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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슬로우 Jan 16. 2021

[부록] 바둑두는 여자

북홀릭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130 day


우리만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 속에 산 줄 알았다. 일본의 속국처럼 살아야 했던 끔찍한 과거는 만주땅에 사는 중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잔인했던 명성황후의 시해와 정신착란으로 귀향한 덕혜옹주의 비극을 낳은 고종 황제의 비참한 운명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와 그리 다르지 않았고, 꽃다운 청춘을 잃고 일본에 맞서 싸우던 독립투사 항일 혁명군의 테러 행위도 그 시절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담담하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매료시키는 문체로 쓰여진 샨사의 '바둑두는 여자'. 몇 시간만에 단숨에 읽은 책인데도 그 안에 불과 백년 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듯 느껴졌다.  



recipe 201. 샨사 '바둑두는 여자'

이 책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던 시기, 만주의 쳉휑 광장에서 바둑으로 만난 일본인 장교와 중국 소녀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로, 남자의 이야기와 여자의 이야기가 마치 바둑의 수를 오가며 두듯, 각자의 이야기가 한 챕터씩 번갈아가면서 그려진다.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며 각자의 수를 두던 그 둘의 삶의 이야기가 드디어 합쳐지는 순간.. 시작도 없이 모든 판이 끝이 나버린다. 사랑이 완성되었다?고 하기에도..그렇고.. 불가피한 죽음의 선택 만이 서로의 삶을 더 비참한 비극으로부터 지킬 수 있었다? 고 하기에도..그렇고.. 그저 그 둘의 운명이 너무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은 국가의 구성요소가 아니며, 개인을 위하여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이제 알고 있지만, 어쩔수 없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인지라, 전쟁이라는 나라 간의 힘대결 앞에 승리하는 쪽도, 패배하는 쪽도 개인들의 삶은 희생되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일본의 제국주의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 전쟁에 나가 끊임없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조국에 신념을 바치고자 했고 천황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기를 꿈꾸었던 일본인 장교는, 여자라고는 창녀만 만나보았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부류의, 자신과 당돌히 대적할 만한 바둑 상대였던, 중국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처음으로 연민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와의 뜻밖의 비극적 만남 앞에서 결국 자신이 지켜온 모든 신념을 내던지고 만다.


근대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중국, 몰락해 가는 청조 집안의 규수인 16살 소녀는 아직 봉건적 관습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일찍 외국 유학을 다녀온 부모 밑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유롭게 성장한다. 어떤 상대도 제압할만큼 자신있게 바둑을 둘 줄 아는 그녀는 그 어떤 남자 앞에서도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남자사촌의 어리숙한 고백도 차버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엘리트 대학생 밍과 칭 사이에서 관심과 질투를 충분히 즐길만큼, 이른 나이에 경험하게 된 첫성관계 대상인 밍한테도 마음은 준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성에 대한 눈뜸에 들떠 있었고 자신이 또래 여아들보다 한층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으며, 위선적이고 틀에 박힌 사회에 다소 반항하는 듯한 당돌한 여성이다. 반면


자기 언니는 남모르게 남편의 외도에 속을 끓였고, 엄마의 결혼생활도 고리타분했다. 마음이 잘 맞던 친한 친구조차도 생활비 때문에 집안에서 강요하는 남자에게 팔려가야했고, 결국 돈많은 남자의 첩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 그녀는 견디기 힘들었다. 적어도 대학생 밍과 칭이 어느날 일본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혁명군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잡혀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전까지는 그녀의 인생은 독립적이었다. 하지만


혁명군 축출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버린 마을 분위기 속에, 소녀는 자신의 연인 밍이 공개적으로 처형대에 매달려 죽게 생겼다는 소식을 건너 듣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던 꽃다운 어린 소녀의 인생이 한순간 주변인으로 밀려나버리고 마는데..


처형대까지 찾아가지만 멀리서 지켜만 볼 수 밖에 없는 소녀 앞에서 밍이, 처형대 옆에 있는 혁명군 여자 동지에게 애뜻하게 입을 맞추며 최후를 맞이하는걸 목격하면서, 밍이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남자였고 그녀와 생사고락을 함께했음을 알게 되면서 소녀는 충격에 휩싸인다.


밍의 비참한 죽음과 배신도 감당이 안는데 그의 아이까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때부터 여지껏 지켜온 인생관이며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인생이 점점 더 끝을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시대의 비극은 세상과 대등하게 바둑 한판처럼 맞짱뜰 수 있었던 소녀를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하게 했고, 주인공으로 살 수 있었던 인생이 빗길로 미끌어지며 점점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그런 인생의 아노미 속에서도 그녀에게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매주 자신과 바둑을 두러 광장에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신분을 숨기고 중국 사람인 척했던 일본인 장교였다. 봉건적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성과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청년은 그렇게 바둑판에서 서로의 영혼을 읽으며, 숨 막히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적국의 상대와 미묘한 수를 두며 서로의 감정을 읽어나가는 사이, 알 수 없는 몽환적 사랑에 빠져들었으나, 총구를 겨누는 전쟁터에서, 서로의 정체를 맞딱들이는 순간.. 죽음의 선택만이.. 사랑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고 만다.



목표일: 130/365 days

리서치: 201/524 rec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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