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인터라켄 2014 (1)
스위스는 나에게 있어 여행지라기보단 수많은 매체에서 등장하는 '중립 국가'라는 이미지가 더 강한 곳이었다. 그랬기에 부끄러운 말이지만 스위스에 융프라우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나였다. 그런 내가 인터라켄을 여행지로 삼은 이유는 인터라켄의 목가적인 마을 분위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스위스 시골 마을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초록의 초원 위에 동화 같은 건물이 지어진 곳은 인터라켄이 유일한 줄 알았다. 조용히 흐르는 강가를 거닐며 그 마을을 경험하고 싶던 나는, 도시적인 여행지를 가기 직전에 인터라켄을 목적지로 정했다. 나름 여행에 균형을 주고 싶었던 마음에서였다. 그런 나를 기다리던 것은 세상의 지붕이라 불리는 거대한 설산이었다.
인터라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 중이었다. 역시나 숙소 예약 따위는 없는 대책 없는 방문이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 한밤중에 도착하는 것은 이미 나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이스탄불과 산토리니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은, 어떻게든 길은 있다는 사실이다. 대담함은 이미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길거리에서 한국인들이 보이자 무턱대고 가장 친근해 보이는 분을 찾아가 이 근처에 괜찮은 한인 민박이 없냐고 여쭤봤다. 그분은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인터라켄에 있는 민박집 두 군데 정도를 추천해주셨고, 각 민박집이 갖는 장단점들을 나열해주셨다.
여행하면서 내 나름 성급한 일반화를 한 것이 있는데, 여행 오는 사람 치고 불친절하고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워낙 인복이 잘 따라주는 나라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까지, 내가 만난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뿐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즐기기를 원하는 도전적인 사람 치고 안 친절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있을 수 없다...라는 나름의 논리적 흐름까지 갖춘 일반화였다. 그랬기에 거리낌 없이 길거리의 모르는 한국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족스러운 답을 얻은 뒤, 나는 조용한 편인 민박집으로 결정했다. 다른 민박집의 장점은 사람들이 매우 많고, 주인장 분도 워낙 활기차신 분이라 같은 숙소에 머무는 사람끼리 중앙 거실에서 서로 친해지고 술파티를 벌인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건 나에게 단점으로 작용했다. 지금도 딱히 꺼려하는 건 아니지만, 특히나 여행에서는 왁자지껄한 시간보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더 좋다. 그랬기에 조용한 편인 곳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민박집을 찾아가며 본 야밤의 설산은 장대하고 근엄했다. 사실 인터라켄이 융프라우로 더 유명한 것도 아버지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됐다. 목적지에 인터라켄이 있다고 하니까 아버지께서 "융프라우에 올라가냐?"라고 물어보셨던 것이 발단이었다. 그제야 나는 이곳에서 그 유명한 알프스 산맥의 융프라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도시에 근접한 곳에 산맥이 길게 늘어져있을지는 몰랐다.
장관이었다. 눈 덮인 산을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늦은 저녁에 설산을 바라본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미 밤이 내려앉은 도시였지만, 만년설은 여전히 하얗게 빛나며 밤하늘을 밝게 비췄다. 또한 설산 특유의 고독하고 고고한 분위기가 밤공기를 만나 더욱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을 자아냈다. 흡사 은둔자가 쓸쓸한 눈으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공원에 한동안 서 있다가 시간이 더욱 늦어질라 얼른 숙소로 향했다.
숙소의 주인분은 온화하게 나이를 드신 할머니였다. 다만 이 숙소가 왜 젊은이들보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좀 있는 분들이 찾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 숙소에서는 10시 이후로 절대적인 정숙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순간 베를린 숙소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그분의 설명에 충분히 납득이 갔다. 애초에 이 도시 자체가 밤에 시끄러워지는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조금만 시끄러워도 밤에 민원이 날아오며 그럴 땐 이곳에 고용된 독일 경찰들이 들이닥친다고 한다. 타지에서 숙박업을 하며 현지인들의 분위기에 녹아들어 그 삶을 존중하는 것이기에,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시간은 저녁 8시 30분이었다. 저녁을 먹지 않았기에 몹시 시장했고, 나가서 밥을 먹고 들어오면 얼추 10시가 될 거라는 생각에 짐을 간단히 풀고 거리로 나갔다. 내일 아침 일찍 융프라우에 오르기 때문에 일찍 자야 했기에 시간도 딱 맞아떨어졌다. 어디서 뭘 먹어야 하는지 아는 게 전무했기에 주인 분의 추천에 따라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는 송아지 스테이크를 시켰고, 조금 욕심 내어 따뜻한 수프와 맥주 한 잔을 시켰다. 생각보다 추운 날씨였기에 얼어있는 몸을 살짝 덥히려는 심산이었다. 따스한 국물과 맥주가 몸을 한껏 데워주자 기다리던 송아지 스테이크가 나왔다.
사실 지금 와서는 그렇게까지 다른 스테이크랑 차이가 있었나 싶다. 하지만 여행 왔다는 분위기 때문일까? 송아지 스테이크라는 이름 덕분에 평소보다 고기가 더 연하게 느껴지고 맛있게 다가왔다. 걸신이 들렸는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접시를 깨끗하게 비워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가격 때문에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치운 것도 있었다. 누가 살인적인 물가의 나라 아니랄까 봐 음식 하나에 한국에서는 1~2만 원이면 먹을 걸 4~5만 원은 훌쩍 넘어갔던 것 같다.
밥을 먹고 나니 배가 든든해져서 추위에도 불구하고 시내를 찬찬히 거닐었다. 주인 할머니 말대로 인터라켄의 밤은 그 어느 도시에 비해서 조용한 편이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항상 시끌벅적한 밤거리와는 다른 느낌. 밤에도 활발한 도시에서는 이상하게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어진다. 그만큼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남들은 밖에서 시간을 소모하는데 나 혼자 집에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한 밤거리를 걸으니 그런 기분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지나치게 빠른 생활 속에서만 살아와서 그럴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숙소에 일찍 들어가는 것에 단 하나의 아쉬움도 들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융프라우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충만한 아침이었다. 융프라우 꼭대기에서 먹을 블랙신라면도 기대됐고(이건 사실 그냥 라면이 기다려졌던 것 같다...), 설산 위에서 내려다볼 풍경 역시 설레게 만들었다. 꽤나 비싼 가격의 기차표를 산 뒤에 가만히 앉아 열차를 기다렸다. 확실히 비수기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진 않았다. 사진 찍기에도 편했고, 조용히 가기에도 쾌적한 환경이라 매우 흡족스러웠다.
이른 시간부터 출발한 기차는 두 정거장을 거쳐서 융프라우에 도착한다고 한다. 하나는 그린델발트라는 곳이었고 나머지 한 곳은 기억이 안 난다. 찾아보려면 찾아볼 수 있겠지만, 그냥 '이름 모를 마을'로 남겨두는 것이 꽤나 낭만적인 것 같아서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너무 다 알아버리면 그 당시의 기억이 훼손되는 것 같아서 그랬다. 아무튼 첫 번째 마을에 내려서 20분 정도 시간을 가지고 다시 출발하는 열차였다.
인터라켄의 마을은 아침 일찍 기차를 타러 오느라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상상했던 동화 속 마을 풍경을 처음 보는 곳은 이곳이었다. 어쩜 예상했던 것 그대로인지. 열화 되거나 상상 이하가 절대 아니었다. 푸르른 초원 위에 펼쳐진 주택과 철로가 상쾌한 아침 공기를 더욱 청량하게 만들어줬다.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매일같이 같은 풍경을 보면 지루해질지도 모르지만, 산토리니와 마찬가지로 이곳은 절대로 지루하려야 지루할 수 없는 그런 풍경을 품고 있었다.
기차는 계속해서 산 위로 향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들른 역에서는 40분이라는 꽤 긴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여기서 내 사전 조사의 부족함을 한탄하게 됐다.
각지에서 몰려온 여행객들 혹은 현지 사람들이 자연으로 만들어진 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기고 있었다. 여덟 살 때부터 스키를 매년 타 온 나로서는 여기서 스키를 타보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매우 한탄스러웠다. 자연으로 만들어진 눈 위에서,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신나게 달릴 생각을 하니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고, 시간이 된다면 오늘 혹은 다음 날 여기서 꼭 스키를 타겠노라고 다짐했다.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이들을 감상하는 사이 시간이 다시 흘러 열차 출발 시간이 됐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그토록 고대하던 융프라우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슬슬 머리에 현기증이 찾아온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융프라우에 올라가면 고산 증세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치기 어린 마음에 '난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그 어떤 대비책도 준비해 가지 않았다. 하다 못해 멀미 방지용 약 하나조차도 챙겨가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는 순백의 설산 봉우리들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지만, 그 아름다움 마저도 오히려 현기증을 배가 되게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티고자 하는 마음으로 종착점에서 내렸다.
정상 안에 만들어진 얼음 통로에는 갖가지 얼음 조각상, 융프라우의 발견에 대한 역사 등등에 대한 그림들이 넘쳐났다. 통로를 지나며 하나하나 읽고 사진을 찍어댔으나, 그럴수록 고산 증세는 점점 심해져서 두 눈을 간신히 뜨고 걷기 힘들 정도까지 이르렀다. 아침에 공복에 출발해서 그런가 하는 마음에 얼른 신라면 블랙을 먹으러 홀로 이동했다.
살인적인 가격의 컵라면을 주문해서 먹었지만, 고산 증세로 인한 현기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별에 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폐쇄된 통로 안에 있어서 그 냉기가 현기증을 심하게 만드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얼른 홀을 빠져나가 봉우리에 올랐다.
확실히 자연풍을 쐬고 나니 조금은 현기증이 더뎌지는 듯했다. 융프라우에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은 360도를 다 돌아도 가히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이렇게 티 없이 맑은 눈 덮인 산을 본 건 영화에서나 가능했지, 실제로 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멀리 느껴지던 구름도, 태양도 지금 이곳에서는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지상의 광경들이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세상 그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이 산을 중심으로 내려나가는 산맥들이 세상 곳곳에 펼쳐 있고 그 지류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신비한 공간들이 짠하고 나타날 것 같은 그 환상적인 기분.
분명 추워야 정상인 환경인데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쉽게 시리는 귀마저도 이때는 멀쩡했다. 아니,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넋이 나간다는 건 이런 건가 싶다. 광대한 자연이 주는 경외감 앞에서, 그 외에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던 그때의 그 감정을 다시 회상하려 해도, 아련하게 손에 잡힐 듯 말듯하다가 사라져 버린다. 5년 뒤 호주에서 비슷한 감각을 느꼈지만, 여전히 융프라우에 비할 바는 못 했다. 사람들이 왜 북유럽의 넓은 빙하지대, 남극 탐험, 히말라야 등정 등등에 몫을 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나치게 따사로운 햇살에 눈부심이 한계치에 다다를 때쯤, 잊혔던 현기증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타지에서 실신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몸이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홀로 들어왔다.
그 와중에 또 어떻게 초콜릿 사진과 몇 개의 스위스산 초콜릿을 샀는지, 말 그대로 비틀비틀거리며 재빨리 기차가 있는 곳으로 왔다. 중간에 진료소 같은 곳이 보였다. 아마 나처럼 고산 증세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위해 지어진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살 것만 같았던 나는 얼른 열차에 탑승했다. 다행히도 열차는 곧바로 산 아래로 출발했다.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이때부터 세상 모르게 잠들었던 것 같다. 중간에 열차가 멈췄는지 어디에 들렸는지 관심도 없었다. 빨리 지상에 내려가 약을 먹고 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바람이 통해서였을까, 나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인터라켄 역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한숨 자고 나니까 조금은 나아진 게 확실했다. 괜찮아졌으니 조금 더 도시를 돌아볼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현기증이 있었다. 하루 정도는 이렇게 쉬어도 괜찮다 싶었다. 시간을 버린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어젯밤에 느낀 인터라켄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미리 경험한 것이 이 생각에 박차를 더했다. 열차에서 내려서 어떻게 숙소까지 갔는지는 기억이 전무하다. 다만 사진 한 장만이 그 와중에 사진 찍을 생각만은 버리지 못했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예쁜 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본능인가 보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주인 할머니께 부탁해서 두통약을 먼저 찾았다. 나를 본 그분은 혀를 끌끌 차시더니 공복에 약도 안 챙기고 올라갈 때부터 알아봤다며, 오늘은 약 먹고 푹 쉬라고 하셨다. 저녁 6시라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허겁지겁 씻고 약을 먹은 나는 이내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하루였다. 충분한 준비와 조사만 이루어졌다면, 중간에 들린 마을에서 스키도 타 볼 수 있었으며, 시내에 있는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즐길 수도 있을 터였다. 전에 들린 도시들에 관한 글에서 '아무렴 어떤가? 이것도 이것대로 여행이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자주 했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야 좋지 너무 대책 없이 다니는 건 나중에 후회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이날을 기점으로 내가 본격적으로 들를 도시들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해가는 습관을 들인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로 인해 그 도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여행에서 아쉬움을 남기는 건 싫었다. '이런 것도 여행의 묘미지'라는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겨나면, 그건 나 자신의 후회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이 될 터였다. 이때의 경험 덕분에 그 후에 들렀던 여행지들에서는 아쉬움은 있었을지언정,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감사한 하루였다. 마지막으로 할 말일 테지만, 이미 충분히 즐거운 하루였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