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슬로우 Oct 25. 2022

[부록] 프롬 토니오

정용준 작가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212 day


눈부시게 아름다운 환상이 가득한 소설 '프롬 토니오'의 신화적인 세계에 며칠을 푹 빠져있다 나왔다. 자극적이지 않으나 이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동화같은 판타지에 심하게 몰입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갑가지 궁창이 뚫리면서 신수가 와륵 쏟아져내리며 머리 위로 고래비를 맞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속 생선이 하늘에서 쏟아지던.. 한 기이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린왕자'의 생택쥐베리가 금방이라도 살아 돌아와 내 앞에 존재할 것만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      



recipe 311. 정용준 ‘프롬 토니오'   

시공간을 초월해 삶과 죽음까지도 넘어 사랑에 도달하고자 바닷속의 바다, 우리가 아직 아는 바 없고 경험한 적 없으나 그렇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불가시(不可視)의 세계로부터 어느날 토니오가 죽은 고래떼 사이에서 기이한 형상으로 시몬 앞에 나타났다.


사랑하는 연인 엘런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삶을 거의 포기한듯 살아가는 그의 앞에 나타난 한 어린 왕자. 그가 건너왔다는 저 너머의 세계는 고래가 창조한 신화적인 세계, 유토피아이다. 우리의 근원과도 같은 곳. 내세와도 같은 곳. 그곳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모든 감정과 사실을 알 수 있고 죽음의 두려움도 없는.. 어쩌면 그래서 어떤 욕망도, 살고 싶은 욕구도 없는 세계이다.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값짐을 아는 그에게 어쩌면 그곳은 견디지 못할 곳이었을 것이다. 그는 5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생전에 사랑했던 연인 콘수엘라를 찾아가기 위해 이곳으로 넘어왔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의 소도시 '그라스'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한다. 토니오의 여정에 함께 하면서 시몬은 견딜 수 없이 힘들었고 슬픔을 감내해온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잊는다. 무엇보다, 각자 국적은 다 다르지만 서로를 보듬어주는 절친한 친구들, 서로를 무한히 이해해주는 그.사.세가 온통 동화같이 느껴졌다.

    

P. 276

“우리들에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뭘까? 죽는 순간의 통증? 더 살 수 없다는 아쉬움? 아니야.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지. 떠나는 자도 남겨진 자도 같은 이유로 두려워하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죽음 저 너머로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속에 데리고 간다네. 남겨진 자들은 반대로 죽은 자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기억 속에 담아 함께 살아가지. 데쓰로 자네처럼 말일세. 그것이 기억이고 추억이야. 그것은 환상이나 환영 같은 것이 아니야. 영혼은 바로 그곳에 머문다네. 그리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내가 앨런을 만나고 온 것처럼. 만날 수 있지. 아니, 반드시 만나게 되네.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간절히 찾는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어.”



recipe 312. 정용준 ‘선릉 산책'   

선릉 산책이라는 무언가 마음이 힐링이 될 것만 같은 이름의 책에서, 우리 현실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뾰족한 현침에 깊숙히 찔린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뭘까.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에 대한 고단함이 단편 곳곳에 스며있다.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에 의하면 좋은 이야기는 누구나 쓰고 싶어하고 쓸 수 있지만,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그것을 쓰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어두운 심연으로 내려가서 글을 썼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도 모르는 불가항력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장애를 가진 이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 학교폭력 뒤 잔인한 인간 군상 등에서 우리 안의 어떤 알 수 없는 폭력성, 구멍과도 같은 이 뻥뚫린 실재계(the real)를마치 없는 것 처럼, 우리는 현실계(reality)에서 얼마나 포장하고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의 삶이 산책이라지만, 마냥 가을 하늘 좋은 날에 어슬렁 어슬렁 느릿 느릿 힐링 산책을 할 수 있는 나날들이 삶에서 그리 많지 않다.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가장한 문화 그 잡채(그 자체)...가 아닌지.  



목표일: 212/365 days

리서치: 312/524 recipes  

매거진의 이전글 [부록] 연년세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