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베를린 2014
독일에서 베를린을 목적지 중에 하나로 삼은 이유는 그곳이 갖는 역사적 특성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였고, 그 분단의 경계가 되는 베를린 장벽이 있는 도시. 같은 분단국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그 장벽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베를린은 지금 있어서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면서도, 그렇기에 한 번쯤은 다시 가봐야 할 도시이기도 하다. 썩 인상 깊은 기억도 없는 곳이자, 불쾌한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그곳에서 사흘이나 보낸 게 믿기지 않는다. 계획 없던 즉흥적인 여행이라 그런가 싶다가도 즉흥적이면서도 너무 황홀했던 이스탄불과 산토리니의 경험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지금 다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간다면, 난 베를린을 사랑할 수 있을까?
베를린은 항상 비가 내렸다. 그래서인지 도시 자체가 잿빛인 기억이 강하다. 분명 많은 것들이 밝은 빛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짓누를 만큼 우중충한 공기였다. 그래서인지 베를린을 거니는 것 자체가 매우 피로했다. 시내를 거닐 때도, 대중교통을 타고 밖을 바라보며 이동할 때도 어딘가 모르게 피로가 누적되는 것이 피부로 체감되는 시간들이었다. 사실 충분한 쉼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와 짜증 가득히 출발한 일정 때문에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베를린에서는 시내에 있는 한 민박집에서 지냈다. 나름 도시의 중심부에 있고 베를린 역, 공항에 인접해있어서 접근성 때문에 선택한 곳이었다. 허나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왜 장소 리뷰를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했다. 그 민박집에는 이상한 규칙이 하나 있었다. 주인아주머니 내외분의 신념이라고 해야 하나? 모든 투숙객들은 같은 시각에 거실 식탁에 앉아 동시에 식사를 해야 했다. 권장사항이 아니라 강제사항이었다.
나는 설마 이게 강제 사항일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아침 7시 30분에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다가 왜 그 시간에 머리를 감냐고 엄청나게 타박을 들은 나는 이게 진짜인 걸 알게 됐다. 사실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여행 와서까지 타인이 정해준 시간에 나의 일정을 맞춘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태로 어영부영 밥을 먹고 숙소를 나왔으니, 그 와중에 처음 본 게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회색 도시라니, 힘이 빠질 만도 했다.
그런 내게 조금이나마 쉼을 줬던 공간이 있다. 바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였다. 워낙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터라 베를린 필하모니는 내게 너무 익숙한 이름이었다. 유명한 영화 음악, 게임 음악 등등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아티스트기도 했다. 그랬기에 베를린 시내에 있는 필하모니 건물을 지도에서 보고는 그곳으로 냉큼 달려갔던 것 같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감상하는 시간은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중간에 피로 때문에 잠시 꾸벅꾸벅 졸긴 했지만 그 순간마저도 쉼이 일부라고 느껴졌다. 차가운 바깥공기에 비해 적당히 더운 내부 공기를 느끼며 온몸이 이완되어가는 것은 상당히 좋은 기분이었다.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가득 채우고 거기에 몸을 담근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벌써 여행 온 지 일주일이 넘어가니, 목욕을 못해서 그런가 느닷없이 목욕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건물 밖으로 나오자 축축한 피로감이 다시 엄습했다. 이대로 다시 시내로 간다면 조금 전에 누렸던 쉼의 남은 온기마저 금방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보통 이런 생각은 으레 도심에서 살다 치이며 느끼는 종류의 것일 텐데 왜 뜬금없이 여행 와서 든 건지 잘 모르겠다. 베를린이 너무 서울이랑 분위기가 흡사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동안 눌려왔던 것들이 운 나쁘게 그때 와서 터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스탄불과 산토리니에서 내 모든 것을 풀어놓고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순간순간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됐다. '지쳐있다'라는 마음과 대면했을 때, 일상 속의 나라면 그 마음을 애써 무시했을 터다. 하지만 그 마음과 솔직하게 마주하자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있고 싶었다.
비 오는 날에 사람들이 없을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나는 문득 베를린에 꽤 큰 동물원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냈다. 사실 동물원으로 유명한 도시도 아니고, 굳이 베를린 와서 동물원을 가는 것도 이상했지만 발걸음은 솔직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금방 도착했고, 예상대로 그 넓은 동물원에 나 혼자만 있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순간들이었다. 동물원이라니. 비 오는 베를린에서 홀로 동물원을 돌아다니며 카메라를 찰칵거렸을 나를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좋게 보면 다시는 해보지 못할 경험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면 시간 낭비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의 나는 매우 만족스럽고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었다.
베를린은 짠맛이 매우 강했던 곳이다. 즉흥적으로 정한 여행지였지만, 그래도 하나 기대하고 갔던 게 바로 '커리 부어스트'라는 음식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카레(커리)는 그다지 호감의 영역에 있던 음식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카레를 그렇게 즐겨 먹지도 않았을뿐더러, 군대를 전역하고 난 직후라 군대에서 먹던 카레가 카레의 전부라고 생각될 때였으니 말이다. 엄밀히 말해 커리 부어스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네 카레 범벅이 아니라 카레 가루를 뿌리는 요리지만, 단어가 주는 이미지만 놓고 볼 때는 그랬다.
맛집을 찾을 때 분위기를 알아보는 건 필수 요소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다고는 해도, 음식점을 고를 때 그곳이 주는 분위기 역시 장소 선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만큼 분위기가 음식의 맛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걸 베를린에서도 몸소 체험했다. 아니, 여행 내내 체감했던 것 같다. 이 날은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가게가 되어 서양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별 특색 없는, 어디서나 볼법한 그런 평범한 가게였지만, 그곳에서 먹은 버거, 커리부어스트, 감자튀김, 그리고 시원한 콜라 한 병은 충분히 맛있었다. 심지어 콜라마저도 물맛이 다르게 느껴져서 먹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다. 물론 맛이 특출 나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던 음식들이 현지에서 먹는 것만으로도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이 신기해서 그랬다. 진짜 맛이 다른 건지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다시 가봐야 알 것 같다.
생각해보면 베를린에서 먹은 음식들은 모두 한국에서 접해본 것들이었다. 슈바인 학센 역시 독일의 대표적 음식 중 하나인데, 이는 한국말로 쉽게 바꾸면 그냥 족발이다. 독일식 족발이랄까?
같은 부위로 요리했지만 맛은 확연히 달랐다. 미묘하게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이 마치 한국에서 먹는 통닭 느낌이었다. 확실히, 커리부어스트를 먹을 때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짠맛이 매우 강했다. 짠맛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여기서 먹는 음식들은 짠맛 자체가 하나의 특성이 되는 그런 짠맛이 아니었다. 그냥 간이 매우 과하게 된 짠맛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여행 와서 한 번쯤 먹어보는 걸로는 좋지만, 이걸 삼시세끼 매일 먹는다는 상상을 하니 살짝 입맛이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독일의 음식은 딱히 그리워지진 않는다.
사실 베를린이 이스탄불과 산토리니와 이렇게 극명하게 평이 다른 이유는 예상치도 못한 마무리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상상도 못 한 방법과 이유 때문에 이 도시를 떠나버려서, 마무리가 다른 곳들에 비해 감동적이지 않아서 더 그랬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일일 현지 대학생 투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베를린에는 내가 전에 이용했던 여행사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대학생 투어를 신청하기로 했다. 베를린에 장기 체류 중인 한국인 유학생이 일일 투어를 해주는 것이다. 나름 오래 체류한 분(아마 5년)을 찾아서 일정을 잡았다. 숙소 위치를 알려드리니 아침 8시 30분에 숙소로 픽업을 오겠다고 하셨다. 사실 픽업이라고 해봤자 그냥 마중 나와서 함께 걸어 다니는 것이지만, 또다시 이스탄불에서의 가이드로부터 도시를 안내받는 걸 기대하며 나갔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처음부터 어긋나 버렸다. 물론 그분은 열과 성을 다해 나에게 베를린을 보여주셨다. 정말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셨다. 문제는 어찌 보면 나에게 있었다. 아니, 이제 막 열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팔던 계피맛 흑맥주가 문제였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는 12월이 되면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들을 연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먹거리들을 먹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다가올 성탄절을 즐긴다. 그날도 여김 없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있었다. 가이드분은 나에게 독일 하면 맥주 아니냐며, 추운 겨울 베를린을 걷기 전에 몸을 따습게 데우자고 했다. 그렇게 그분이 권한 것이 계피맛 흑맥주였다. 나 역시 독일의 맥주에 대한 로망이 한껏 부풀어 올라있었고, 크리스마스 마켓의 성탄절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이 맥주를 사서 들이켰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던 성탄절 모습 가운데 있다는 분위기가 나를 더욱 고양시켰던 것 같다.
이 날따라 피곤했던 건지, 급격한 체온의 변화 때문인지, 너무 빨리 마셔버린 탓인지는 모르겠다. 갓 끓인듯한 맥주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나는 곧바로 정신이 몽롱해짐을 느꼈다. 문제는 점차 나아지겠지란 생각으로 그 상태 그대로 가이드 분과 함께 투어를 시작한 것이다.
맥주를 마신 뒤 처음으로 안내받은 곳은 홀로코스트 추모비가 있는 장소 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부의 홀로코스트 자행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악랄한 사건이었다. 나 역시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등등의 영화를 통해 그 암울한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가이드분이 안내해주신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그야말로 하나의 무덤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아무 역사적 배경을 몰랐다 하더라도, 이곳에 처음 와보는 사람은 추모비들이 주는 외형적 암울함에 압도당할 것이라 확신한다. 돌로 된 회색 비석들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비가 내리는 회색의 베를린과 함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하나하나가 거대한 관으로 보이는 건 내 착각이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추모비들 사이를 그저 걷기 시작했다. 똑같이 생긴 비석들 사이를 걷노라니 미궁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는 흑맥주로 인해 점점 심해지는 두통과 겹치며 아찔한 현기증을 유발했다. 환각에 휩싸인 사람처럼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봤지만, 보이는 건 회색 돌덩어리들뿐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경관은 신기루처럼 그 모양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음침함과 적막 때문에 주황색 패딩을 입고 있던 가이드분을 찾아서 이 미궁을 빠져나왔다. 이때부터 견딜 수 없는 두통이 시작됐다.
위 사진들 중 좌측 하단에 있는 게 브란덴부르크 문이라는 걸 제외하고는 나머지가 어떤 곳인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분명 옆에서 가이드분이 뭐라고 설명해주셨던 것 같은데, 당시의 나는 감기는 눈을 참으며 정신을 붙잡는 데에도 매우 힘이 들었던 상태였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을 걷다가 내 인내심으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왔다. 원래 당일 8시쯤에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가 예약되어 있었으나, 간신히 정신을 차려 해당 기차 편을 취소하고 12시 기차표를 예약했다. 현재 시각은 11시 20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갑자기 12시에 기차를 타야 한다는 나를 보고 가이드분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시다가, 이내 시간이 촉박하다며 기차 어플을 켜서 최단거리로 나를 안내해주셨다. 심지어 기차역까지 나를 바래다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물론 그분 입장에서는 '일'해야 했던 시간이 갑자기 자유 시간으로 변했으니 좋았을 수도 있으나, 투어에 임했던 내 자세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투어는 가이드와 여행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어느 한쪽만 열의를 갖고 임해서는 좋은 투어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낙제점이었다.
아마 그분은 맥주 한 잔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는 걸 꿈에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기차역에 들른 나는 미리 맡겨둔 짐을 찾아 곧바로 기차에 타고 잠들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렇게 나의 베를린 여행이 마무리됐다.
참 어이없는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야 이것도 추억이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 모든 순간순간이 고통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베를린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고통이다. 분명 좋았던 순간도 있었을 테지만, 베를린의 그 우중충함처럼, 끔찍한 두통이 모든 기억들을 독차지해버렸다. 여행을 다녀오고 베를린에 대해 사람들이 물을 때, 난 항상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곳이라고 대답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는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은 너무 좋았던 곳인데 왜 그러냐라는 질문을, 안 가본 사람들은 그렇게 별로냐는 질문을 한다. 그제야 난 왜 내 기억이 끔찍했는지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사실 온전히 내 탓인데 이 모든 것들을 베를린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미안한 감정이 크다. 그렇기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뿐인 곳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다시 한번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해 가야 하지 않나 싶은 곳이기도 하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 번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방문해보고 싶은 도시다. 물론, 그때는 추운 날에 끓인 계피맛 흑맥주는 절대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