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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슬로우 May 16. 2020

[부록] 비행운 속 물속 골리앗

북홀릭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70 day


어제부터 비가 내리니까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김애란의 '비행운' 속 단편 '물속 골리앗'. 여름이 오고 곧 장마가 시작될 텐데 장마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낼 수 있는 작가도 흔치 않을 것이다.   


recipe 104. 김애란 '비행운'

비행운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물속 골리앗'이다. 며칠 째 늘어지게 온 비를 수박이 싱거워 맛없어지는 것에 비유하는 첫 글귀부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 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그러면서 오래된 장마로 물에 잠겨 이 세상에 홀로 남은 한 소년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상상도 못 한 전개가 펼쳐지면서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김애란 작가만의 문체에 빠져 나도 물속을 헤엄치듯이 그녀의 소설 세계 안에서 한참을 허우적대었다. 꿈도 현실도 아닌 이 소설 속의 세계는 삶의 비애가 끔찍하게 그려지지만, 별이 쏟아질 듯 파란 하늘을 보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년과 함께 나도 같이 광활한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아름다운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비에 푹 담긴 도시와도 같은 깊은 심연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끊이지 않는 이례적인 장마로 자본 지상주의 사회로 점철된 이 도시가 물에 꼴딱 잠겨버린다. 그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유일한 것들은 물속 골리앗, 삐죽이 올라온 높은 크레인들 뿐이다. 허물어져가는 재개발 아파트에 비참하게 홀로 남은 소년, 크레인 사고로 죽은 건설노동자 아버지와 생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어머니. 이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마음에 한동안 남아 가슴이 아팠다.    


참고할 리뷰: https://cafe.naver.com/bookishman/288127


 


목표일: 70/365 days

리서치: 104/524 rec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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