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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Jun 15. 2021

OECD 국가 중 꼴찌, 일본이 코로나 접종 늦은 이유

일본에서 코로나 백신 맞기

시모가(下井) 병원에 들어서니 접수창구에서 체온을 측정한 후 예약 사항과 접종 쿠폰을 확인한다. 의사는 예진표 내용을 살피더니 접종 후 열이 날 수도 있지만, 39℃ 이상의 고열이 아니면 가능한 해열제를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주의 사항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접종. 이 병원은 두 명의 간호사가 주사를 놓는다. 40대 초반의 남자 간호사가 주사를 놓고 보호 테이프를 붙인 후에 “이 자리에 이제 주사를 맞을 겁니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주사를 맞는다는 느낌도 없다. 이후 타이머로 15분간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없음을 확인하고, 접종을 받았다는 실을 부착하면 끝, 30분 정도 걸렸다. 같은 시간 대에 20여 명 주사를 맞았는데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다. 일본에서 작년 1월 코로나 감염자가 확인된 후 꼭 1년 5개월이 되던 날 1차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우송받은 쿠폰으로 개인이 예약하는 시스템


일본의 코로나 백신 접종은 지자체가 주민표를 바탕으로 대상자에게 쿠폰을 우송하고, 접종을 희망하는 사람이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후 접종 장소에 쿠폰을 가지고 나가는 시스템이다. 의료기관, 의료진 등은 모두 지자체가 준비하고 주관한다. 개별접종이 원칙이나 항공사, 상사 등 일부 대기업의 직장 접종도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화이자 백신 9.7천만 명분, 모더나 2.5천만 명분, 아스트라 제네카 6천만 명분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총 1억 8천만 명, 접종 대상 인구가 1억 1천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여유가 있는데, 수입되는 대로 각 지자체별로 균등하게 배분하고 있다. 인구 1천4백만 명인 도쿄는 기본적으로 화이자 백신을 맞지만, 접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설치한 자위대 대규모 접종센터에서는 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6월 13일 현재 2천3백만 명이 1회 이상 접종을 받았다. 이는 전체 대상 인구의 접종률 약 11%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백신 확보는 빨랐는데, 접종은 왜 이리 더딘 것일까?


행정의 디지털화 지연

일본에는 정부의 통합 행정 시스템이 없다. 국가가 일원적으로 국민의 백신 접종의 기록·관리를 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 및 의료진 준비 등 백신 접종 업무를 통째로 각 지자체로 떠 넘겨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지자체 또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인쇄된 접종 쿠폰을 우편으로 받아, 쿠폰에 기재된 번호를 알아야만 접종 예약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접종 쿠폰을 인쇄하고, 우편으로 받는 데까지 7~10일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민등록 번호에 해당하는 마이넘버를 만들어 두기는 했지만, 국민들의 호응이 낮을 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의 행정 시스템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지자체 균등 배분으로 효율 저하

백신을 지자체에 균등하게 배분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평등하게 배분하니 좋은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소량씩 수입되는 백신을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배분하다 보니 각 지자체에 할당된 수량이 적고, 다음 입고 예정일도 알 수 없다 보니 의료진의 확보 계획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접종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쿄, 오사카 등 각 지자체별로 감염자 비율이 다른데 균등한 수로 배분하는 것은 결코 평등한 행정처리가 아니다. 감염 리스크가 높은 지역부터 우선 배분해야 한다.


탁상행정의 극치, 대규모 접종센터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에 설치한 자위대의 대규모 접종센터도 문제가 되고 있다. 외주 예산 37억 엔(한화 약 4백억 원)을 들여 도쿄 하루 1만 명, 오사카 5천 명을 접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지만, 예약률이 20%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전형적인 탁상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가(菅) 수상도 국회에서 하루 백만 명 접종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발언을 했다가 호되게 비판을 받았다. 결국,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전국 거주자로 대상자를 확대했지만, 예약자는 그리 늘지 않는 모양이다. 요코하마(横浜)에 살고 있는 고령자가 60킬로 떨어진 도쿄 시내 오오테마치(大手町)의 대규모 접종센터에 갈 리 만무하다. 곧 64세 이하도 접종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할 것 같다.


백신을 믿지 않는 사회정서

뿌리 깊은 ‘백신 불신’ 정서 또한 장애물이다. 일본에서는 1952~1974년 인플루엔자, 홍역, 볼거리 등 백신을 접종한 자녀가 부작용으로 장애를 입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1992년 도쿄 고등법원은 접종 부작용 부모와 가족 160명이 제기한 집단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명령했다. 이후 백신, 치료제 부작용을 우려한 부모들이 백신을 외면하면서 백신 접종률이 하락하고, 신규 백신 도입도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 도입, 허가 때에도 이러한 국민정서 때문에 안정성을 우선한다는 취지로, 다른 선진국만큼 일본 제약회사의 백신 개발 및 수입 승인절차를 간소화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3번씩이나 긴급사태는 선언하고 있지만, 코로나 백신 접종도 마치 홍역 접종처럼 느긋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발 빠르게 대처하는 일부 지자체

도쿄도(東京都) 내 각 지자체도 속도의 차이가 생기고 있다. 네리마구(練馬区), 아다치구(足立区), 고가네이시(小金井市) 등은 접종 속도가 매우 빠른 곳이다. 고령자, 기저질환자의 접종이 거의 끝나 64세 이하 일반 도민들에게도 접종 쿠폰을 발송하기 시작했다. 이들 지자체는 접종 가능한 지역 의료기관을 최대한 확보하여, 고령자와 기저질환자를 동시에 접종하는 등 의료기관의 로스 시간을 최소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1차 접종 22~25일 후 2차 접종하면 항체 가장 많이 생김


치바대학병원(千葉大学病院)은 지난주 화이자 백신을 2차까지 맞은 1,774명의 99.9%에서 항체가 생겼고, 1차 접종 22~25일 후 2차 접종을 받은 사람에게서 그 수가 가장 많았다는 항체 반응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의 제반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에 天仁은 접종 쿠폰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집 주변 병원의 예약 상황을 확인해 두어 빨리 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치바대 연구결과를 참고로 2차 분도 미리 예약했다. 한국 정부는 다음 달부터 해외에서 코로나 접종을 마친 사람도 입국 시 2주 격리를 면제해 준다고 한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어야 하겠지만, 백신을 맞아 왕래라도 자유로워진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접종 확인 실. 접종 결과는 백신 접종기록 시스템 VRS(Vaccination Record System)에 등록된다.
7~10일이 걸려 접종 쿠폰, 안내문, 설명서, 단체 접종소, 예진표 등을 꼼꼼하게 챙겨 우편으로 보내준다.
아나필락시스 확인 대기 장소. 접수 2명, 의사 1명, 접종 간호사 2명, 접종 후처리 2명 총 7명 상주.
접종 후에는 아나필락틱 쇼크 확인을 위해 15분간 대기하여야 한다.
치바대학병원 연구 결과, 1차 접종 22~25일 후 2차 접종을 받은 사람에게서 항체 수가 가장 많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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