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텃밭 이야기 (10)
일 년 중에 반은 가을이고, 나머지 반을 봄·여름·겨울이 고르게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가을을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것도 기후변화 때문일까. 올가을은 유난히 짧게 느껴진다. 아니, 지금이 정말 가을이 맞나 싶을 만큼 존재감이 옅다. 그래도 노란 은행잎은 어김없이 떨어지고, 긴 소매 옷을 꺼내 입게 되는 걸 보면, 분명 가을은 가을이다.
하지만 그건 이름뿐인 가을일지도 모른다. 여름의 후덥지근이 아직 기운을 거두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겨울의 싸늘함이 예고 없이 다가오는, 곧 뜻하지 않은 겨울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이름뿐인 가을.
계절의 뒤바뀜을 어찌할 수 없듯, 기후가 달라진다 해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지만, 있을 때 그 소중함을 알아보는 일, 그게 더 어렵다.
가을이 아직 가을다울 때, 그 가을을 느끼자.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문득 청춘의 가을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가을은 왜 그리도 진하게 스며왔던지. 봄보다 가을을 더 좋아하고, 더 앓던 축이었다.
환청 아닌 환취일까. 어디선가 그 시절의 냄새가 난다. 누가 낙엽을 쓸어 모아 태우기라도 하는지, 희미한 연기 냄새 속에 오래된 풍경이 되살아난다. 좁은 골목을 쓸고 지나가던 바람, 해질녘 모닥불의 온기, 그때의 공기. 그런 것들이 그립다.
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텃밭.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리하던 빨간 래디시는 밭이랑의 구멍으로 존재의 흔적을 남긴 채 또 다른 순환의 주기를 따라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채우듯 흰무가 자라고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며칠 사이, 흰무 주변엔 잡초가 우후죽순처럼 돋아났다. 잡초라 불리는 이 풀들에게 붙여진 이름들을 또 잊었다. 하긴, 이름이라는 게 꼭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무명의 질서가 이곳의 자연일지도 모른다.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흙의 숨결이 묵직해졌다. 가을을 오래 붙잡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놓아주는 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을 배웅하며, 나는 또 한 순환의 등에 올라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