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산 토리니 2014 (3)
생각해보면 '섬'이라는 공간에 온 건 산토리니가 두 번째였다. 살면서 섬이라고 할만한 곳에 가본 건 제주도가 유일했던 나에게, 산토리니는 내가 처음으로 여행 온 섬이었다. 사실 제주도는 섬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컸고 항상 혼자가 아니라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섬이 주는 정취를 맛보지 못했던 것 같다. 섬의 사전적 정의는 주위가 수역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다. 말 그대로 완전히 바다로 둘러싸인 땅이다. 이것을 한껏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산토리니다. 면적이 그렇게 넓지 않기 때문에 고도가 그렇게 낮은 곳만 아니라면 어디서든 바다를 볼 수 있다. 그 광경들이 주는 이미지는 특별하다. 특히나 모든 바다가 지평선이라면 말이다.
여유롭게 일어나는 것과 늦잠을 자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아침 10시였지만 늦잠을 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푹 자며 휴양지의 편안함을 만끽했다는 성취감이 먼저 들었다. 신기한 일이 아닐까? 늦잠을 자는 날은 몸이 잠시 편하다. 허나 무언가에 늦었다는 압박감 때문에 마음이 초조해지고, 덩달아 몸마저 급해진다.
오늘은 달랐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크게 활짝 기지개를 켜고는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온몸의 뻐근함을 시원하게 날려줄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눈에 담기 모자랄 정도로 넓은 푸르름을 보니 가슴마저 뻥 뚫리는 것 같다.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이 정도 여유는 누릴만하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샤워를 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반신에 긴 샤워타월만 두르고 먹는 아침 식사는 꽤나 분위기 있었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창밖의 바다를 보고, 다시 한 입 베어 물고. 저 시원한 바다를 반찬삼아 느긋하게 식사를 끝마쳤다.
산토리니 섬의 중부와 북부는 이만하면 다 본 것 같았고, 이제는 남부에 들를 차례였다. 마지막 날이기에 모든 곳을 다 돌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여유를 가져야, 비로소 안 보이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깨달음 때문에, 한 곳만 골라서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곳은 '레드비치'라는 곳이었다.
레드비치에 가기 위해서는 피라 마을에 들려 버스를 환승해야 했다. 나갈 채비를 한 뒤 이아 마을의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으로 가는 방법은 사실 두 가지가 있다. 나를 땀 뻘뻘 흘리게 했던 계단의 언덕, 그리고 조금 더 길지만 경사가 완만한 도로. 몸이 편한 걸 따지자면 당연히 후자를 골랐어야 하지만, 나는 그다지 망설임 없이 전자를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계단을 오르며 보는 해변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또한, 아스팔트 도로라는 인위적인 길을 걷기 싫었다. 왠지 이 계단은 몇 백 년 전부터 이곳에 있었을 것만 같았고, 그런 장소를 걷는다는 게 이곳에서의 최고의 낭만이었다. 결국 낭만 때문이었다. 여행은 낭만 아니겠나.
확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건 두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붉은색 계단길을 다 오르면, 순백의 마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대조가 더욱 이곳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설레고 벅차게 할 수가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리따운 하얀색은 이곳에 실재하고 있었다.
하늘은 역시 청정했다. 이렇게 짙고 맑은 하늘은 살아가면서 처음인 것 같다. 티 없이 깨끗한 지중해를 닮아서 그런 걸까?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것이 가능한 곳이 아닐까 싶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그 속을 걸었다.
마침 도착한 버스를 탄 뒤, 피라 마을에 도착해서 레드비치를 향하는 버스로 갈아탔다. 도착해보니 시간은 어느덧 1시. 아침을 늦게 먹어서 점심을 거르기로 했다. 굳이 하루에 세 끼를 다 먹어야 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이스탄불의 음식이 그 도시를 완성시켜주는 퍼즐 조각이었다면, 산토리니 섬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퍼즐이었다. 경치를 보고 취하고 배를 불리겠다는 마음으로 여행에 임했다.
비수기의 단점과 장점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분명 산토리니에서 손꼽히는 명소인데 사람이 채 열 명도 되지 않았다. 마을로 보이는 곳에는 여러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간혹 가다 보이는 곳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적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좋은 반면에, 활기 넘치는 기운이 문득 그립기도 한순간이었다.
레드비치로 가려면 좁은 언덕길을 통해 해안가를 따라 걸어야만 했다.
좁은 길을 따라 걸어오며 두 무리의 사람들을 봤다. 첫 번째는 엄마와 엄마의 손을 잡은 두 명의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혹여라도 아이들이 넘어질까 조바심을 내는 어머니의 떨리는 심정이, 그녀의 발길에 치여 소심하게 구르는 자갈들 덕분에 훤히 보였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많은 곳을 여행했다. 아마 그때의 내 모습이 저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문득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두 번째 무리는 한쌍의 선남선녀였다. 서로가 서로를 단단히 붙잡아주며 걷는 모습. 방금 본 어머니처럼 두 남녀 역시 조심스러웠지만, 그들의 발길에 치이는 자갈들은 둔탁하고 단단한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그 두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를 꼭 붙잡아주며 함께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레드비치에 도착한 뒤,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전히 푸르른 하늘과 지평선을 보며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온통 새빨간 돌로 가득 찬 해변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솔직히 그냥 검은 돌들에 빨간 페인트를 들이부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레드비치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모두 붉은 돌로 되어 있었다.
사람은 나 빼고 한 명도 없었다. 순전히 나 혼자였던 것이다. 아마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아까 두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이 넓은 공간에 나 홀로였다. 그게 너무나도 감사했다. 선물 같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두 팔을 벌리고 "좋다!"라고 소리 질렀다. 메아리는 들리지 않았다. 파도와 바람 소리에 묻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갔다.
침묵 때문이었을까? 어제 느낀 감정, 외로움이 다시 나를 엄습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외로움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겪는 본연의 외로움. 외로움을 달래보고자 노래를 불러봤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는 해도 이런 곳에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는 게 조금은 민망할 수 있었으나, 이상하게 그런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붉은색과 푸른색, 두 생동감 넘치는 색들이 어우러진 레드비치는 역설적이게도 소멸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침묵, 폐허, 그리고 시간. 이곳에 더 있다가는 나까지 소멸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본다. 어쩌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근심, 걱정, 두려움, 슬픔을 겪을 필요도 없이 이 자리에서 저 폐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파도와 함께 밀려들어왔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푸른 지평선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 되어 나에게 죽음의 손짓을 했다. 동경이 단숨에 공포로 변하는 기이한 순간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대자연 앞에 서면 경이를 넘어 공포를 느낀다던데(코즈믹 호러)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 아닌가 싶다.
해변을 빠져나가기 직전, 아까는 안 보이던 한 할아버지가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었다. 도대체 이 할아버지가 언제 왔지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분은 돗자리에 갖가지 유리병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앞에 가격표가 적힌 걸로 보아 파는 물건인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유리병 안에는 붉은 돌로 조각된 배의 조형이 들어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붉은 해변에서 이 할아버지를 마주치자, 신비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원래라면 그 신비한 느낌에 당장이라도 그 병 중 하나를 샀을 테지만,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씩 웃는 모습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할까? 여기서 저 유리병 하나를 집으면 순식간에 정체 모를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꺼림칙한 기분에 단숨에 해변가를 빠져나왔다.
해변의 입구까지 빠져나온 뒤에야 내 몸을 감싸던 두려움이 가셨다. 마치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언덕 저편은 뭔가 기이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발걸음마저 버스 정류장을 향해 돌렸다. 다시 한번 가보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들이 많을 때 가보고 싶은 곳이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레드비치에서만 두어 시간을 보낸 것이다. 버스를 타고 이아 마을까지 가는데 푹 잠만 잤다. 이아 마을에 내리니 벌써 오후 5시. 11월이라 벌써 해가 질 시간이었다.
점심을 안 먹었기 때문에 공복감이 상당했다. 그래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는 참 현명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내 숙소는 어부들의 마을 한가운데였고, 이 레스토랑은 어부들이 갓 잡은 물고기로 요리를 해주는 그런 곳이었다.
따뜻한 빵과 신선한 생선 튀김, 그 위에 살짝 레몬즙을 뿌려 먹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지중해 요리였다. 한국에서 자주 먹던 조기와 굴비도 떠올랐으며, 지중해의 물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에 위까지 청정해지는 기분이었다. 곁들인 파프리카와 토마토의 신선함 역시 발군이었다.
저녁식사를 다 마친 뒤, 소화도 시킬 겸 잠시 계단에 올라가 위아래로 이아마을을 감상했다. 오늘이 산토리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기에, 그 외롭고 찬란한 모습을 두 눈에 오랫동안 담고 싶었다.
확실히 여행은 사람의 감수성을 풍부하다 못해 흘러넘치게 만드는 것 같다. 원래 감수성이 지나친 사람이기는 했지만, 되돌아보면 이곳에서는 그 정점에 다다렀다. 산토리니는 그런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마 살아가면서 이렇게 감성에 푹 젖을 시기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해변을 보며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 종소리로부터 신성함을 느끼는 것. 이 모든 감상들을 산토리니가 아니면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상상도 가질 않는다. 아마 많이 보고 싶을 거다. 분명 다시 오는 날이 있을 테지만, 그전까지는 매번 가슴에 품고 그리워할 것이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아픔을 선물해준 산토리니.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와 앉은 아무디 해변을 바라보니 눈이 젖어들어갔다. 그 기분, 그 생각을 그대로 껴안아 잠에 들었다.
지금도 산토리니는 같은 모습일까.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일까. 다른 곳들은 분명히 조금은 변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산토리니만큼은 시간이 멈춰있을 것만 같다. 가끔 sns를 통해 산토리니의 사진을 보긴 하지만, 내가 갔던 산토리니와 너무 다른 모습에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비수기와 성수기의 차이라 그런 건지, sns에 올라오는 이아 마을은 활기차고, 밝고, 생동감이 넘친다. 내가 느꼈던 그 쓸쓸하고 고요한 산토리니는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는 사진들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찍었던 사진들도 그런 감정을 품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걸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서라도 다시 산토리니에 가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