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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슬로우 Nov 08. 2022

[부록] 사랑에 빠지기

하비에르 마리아스 작가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213 day


우리는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사랑에 빠져있는지 모른다. '사랑을 한다'는 마치 '꿈을 꾼다'와 같아서, 꿈을 꾸는 도중에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모르다가, 꿈에서 깨고 나면 그것이 모두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꿈이 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나에게 벌인 일이었다.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나의 '꿈'과 같은 '사랑'을 바라보면, 내가 한 사랑이 진짜같기도 하고 가짜같기도 하다. 그 사랑이 진실같기도 하고 거짓같기도 하다. 


꿈이 진행 중일 때에는 곰이 쫒아 오는 순간에 이것이 가짜다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걸 진짜로 '체험'을 하게 되지만, 꿈에서 깨고나면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고 그때의 느낌과 감정, 감각을 그저 떠올리게 되며 '사유'하게 된다. 


이렇게 진짜도 가짜도 아닌 '사랑의 애매성'을 가지고 현상학의 대가 '메를로 퐁티'는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라고 하는데, '하비에르 마리아스' 작가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사랑에 빠져라!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명확하게 구분지어질 수 없이 대상들 간의 관계가 애매모호하다. 날카롭게 경계지어질 수 없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 서로 흐릿하게 침투해있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 무엇하나 선명한 것은 없으며 사랑의 속성도, 사랑이 진행 중이거나 끝난 후에도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정답은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확실 한 게 우리가 경험하는 삶이 아닐까. 우리가 경험하는 삶에서 절대 진리라는 것은 없다. 



recipe 313. 하비에르 마리아스 ‘사랑에 빠지기  

이 소설의 구성은 특이하다. 관조자로서 주인공 마리아는 제 3자의 시선으로 어떤 인물들을 상상하고, 그 인물들을 동경하고, 그 인물들을 자기 나름의 잣대대로 생각하고 추측하고 알아가고, 그렇게 거리를 두고 바라본 어떤 사람에게 또 사랑을 느낀다. 작가는 우리에게 '사랑에 빠져라!' 라고 교훈을 전하기 보다, 이렇게 한발 떨어져 사랑을 사유하는 자를 통해 '사랑에 빠지기'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해보게 만든다. 어차피 이 소설을 읽는 나는, 내가 사랑을 경험하고 빠져드는 게 아니라, 소설 속 사랑에 대해 그저 사유하게 되는 독자일 뿐이다. 액자 속의 액자와 같은 액자식 구성이라고 해야할까.     


이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사건은 다른 작중 인물들이 화자 마리아에게 들려준 것이거나, 화자가 전지적 시점으로 상대의 심리를 유추한 것이다. 편집자 마리아는 아침마다 같은 카페에서 식사하는 한 부부를 보고, 완벽해 보이는 부부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건조한 삶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지켜보며 관조하던 부부 중 남편이 갑자기 살해당하고, 마리아는 위로하러 부부의 집을 찾았다가 살해당한 남자의 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미망인인 친구의 부인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우연한 기회에 남자의 살인 사건에 상상하지 못한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마리아는 자기가 본 것뿐만 아니라, 다른 작중인물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리라고 상상한 것을 서술한다. 그 어떤 정보도 직접적인 것이 아니므로 항상 의심의 여지를 남긴다. 심지어 신문에 실린 기사도 세세한 설명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진실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실은 절대 선명하지 않으며, 다른 수많은 것과 뒤엉켜있다. 이렇게 이 소설은 그 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사실에 대해서도 분명한 윤리적 판단을 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철학적 깊이가 있는 소설가 같은데.. 노벨상을 타려면 장수를 해야한다. 오랫동안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올해 별세했다.


참고: http://moonji.com/book/20993/



recipe 314. 이승우 ‘생의 이면  

이렇게 제 3자의 시선으로 소설을 구성한 한국 작가가 한명 있다.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에서도, 책 속의 화자인 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소설가 박부길의 인생을 평론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처럼 이승우도 박부길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그 인물의 감정을 유추하고, 독자는 작중 인물인 그가 평론하기 위해 유추해낸 박부길의 인생을 소설로서 감상한다. 



이러한 구성의 소설의 작법은 그저 놀랍다. 그저 그런 작가의 머릿속 세계와 사유체계가 궁금할 뿐이다. 



목표일: 213/365 days

리서치: 314/524 rec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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