진 다카오산까지의 전철비가 편도 12백 엔(한화 약 1만 2천 원)이니 서울에서 소백산 자락 영주까지 200km 고속버스비 15,900 원과 그리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지하철 역에서 산 입구까지 가는 버스비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교통비의 3배도 넘는다.
쿠사도야마는 5년 전쯤에 한 번 걸었던 적이 있는데 표고 364m의 낮은 산이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등산 훈련에는 아주 좋은 곳이다. 산악 마라톤 훈련을 위해 찾는 이들도 많은 곳이다. 미나미 다카오 풍경림은 글자 그대로 경치가 아름답고, 자연과 나무의 웅대함을 잘 보여주는 숲이다. 아는 사람들만 찾다는 곳이다 보니 피톤치드 향 맡으며 바람과 새소리를 벗 삼아 조용히 걸을 수 있어서 더 좋다.
天仁은 종교를 떠나 숲길, 산길을 걷는 것이 행선行禪, 곧 참선, 최고의 힐링이라고 생각한다. 반가부좌를 틀고 않아서 하는 참선, 명상도 좋지만 걸으면서 명상을 즐기는 것은 또한 좋다. 특별한 화두를 잡지도 않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고민하던 문제의 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둘레길을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 서울에 살았을 때도 참 많이 걸었다. 서울의 북한산, 용마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경기 평화누리길, 소백산 자락길, 진안고원길 등의 둘레길을 많이 걸었다. 天仁은 걷기, 행선을 하는 동안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행선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 졸리지 않다는 것이다. 복식호흡이 잘 되고, 정신이 집중되면 걷고 있다기보다는 오로지 다리의 감각만이 살아있는 상태가 된다.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단지 걷는 감각뿐이다.
실제 걷기와 명상의 효과에 대한 해외의 보고도 많다. 2016년 미국 정신의학지 'Translational Psychiatry'에 발표된 연구보고에 따르면 가벼운 걷기 등 유산소 운동과 명상을 결합하면 우울증 증상이 줄어들고 긍정적인 기분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한다. 러트거스 대학의 연구에서는 걷기와 명상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주 2회 8주간 실시하자, 우울증 진단을 받은 학생의 21%가 증상이 경감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뭔가를 걱정하는 시간이 줄어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라고 응답했다.
일본에서는 행선을 보행선歩行禅, 또는 긴힝経行이라고 한다. 불교 사찰에서 행선을 가르치지만 지겐지慈眼寺 시오누마리塩沼亮潤 주지는 <걷기만 해도 나쁜 것이 없어진다. 보행선 하는 법 歩行禅のすすめ>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행선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시오누마리 스님은 천일(1,000일) 동안 표고 1,719m의 오오미네산(大峯山)의 산길을 매일 16시간, 48km를 걷는 센이치가이호교千日回峰行를 수행하신 분이다. 천일 동안 매일 48km를 걷는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수행에 성공한 사람은 역사상 단 두 명뿐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그 혹독한 수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행선을 할 수 있도록 고안한 행선 방법을 <보행선> 책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불안, 초조함 등, 부정적인 사고가 되기 쉬운 사람,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꼭 행선을 해보기를 권한다.
평소의 생활에서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 빨리 그것을 깨닫고 그 마음의 바늘을 플러스로 향하도록 스스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시오누마리 스님은 먼저 ‘루틴’을 강조한다. 날마다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 즉 루틴이 깨달음의 경지에 다가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매일 걷기 때문에 루틴화 하기 쉽다. 그는 야구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매번 똑같이 하는 몸에 베인 스윙으로 안타와 홈런을 쳐내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시오누마리식 보행선은 참회, 감사, 명상의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 단계는 참회의 걸음이다. 인생에서 참회해야 할 과거나 일상에서 남에게 폐를 끼친 일 등 자신의 죄와 잘못을 가능한 한 많이 떠올리고 마음속으로 미안하다고 외치며 걷는다. 두 번째는 감사의 걸음이다.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한다. 입으로 “감사합니다”라고 소리를 내면 더 효과적이다, 세 번째 단계는 좌선으로 반가부좌를 하고 최소 5분이라도 명상에 빠져든다. 중요한 것은 루틴,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한데 시간이 부족한 직장인이라면 출근길에는 참회, 퇴근길에는 감사, 취침 전에는 좌선을 해 보도록 권한다. 그는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이 닿았을 때의 기쁨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번 산행에서는 이륜초二輪草와 황매화초山吹草 군집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정해진 산행길에서 다소 벗어난 곳이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기에 경사가 급한 산길을 2백여 미터나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약 1백여 미터의 군집처는 정말 장관이었다. 정말 잘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꽃들의 군집을 보기 위해 산을 찾았다는 분들도 있고, 줌 렌즈를 장착한 전문가들의 출사도 있었다. 이륜초는 한 줄기에서 두 송이의 꽃이 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직경 1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꽃이 이렇게 즐거움을 주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무사히 하산, 귀가했음에 또 감사드린다.
高尾山入駅(08:47)→草戸山(10:04)→南高尾風景林(10:41)→二輪草群生地(11:17)→西山峠(12:00), 하산→梅の水平(13:05)→高尾山入駅(13:30), 날씨 구름, 기온 최고 12℃, 총 도보 4시간 43분, 2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