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혼자이지 못했던, 이제 혼자여도 괜찮은.
나는 오랜 시간 부모님 테두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살던,
죽을 때까지 '엄빠'랑 같이 살 거라고 외쳐댔던 소위말하는 캥거루족이다.
혼자 살 수 없다고. 엄마 아빠랑 사는 게 젤 편하다고.
하지만..
40대에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미혼 싱글여성의 마음은
머리에 꽃을 단 긴 머리 어느 여인처럼 널을 뛴다.
그 당사자만 혼란스러운 마음을 알 거다. 암~, 그렇다.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살아온 탓에 우리 가정 안에서는 마음껏
너무 예의 바르기도 하고, 너무 버릇없기도 하고,
또 너무 배려 넘치기도 하고, 너무 이기적이기도 하고,
너무 외로운 마음도 가지고 있고, 너무 혼자이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으니
나도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와 나는 내가 술을 마시기 시작 한 20대부터 지금까지 종종 술을 함께 마신다.
늘 즐겁게 마시던 우리는,
내가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훨씬 지난 후 언젠가부터는 간혹 결혼에 대한 의견충돌로 마무리되어
즐겁지 않은 술자리가 되어갔다.
엄마가 맛있는 반찬을 해 차려주시면 아빠는
"우리 둘째, 찬도 좋은데 오늘 술 한잔 해야지?"
"술 맛있는 거 뭐 있는데?"
"허허. 지난번에 누가 준 빼갈 있지."
처음엔 술이 맛있네,
우와, 이 술 세네,
엄마, 김치찜이 너무 맛있다~,
오늘 술이 달구만~ 하다가
"둘째, 아빠 지인이 소개해 주는 사람 있는데 만나봐"
뭔가 이 자리의 본론이 나왔나 보다 하는 마음이 든다.
"에이, 싫어요. 전 소개가 안 맞아요. 자연스럽게 만나려 하다가 안 만나지면 난 그냥 혼자 살래.
소개하지 마요."
"시끄럽고!! 잔 말 말고 만나봐.!"
나는 '시끄럽고! 잔 말 말고'에서 감정이 상한다.
"아 싫다고요- 나중에 더 나이 들어서 진짜 함께 살고 싶은 사람 생기면 그때 같이 살게요"
아빠는 '싫다'에 감정이 상하신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그래도 말 잘 듣는 둘째다.
만나보긴 하나,
늘.. 흠...
억지로 나가니 재미있을 리가.
대체 왜 처음 보는 사람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결혼을 목적으로 서로를 가늠해야 하는가 말이다.
나를 살피는 눈동자는 도대체 무엇을 살피는 것이고 무슨 조건을 따지고 있는 것이며 무엇을 상상하다가
흐지부지 호감 없음을 티 내며 예의상 나이스하게 인사하고 헤어지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난 또 예의가 있으니 별로 참하지도 않은 아이가 참한 표정과 눈빛과 행동으로 그 앞에 앉아있다.
희한하게 그러고 오면,
나름 이상한 상처를 받고는 나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곤 하게 된다.
연애도 못 하고 선도 못 보는 찌질이 같은 마음이랄까.
이 데이터가 계속 쌓이면 자존감이 낮아이게 된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 내 노후를 너무 걱정하시어 서로 보살펴 줄 사람을 붙여 주시고 싶은가 보다.
이해하려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오랜 시간 나만을 위해 살아와서 그런지,
주변에 결혼한 지인들의 유부녀삶을 너무 많이 봐 와서 그런지,
현실적으로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을 온몸으로 체감해서 그런지,
우리 부모님처럼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많아서 그런지,
난 생판 모르는 남과 결혼의 연으로 이어가기까지의 에너지 낭비와 감정 소비가 싫었다.
아버진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셨고.
난 독립이 필요했다.
단 한 가지 이유에서 결심한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과 오래 붙어 삶에 아마도 서로의 피로도가 높고 깊게 쌓였으리라.
부모님의 과제라면 과제일 수 있는 결혼으로 독립하지 않음에 죄스러운 마음도 들기는 했으나 그것보다 중요한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지금은 나만을 위한 내 인생 늦은 첫 독립을.
나는 엄마와 자주 가던 추억이 있고, 높은 건물이 없어 유난히 하늘이 많이 보이는 연희동으로 결정했다.
처음으로 집을 구해보는 것이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더라.
인생을 이 만큼 살아도 처음 해보는 것이 너무 많은 나다.
어쩔 수 있나, 초록창 네이버 부동산에서 집을 검색하는 수밖에.
검색할 때 내가 가진 조건에 집의 조건을 맞춰 선택하다 보니 연희동 작은 도시형 아파트가 후보에 오른다.
명목상으론 아파트이지만 사실은 작은 원룸 오피스텔이다.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정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정갈한 직사각형의 모양새와 광각으로 찍어서 널찍해 보이는 듯한 사진, 엘리베이터 유무여부, 좀 비싼 관리비, 관리사무소의 유무여부, 위치.
일단 70% 정도 합격이다.
실물을 보러 왔는데, 이렇게 작은 집이라니.. 살짝 놀랐다.
온라인으로 본 광각 사진은, 참 보기 좋은 '사진'이었던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 짐도 많은데, 나 덩치도 작지 않은데, 식물도 좋아하는데..
들여놓아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집은 작아도 너무 작다. 하지만 현실이다.
작아도 통유리창을 통해 집 안 가득 담기는 밝은 햇살이 좋았다.
통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탁 트인 남쪽의 연남동, 홍대, 합정 쪽의 뷰가 보기 좋았다.
창 앞으로는 눈에 거슬리는 높은 건물이 없고, 저 멀리로 고층 빌딩들이 보이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 90% 만족이 되었다.
비록 관리비는 비싸지만, 엘리베이터가 있고, 창 밖의 뷰도 좋고,
가장 중요한 주변환경이 안전한 것이 좋았다.
그래. 나의 새로운 출발을 여기로 결정하자.
나의 싱글 라이프 인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