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의 '존스'와 한국 정치의 '돼지'들

世音小評(2025. 8. 25)

by 완서담필

동물들의 혁명은 분명 성공한 듯 보였다. 농장은 더 이상 인간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모든 동물이 평등하며,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세상이 온 것 같았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껴 두었던 우유와 사과가 매일 아침 조금씩 사라졌고, 누구도 그 일에 대해 크게 묻지 않았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때 영악하게 생긴 돼지 한 마리가 앞에 나섰다.


“우리가 먹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돼지들은 농장 재건이라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머리를 쓰는 일을 하루종일 합니다. 우리가 없으면, 우리가 쫒아낸 과거의 폭군, 그 ‘존스’가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 순간, 과거 함께 쫓아낸 인간의 이름이 다시 불리기 시작했다. 공포는 곧 권력을 지탱하는 언어로 변해 갔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말과 공포가 어떻게 권력의 언어로 뒤섞이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이라는 농장에도 그 돼지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한쪽은 과거의 ‘존스’를 불러내 공포를 이야기하고, 다른 쪽은 또 다른 ‘존스’를 예고하며 혼란을 말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존스’를 각자의 품속에 몰래 숨겨 두었다가, 자신들이 불리해질 때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국가의 기둥이다. 우유와 사과는 우리가 먹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을 지켜 그 ‘존스’로부터 당신들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문제는 더 이상 ‘존스’가 아니다. ‘존스’의 귀환을 빌미로 돼지들의 특권을 뻔뻔하게 정당화하는 그 언변, 그것이야말로 문제다.


동물농장의 동물들이여, 아니, 이 땅의 시민들이여. 그들이 또다시 그 ‘존스’를 꺼내 들어 당신의 발을 묶게 둘 것인가. 그들이 상습처럼 꺼내드는 그들만의 그 ‘존스’들에, 우리는 언제까지 끌려 다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