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이 예순을 넘기고 보니, 지나온 날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우리 두 아들도 이제 마흔을 넘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평온한 은퇴 생활을 맞이하기까지, 그 길 위에 함께 걸어온 아내의 헌신과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새삼 더 깊이 깨닫는다.
우리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시절, 종교 학생회에서였다. 그 후 대학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교제를 시작했고, 군 제대 후 결혼하여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80년대 초 산업화 시대, 나는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하며 광양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첫아들과 한 살 터울의 둘째 아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았다.
우리 부부는 양가 모두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부모님의 도움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월세방에서 단출한 살림으로 출발하여 전셋집으로, 그리고 지방의 15평 주공아파트에 입주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후 서울 근교 33평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첫날밤을 보내며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남편으로서의 나는 둘째였지만, 시댁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을 모시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다. 아내는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큰며느리 역할까지 감당했다. 신혼 시절부터 두 아들을 데리고 광양과 시댁을 오가며 명절과 조상의 제사를 빠짐없이 챙겼다. 심지어 가계를 돕기 위해 두 아이를 유아원에 맡기고 전자 대리점의 방문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탰다.
아내는 시부모님께도 최선을 다했다. 여름휴가 때면 꼭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났고 부모님들의 추억을 만들어 드렸다, 이를 본 시댁 어른들은 아내를 칭찬하며 "이렇게 어른들에게 정성을 다하면 조상의 은덕을 입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처럼 우리 삶은 순조로웠다. 회사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며 승진을 거듭했고, 세월이 지나 S그룹 임원으로 해외에서 십여 년간 근무를 하였고 이후 해외에서 건설사업을 하며 나름의 성공을 이루었다.
아내 역시 서울로 올라와 시부모님께 드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오랜 세월 주택청약을 넣었다. 또한 친구가 운영하던 커피점을 인수하여 20년간 운영하며 가정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며 20년 넘게 준비한 결과, 마침내 강남에 건물을 마련하고 서초동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있기까지, 조상과 부모님의 보살핌이 있었음을 믿는다.
살아보니, 운이 좋은 사람과 복을 받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비결은 부모를 잘 모시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선한 마음으로 주변을 돕는 삶 속에 있다. 그렇게 하면 하는 일이 잘 풀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부모 형제를 도우며 살아온 덕분에 우리 삶도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부자가 되고 건물주가 되는 것은 단순한 욕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주변의 도움과 선한 마음,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함께해야 가능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아내와 함께 나누고 베풀며 살아온 덕분에 모든 것이 잘 풀렸다고 우리는 가끔씩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어렵게 살아가는 MZ세대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 욕심만 앞세우지 말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이웃을 돕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 영향력은 몇 배로 커져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고, 부모님을 우선하는 삶을 살면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크게 받을 수 있다. 나 역시 이를 수차례 경험했고, 결국 삶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아내는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였다. 함께 짐을 나누어 들었기에 무거운 짐도 가벼웠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걸어온 길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인생의 배우자는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나침반과 같으며, 어두운 밤을 밝히는 북두칠성 같은 존재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금방 지나간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인생의 분기점과 도전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였기에 모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제는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두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이 고맙고, 오랜 세월 그림자처럼, 때로는 이정표처럼 내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기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성공하고 행복을 이룰 수 있다. 이 글은 평생을 나와 함께해 준 아내에게 써는 감사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