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텃밭 이야기 (12)
해마다 4월이면, 고성 터 아래를 따라 난 2차선 도로 양쪽으로 노랗게 핀 유채꽃 플란타가 300여 개 늘어선다. 벚꽃이 필 무렵마다 열리는 봄 축제(마쯔리)의 장식이다. 그 사이사이로는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열도에 사쿠라가 피어나면 이 마을에도 봄이 찾아온다. 축제라 해 봐야 에도 시대 영주의 기마 무사 행렬이 재현되는 정도지만, 사람들의 발길을 붙드는 건 결국 활짝 핀 벚꽃과 유채꽃의 어울림이다.
처음 그 축제를 보았던 건 20여 년 전이었다. 참 신기하기도 하고, 누가 저렇게 유채꽃을 정성껏 길러 내놓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이 마을에 살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주인공은 1~2년 임기로 돌아가며 맡는 마을 자치회의 조장(쿠미쵸)들이다. 20세대 남짓한 마을에서 ‘조장’이라 부르는 사람은 반상회의 반장 같으면서도, 역할은 훨씬 더 깊고 진한 존재들이다.
올해는 그 조장(쿠미쵸) 일이 내게 돌아왔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도 추첨으로 민회의 평의회 위원으로 뽑혀 봉사한 적이 있었다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조장 일을 즐겨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먹는다는 건, 사실 처음엔 그만큼 기꺼운 마음이 아니었다는 고백이기도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조장단 회의의 주요 업무는 시에서 배포하는 시민 생활 안내문과 각종 이벤트 전단을 나누어 전달하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는 한 달간의 마을 행사 계획을 상의하고 역할을 정한다. 마을 어귀의 신사, 군국주의의 잔영이라기보다 오래된 성황당이 건물의 형태로 남은 듯한 그곳을 청소하거나, 하천변의 잡초를 베는 일도 있다. 나는 그런 일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역’이라 부른다. 스스로 웃자고 붙인 이름이다. 또 경로의 날 축의금 전달 같은 일도 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니 동네 구석구석을 새삼 더 잘 알게 되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문화의 날 공휴일. 각 자치회에서 두 사람씩 나와 유채꽃 플란타에 흙을 담고 씨앗을 심는 날이다. 장소는 마을 소방서 옆 공터. 30여 명의 조장(쿠미쵸)들이 모였는데, 평균 연령은 60쯤 되어 보인다. 모두들 허리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삽질을 하고, 둘씩 짝을 지어 플란타를 나란히 들고 옮겨 정렬한다. 부족한 흙을 보충하고 평평히 고른 뒤, 흙 위를 눌러 씨앗을 심을 둥근 자리를 내는 작업—그게 의외로 재미있었다. 작은 구멍마다 씨앗 세 알씩을 심고 흙을 덮은 다음, 듬뿍 물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플란타 위에 지지대를 세우고 잡포로 감싸주니, 마치 포장마차 지붕이 줄지어 선 것 같았다.
내년 4월이 기다려진다. 내 텃밭은 아니지만, 내 손길이 닿은 유채꽃 플란타들. 벚꽃 만개한 가로수 아래 노랗게 피어날 그 꽃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바다 건너, 40여년 전 그때 그 노란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던 교정은 지금도 그렇게 봄을 맞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