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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슬로우 Aug 28. 2021

[부록] 삶의 새로운 시선, 통합명상

책읽는 주말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142 day


명상을 한때는 열심히 해봤고, 책읽기나 글쓰기처럼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취미처럼 마음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현묘지경'한 수준이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동안 동서양의 철학을 알아가다보니, 세상의 온갖 것을 통달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이제 내가 좀 성숙했나? 내 마음이 이제 좀 자랐나? 라고 느껴지는 정점에서 꼭.. 좌절을 경험하곤 했다. 되풀이되는 실수를 똑같이 범한다거나, 어떤 괴로움을 스스로 자초한다거나, 해결되지 못한 고통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럴때마다 계속 의문이었다. 깨달음을 향해 이렇게 공부도 하고, 마음공부에 그토록 노력도 했는데, 왜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일까? 왜 도로아미타불일까.. 왜 현명하게 모든 상황이 잘 보이다가도 동시에 우매한 실수에 빠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무얼까.. 깨진 독에 물붓기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한, 철학에 대한 배움과 노력이 과연 내 삶에서 소용이 있긴 있는 것일까? 과연 나는 마음챙김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걸까?



recipe 219. 켄 윌버 '통합명상'

내가 그런 의문에 빠지는 이유를.. 켄 윌버의 책이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을 준다. 바로.. 마음공부를 통해 ‘깨어남’의 초월적 영성은 깊어졌을지 몰라도, 일반적인 ‘성장’의 발달 단계에서는 아직 낮은 단계에 머물러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을 요약해보자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아주 다른 두 가지의 길을 통해 발달과 변화, 진화를 경험하는데, 그 두개의 길은, 하나는 '성장의 길 Growing-up(의식의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깨어남의 길 Waking-up(의식의 상태)'이다.


우리는 이 서로 다른 두 축을 함께 걸으면서 성숙해가는데, 보통 선지자 혹은 구루라고 하는 소위 깨달은 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두 축 중에 '깨어남의 길'에서는 최고의 단계를 밟았을지는 모르지만, 개인에 따라 '성장의 길' 에서는 낮은 단계에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 때 요가 구루로 불렸던 비크람같은 사람도 전락하기도 하고, 존경받던 종교 지도자들도 전쟁과 살인을 민족중심적인 관점에서 권장하기도 하는 등의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 예가 있듯이.


왜냐? 그들도 살면서 '깨어남의 길'에 이르는 도(길 도道)는 닦았으나 '성장의 길'은 한번도 탐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성장의 길' 즉, 우리의 '의식의 구조'가 밝혀진 지는 사실 불과 100여년 전으로 '발달심리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고 부터이니까. 반면, '깨어남의 길' 즉, '의식의 상태'를 고도화시키는 전통적인 구도의 길은 그 역사가 약 5만년이나 되었지만, 고대의 성인들이나 그 수행법만을 공부해온 현대의 사람들도 불과 최근에서야 정립된 '성장의 길'에 대한 도(길 도道)는 닦은 적이 없어서일지도. 그래서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성숙, 최첨단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이 두개의 길을 꼭 함께 걸어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이중의 무게 중심’에서 나의 의식의 구조-상태는 어떤 단계쯤일까. 두 길에서 모두 정점에 서있다면 '슈퍼마인드'를 갖춘 '초인'이 되겠지만, '성장의 길'의 8단계 중 사실 자기 자신도 어느 단계에 현재 머물러있는지 인지를 잘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그래서 여기서는 ‘숨은 지도’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리 명상을 오래하고 '깨어남의 길'의 의식 상태에서 최상위의 단계에 있다고 해도, 자신의 현재의 '성장의 단계'를 제대로 인식하려고 애쓰고 숨은 지도를 찾아 발달을 의식적으로 최신의 최첨단 발달까지로 촉진시키지 않으면, 그 진화 단계의 격자 내 수행자로서까지밖에 못 머무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합'적으로 두 길을 함께 걷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책제가 ‘통합명상’인 이유


https://youtu.be/QPv9VdPvFe0


통합명상의 기본은 대단한게 아니고 ‘자각'을 하느냐 아니냐 즉, 자각 vs 무감각의 차이 뿐이다. 영화 '매트릭스'(매트릭스 4가 곧 개봉 예정~ 꺄악!) 처럼 내가 매트릭스 안에 있다는 것을 그 밖에서 대상으로 '자각'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매트릭스 안에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매트릭스는 감옥이 되어 우리에게 진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환영에 불과한 실제를 부여한다. 하지만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이것을 자각과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삼아 외부에서 바라보면, 이 매트릭스에서 아주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진정한 주시자(I-I)'가 되어 작은 나를 큰 나가 스스로를 밖에서 대상화하여 '자각'하기만 하면 된다.


빨간약과 파란약 중에 무엇을 먹을지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기만 해도 기회는 주어진 셈이고, 네오(The One)가빨간약을 선택해 고행일지 모르는 수행의 길을 가기로 하는 것처럼 그것을 이룰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자기 자신이 그 유일한 세상에서의 The One(대상화된 주체, 바로 그것, 바로 그자, 유일한 자, 행동하는 자, 절대적인 주체성, 텅빈 의식)일 뿐이다.


통합명상이나 마음챙김의 목적은 대상에 대해 혹은 대상을 갖고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각의 장 안에 그것을 대상으로서 붙잡아 두고 알아차리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이것이 전부다.


의식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자발적으로 일어나 전체 그림 속의 모든 사건과 사물을 그대로 균등하게 비추거나 이것들과 하나가 되는 것. 관찰하는 자기의 태도를 취하면 이 전체 그림을 주시할 수 있다. 통합적 마음챙김은 한 순간의 주체를 다음 순간의 주체의 대상으로 만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은 주체들을 대상으로 삼다보면, 나중에는 대상이 될 수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주체성만 남는다. 대상없는 텅 빈 의식이 남는 것이다. 넓고 광대하고 순수하고 열려 있고 투명하고 고요하며 잔잔한 텅빈 공간 혹은 빈자리, 광대무변의 공간, 순수하게 열려있는 공, 하나뿐인 진정한 자기,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실제 존재 안에 머물러본다. 세계 전체는 나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사실은 내 안에서 일어나며, 내가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모든 것이 진정으로 끝난다. 끝없는 시간 속의 무수한 세계 속에서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이것 뿐이다.


나는 감각이 있지만, 내가 그 감각은 아니며

나는 느낌이 있지만, 내가 그 느낌은 아니며

나는 생각이 있지만, 내가 그 생각은 아니다.

나는 이 모든 것에서 철저히 자유롭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흔들림도, 한계도, 제약도 없이

순수하게 주시하면서

본래의 내 존재(I AM-ness)로 머문다.


현실을 살아가며 모든 것을 초탈하기는 어렵겠지만, 나의 '성장의 단계'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를 알려고 하고, 무의식적인 이 부분을 의식하려 하고, 인식하고, 자각하고, 매트릭스 안에 갖힌 채로 머물려 하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한 단계 벗어나 더 새로운 단계로 영역을 넓히고자 하고, 위축되지 않고, 4분면의 방사형으로 나아가는 삶을.. 꾸준히.. 포기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나’를 내가 아닌, 저 멀리서 매트릭스 속의 한 인물을 바라보듯이 바라볼 수 있는 ‘진정한 주시자(I-I)’가 되기 위한 길을.. 매일 실패하더라도.. 해야하는 이유가, 이 길은 가지 않으면, 삶은 그저, 매트릭스 안 안락한 감옥일 뿐이기 때문이 아닐까.




 



목표일: 142/365 days

리서치: 219/524 rec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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