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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태 Oct 26. 2020

'Oddly Satisfying'으로 런칭 마케팅 하자

눈르가즘? 브랜드 제품에 '시각적 만족감' 부여하기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 수험생의 필수품이었던 제품이 있습니다. 귀에 꽂으면 나오는 백색소음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엠씨스퀘어'인데요. 국내에서는 학습기기로 통용됐지만, 해외에서는 명상용으로 인기를 끌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무(無)의 상태에서 불안감을 느낍니다. 인간이란 원초적으로 신체에서 느끼는 감각으로부터 보호감을 느끼는 동물이거든요. 모니터 속 움직이는 화면 보호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 칸씩 나아가는 시계의 초침을 넋 놓고 보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지속적이고 작은 자극에서 오는 '만족감'(satisfying) 때문이죠.


Youtube 'Oddly Satisfying'


Oddly Satisfying Video(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영상)란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주는 영상을 칭합니다. 새로 탄생한 개념이라기보단 최근 소비 동향에 따라 정립된 장르인데요. 색색의 점토 벽돌이 같은 크기로 잘리거나, 정해진 경계선 안을 촘촘히 페인팅해가는 등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스가 될 수 있습니다. 2017년 귀로 느끼는 ‘귀르가즘’ 열풍의 일환으로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이 쏟아졌다면, 이제 ‘눈르가즘’을 주는 Oddly Satisfying Video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유튜브에 Oddly Satisfying을 검색하면 art(예술), therapy(치료), relaxation(휴식), sleep(수면) 등 다양한 연관 검색어가 뜰 정도로 그 종류가 세분됐고, 오직 Oddly Satisfying Video만 내보내는 채널의 구독자는 172만 명에 달합니다. 궁금합니다. 새롭고 재미있는 게 쏟아지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왜 이렇게 뻔하고 재미없는 콘텐츠가 대세 반열에 오른 걸까요.




왜 대세가 된 걸까?


현대인은 이미 ‘현생’에 충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경쟁 사회 속 생계로 인한 압박감과 사회적 입지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2015년 55만이었던 국내 불안장애 환자가 2019년 71만에 육박했습니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번아웃증후군도 학생과 직장인 사이에서 흔한 질병이고요. 흥미롭게도 Oddly Satisfying Video는 ‘현생’과 정반대의 속성을 갖췄습니다. 복잡하고 상업적인 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는지가 인터넷의 덕목이지만, 이 영상은 지독히도 느리고 지루하죠. 바로 그런 점이 이용자의 마음을 간파합니다. Oddly Satisfying Video를 보면서는 이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거나, 공포나 불안 혹은 분노에 휩싸일 필요가 없거든요. 장대한 히스토리형 콘텐츠에서 오는 피로감도 없죠. 요즘 ‘핫’하다고 해서 찾아봤더니 이전 시리즈를 모두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받겠어요.


콘텐츠 자체가 주는 쾌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뇌는 대칭, 패턴, 반복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둘러싸인 환경은 대체로 비대칭에다가 불균형이죠. Oddly Satisfying Video는 우리 뇌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줍니다. 게다가 세밀한 화면 묘사는 시각적 욕구를, 리얼한 입체음향은 청각적 욕구를 채워주죠. 이 두 가지 감각이 공감각으로 발현되면서 우린 실제 그 행위를 체험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젖게 됩니다. 시청하면서 오는 짜릿한 소름(tingle)이 그 증거라 할 수 있겠네요.




Oddly Satisfying Video의 세 가지 유형


그렇다면 Oddly Satisfying Video는 어떻게 유형화 될까요. 가령 제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계속해서 탭(tap)하는 영상을 제작했다고 합시다. 단순한 행위가 반복되니 보는 사람이 만족감을 느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수용자의 만족감을 채워줄 만한 요소가 없는 행위는 방해에 불과합니다. 무언가 ‘완성’되거나 ‘붕괴’하면서 오는 안정감 또는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야 해요. 이런 필요조건에 따라 우린 Oddly Satisfying Video를 아래와 같이 3가지로 나눴습니다.


1. 비주얼 및 사운드가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배열을 띠는 유형


Youtube 'Quantum Future'


2. 결과가 예상대로 흘러가 완성되는 유형


(좌) Youtube 'Satisfying Channel', (우) Youtube 'Tasty Plus'


3. 관념을 비틀어 붕괴하는 유형


Yotube 'Hydraulic Press Channel'




자연스러운 '인지와 학습'이 '우호와 구매'로


Youtube '뷰티포인트 Beauty Point'


특히 세 번째 유형은 ‘Satisfying Crushing’이라 명명될 만큼 마니아층이 두터운데요. 국내에서는 ‘부수기 영상’ 또는 안타까워 마음이 찢기는 듯하다는 의미에서 ‘맴찢 영상’으로 통용됩니다. 이 심리를 잘 활용한 브랜드가 아모레퍼시픽 유튜브 채널 <뷰티포인트>입니다. 보통은 애지중지 다루는 화장품을 칼로 긁어내고 거침없이 뭉개 버리죠. 제품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지만, 시청자 유입은 여타 브랜드 채널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개설 3년 만에 60만 구독자와 누적 조회수 5천만을 돌파했으니까요.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덕에 외국인 구독자의 비율이 60%에 달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아시아, 북미, 유럽 등 국적도 다양합니다.


Youtube 'CU튜브'


유통업계에서 이를 선도하는 콘텐츠는 편의점 CU의 유튜브 채널 <CU튜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채널에서 처음으로 조회수 100만 뷰를 넘은 영상은 ‘씨유타임즈’의 ‘쫀득한 마카롱’ 편인데요. PB 제품인 쫀득한 마카롱 시리즈 중 아이스마카롱을 제조하는 과정을 담았을 뿐인데 10월 기준 조회수 150만 뷰를 넘었습니다. 3,500개가 넘는 댓글에는 ‘편안하고 기분 좋다’, ‘묘한 쾌감이 든다’라는 반응이 속출하고요.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후속 시리즈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시청자가 직접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 콘텐츠를 확산한다는 겁니다. 이 덕에 영상 유입률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 Oddly Satisfying Video는 제품 마케팅에 최적화된 포맷입니다. 영상 특성상 한 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집중해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오랫동안 보고 있게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특정 제품군의 로열 오디언스라면 그 몰입도는 엄청나겠죠. 예컨대 저는 요즘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데요. 자동차의 디자인을 ASMR로 표현하거나, 내부 가죽 시트의 촉감을 시각화하는 영상이 있다면 자기 전까지 틀어 놓고 볼 거 같아요. 저도 모르는 새 해당 제품을 인지하고 학습하게 되겠죠. 또 같은 관심사가 있는 지인들에게 이 영상을 공유할 테고요. 오로지 이 영상만으로 스몰토크나 토론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일련의 과정은 브랜드에 대한 우호(advocacy)와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겠죠. 그러려면 이미 알려진 요소보다는 새롭고, 눈을 사로잡을 만한 무언가가 있다면 더 좋겠네요. 그래요. 똑똑한 마케터라면 '제품을 런칭하거나 리뉴얼할 때 활용한다면 더욱더 효과적이겠다'라는 인사이트가 머릿속을 스쳐갔을 겁니다. F&B, 가구, 의류 등 분야의 제약도 덜하니 무궁무진하게 변주될 수 있겠내요. 이상하게 재밌는 이 장르, 앞으로 어떤 콘텐츠로 확대될지 기대됩니다.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1. ‘귀르가즘’ 열풍의 일환으로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이 쏟아졌다면, 이제 ‘눈르가즘’을 주는 Oddly Satisfying Video의 시대가 도래.

2. 무언가 ‘완성’되거나 ‘붕괴’하면서 오는 안정감 또는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야 Oddly Satisfying Vide의 조건이 성립한다.

3. 시청자가 제품을 자연스레 인지하고 학습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품 런칭 및 리뉴얼 마케팅에 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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