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산 토리니 2014 (1)
유럽 여행에서 두 번째 행선지로 산토리니를 선정한 건 정여울 작가님이 쓴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때문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산토리니의 노을은 푸른색이라는 것,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산토리니에서 집필했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첫 번째 이유에는 조금 오해가 있었다. 노을은 보통 붉은 계통의 색을 띠기 마련인데, 책의 내용 때문에 산토리니의 노을은 진짜 말 그대로 푸른색을 띠는 줄 알았다. 이 사소한 오해 하나 때문에 푸른 노을을 보러 산토리니로 향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산토리니에 갈 수 있었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신혼 여행지로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예습하게 됐으니 말이다.
해외에서 산토리니 섬으로 직행하는 비행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원래 산토리니 섬을 비행기 타고 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기존의 계획대로였다면 이스탄불에서 보드룸으로 넘어가, 보드룸에서 페리를 타고 산토리니 섬으로 갈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 한 이스탄불의 매력 때문에 보드룸을 포기했고, 덕분에 비행기를 타고 산토리니에 가게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산토리니에서의 계획은 전무했다. 이스탄불을 즐기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숙소. 어떻게든 도착만 하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출발했지만, 공항과 마을 간의 거리가 꽤 된다는 사실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심지어 도착하는 시간도 밤 12시라 대중교통이 없는 상태. 자칫하다가는 한밤중에 무거운 짐을 메고 한 시간 동안 걸어야 될 판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를 구해준 건 동향 사람이었다. 산토리니 섬으로 가기 위해 아테네 공항에서 환승 준비를 하는데, 이스탄불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신 한국인 자매분들이 나와 같은 게이트 앞에 계셨던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못 걸었겠지만, 여행의 분위기에 한껏 취해있었던 터라 편하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내 예상대로 그분들은 나와 목적지가 같았다. 마음이 살짝 조급했던 나는 그분들에게 숙소 관련해서 여러 가지를 물어봤고, 그분들은 친절하게도 자기들이 호텔에서 픽업을 요청해놨으니 그 차를 타고 같이 마을로 가자고 제안하셨다. 거절할 입장은 아니었기에 냉큼 수락했고, 함께 산토리니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섬을 뒤덮고 있었다. 이 밤에 한 시간을 걸었을 거라 생각하니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공항에서 나오자 나이를 멋들어지게 드신 건강한 체구의 할아버지가 자매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분께 가서, '숙소가 없는데 혹시라도 같이 픽업을 받아 방을 구할 수 있을까요?'라고 정중하게 여쭤봤다. 그분은 흔쾌히 수락을 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분의 차를 타고 피라마을에 도착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호텔은 '안토니아 아파트(Antonia Apartment)'이었다. 그분은 나와 자매분들께 솔깃한 제안을 했다. 자매분들이 예약하신 방은 2인용 트윈룸인데, 만약 여기서 내가 추가로 30유로를 지불하면 우리 셋에게 5인용 투룸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홀로 여행하는 나에게 있어 이만큼 좋은 조건은 없었으나, 괜히 그분들께 폐를 끼치게 될까 봐 정중히 사양하려 했다. 하지만 자매분들은 별 고민 없이 괜찮다고 수긍했고, 나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주인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여행의 제일 좋은 점 중 하나가, 정말 착하고 친절하신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 지금도 그분들만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당장 30유로를 지불하려 했는데 주인은 '오늘은 피곤할 텐데 내일 결제하자'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셨다. 최근에 힘든 일을 겪었던 그리스라 인심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방은 확실히 넓었다. 원룸 정도 크기의 거실에 화장실, 더블침대가 있는 방, 싱글 침대 세 개가 있는 방. 주인 할아버지 말대로 5인용 방이었다. 그분들은 자기들이 더블침대 있는 방을 사용할 테니, 나에게 싱글 침대 세 개가 있는 방을 쓰라고 하셨다. 같이 잘 건데 싱글 침대가 다 따로 떨어져 있어서 더블 침대가 편하다고 했던 것 같다.
거듭 그분들께 고맙다고 말씀드리며 우리는 각자 차례대로 씻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뭘 할지는 일단 일찍 일어나서 정하기로 했다. 셋 모두 피곤했으니 말이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난 우리는, 산토리니에서 유명한 '화산섬 투어'를 가기로 했다. 주인 할아버지께 돈을 지불하면, 그분이 투어 회사에 직접 연락을 넣어서 우리들의 티켓을 준비하라 일러놓는다고 한다. 이건 여담이지만 그분과 투어 회사 사장이 어릴 적 동네 친구라고...(산토리니는 작은 섬이라 서로가 서로를 모두 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계단으로 된 언덕길에 도착하자 푸르른 산토리니의 바다가 우리를 맞이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맑고 깨끗한 바다는 처음 봤다. 티 한 점 없이 푸름으로 가득한 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물론, 이때만 해도 바로 앞에 고생길이 열리리라는 걸 모르던 우리였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됐지만, 그 길이 험난하다고는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본래 언덕에서 항구까지 내려가는 케이블카가 있지만, 나와 동행분들은 이를 몰랐기에 꼬불꼬불한 내리막 계단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가파른 경사와 긴 계단이 우리를 괴롭힌 건 아니었다. 중간중간에 만난 당나귀 행렬도 고역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나귀들이 싼 배변 덩어리들과 그로 인한 악취가 문제였다. 물론 이 광경이 그리스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해 줬던 건 사실이다(단순히 배변 덩어리들의 악취였을 수도...).
고난의 계단길을 다 내려가자 협소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부둣가가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 말고도 투어를 신청한 많은 관광객들이 부둣가에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더 힘들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건, 이 섬이 '관광지'라기보다는 '휴양지'라 동양인들보다 서양인들을 찾기 더 쉬웠다는 점이다. 물론 비수기인 점도 한몫한 것 같았지만, 다들 휴일을 즐기러 본토에서 놀러 온 사람들 같아 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탄 배는 생각보다 넓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한껏 들뜬 게 눈에 훤했다. 사람들을 다 태운 지 확인한 선장이 힘찬 뱃고동 소리를 내며 배를 출항시켰다. 듣기로는 섬까지 30분 조금 넘게 걸린다고 했다.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고속정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느릿느릿하게 가야 멋진 해경을 감상할 수 있기에.
배를 타고난 이후의 모든 광경은 예술이었다. 왜 산토리니가 신혼여행 촬영지로 유명한 지 알 것 같았다. 어딜 어떻게 봐도 예술 걸작이었다. 세상의 모든 바다를 가져와 연결해서 만든 가상현실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너무 현실감 넘쳐서 현실 같지 않은 바다.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웠던 건 배에서 올려다본 피라 마을이었다. 거대하고 거무튀튀한 암석 위에 늘어서 있는 순백의 집들의 모습은 마치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법한 고대 도시처럼 보였다.
화산섬에 도착하고 나니 해는 이미 하늘 한가운데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더위를 견딜 수 없던 나는 셔츠 안에 입은 티를 벗고 셔츠만 걸쳤다. 한국이었다면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옷을 벗고 다시 입는 게 어려웠겠지만, 이곳은 개방적인 외국이었고 이미 해외 사람의 마인드에 흠뻑 취한 내 행동에는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
화산섬에 내린 후에는 자유시간이었다. 약 한 시간 정도 시간을 줄 테니 그 이후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나와 동행분들은 얼른 내려서 화산섬을 오르기 시작했다.
쉬고 있는 화산섬을 방문하는 건, 일본에서 화산을 방문한 뒤로 처음이었다. 지면의 틈 사이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증기가 군데군데 보였다. 호기심이 가까이 갔더니 엄청난 열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생각해보면 이 섬 자체가 열기 덩어리였다. 뜨거운 햇살을 가감 없이 받으며, 지하에서는 화산의 열기를 받으니 말 다 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와는 달리, 이 섬에서는 현무암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그마가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려 공기가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는 것이다(현무암에 구멍이 생기는 이유는 마그마가 식으면서 안에 있던 공기가 빠져나가서다).
열기를 꾹꾹 참으며 정상에 도착하자, 여태까지의 인내를 보상해주려는 듯 시원한 해풍이 몰아쳤다. 여담이지만 나는 바닷바람이 제일 좋다. 그 특유의 짠내와 자연 본연의 시원함이 허파를 가득 메울 때의 쾌감은 글로 풀어내기 어려울 정도다. 굳이 말하자면 몸의 불순물들이 걸러내어 지는 느낌?
사진을 찍다 보니 시간이 20분밖에 안 남았다. 나와 동행분들은 재빨리 부둣가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늦게 내려가서 전체 일정에 피해를 주는 '어글리 코리안'이 되기 싫었다.
일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을 다 태운 뒤, 우리가 향한 곳은 바로 바다 온천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생성된 자연 온천으로 그 주변의 수온은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높아 장시간 입욕이 가능하다.
눈으로는 온천이 어딘지 판별할 수 없었다. 여행사가 설치해 놓은 연안가의 작은 오두막집이 아니었다면 모를 뻔했다. 온천에 도착하자 배는 바다 한가운데서 잠시 닻을 내려 그 자리에 멈췄고, 사람들에게 30분 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온천을 즐기기 원하는 사람들은 배에서 바다로 다이빙 해 물놀이를 즐기라는 것이었다.
이미 이걸 노리고 있었는지, 몇몇 사람은 아예 옷 안에 수영복을 챙겨 왔다. 가장 처음으로 다이빙을 한 사람은 40대 중반의 백인 남성분이었다. 그분은 이번 투어가 처음인 것 같았다. 자신 있게 다이빙했으나 물에 들어가자마자 "왜 이렇게 추워!"라고 비명을 지르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 한마디는 배 위에서 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에게서 폭소를 자아냈다. 그 아저씨는 온천이라고 인근 해역이 다 따뜻할 것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그분의 의도치 않은 몸개그에, 여행객들의 분위기는 한껏 부드러워졌고 너도나도 다이빙을 하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다이빙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쇼맨십을 부리며 주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다이버들도 있었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의 용기가 다른 이들의 마음을 풀어지게 한 걸까?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은 사람들 역시 용기를 내서 속옷만 입고 다이빙을 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라는 게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은 순수한 자연이 주는 즐거움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그게 바로 지금의 분위기 아니었을까?
나 역시 이 분위기에 취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한국이었다면 절대로 못 했을 행동이다. 당연히 한국에 다시 돌아온 뒤로도 이런 행동에 가담하지는 못 했다. 웃긴 일이다. 그저 공간이 바뀌었을 뿐인데 나라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 어디에 있는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내 행동이 상이하게 바뀐다는 건 그만큼 내 안에 내 행동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뜻 아닐까. 그만큼 주변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씁쓸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여행에 대한 내 갈망은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이때의 내 모습은 여행이 나 자신도 모르는 수많은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증명했다. 오히려 삶과 여행에서의 모습이 너무 일치하면 그건 그거대로 새로움이 없을 것 같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입고 온 옷을 동행분들에게 맡긴 뒤,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졌다(동행분들은 그냥 배 위에서 머물겠다고 하셨다). 얼음장에 들어간 것처럼 몸이 아려왔으나, 온천 주변으로 가자 슬슬 따스한 물들이 몸을 데워줬다.
온천에서 나와 배를 탄 뒤, 다시 산토리니 섬으로 돌아왔다. 이 30분 동안은 몸이 완전히 녹초가 돼서 내리 잤던 것 같다.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다른 분들 역시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니 말이다.
부둣가에 내린 나와 동행분들은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이 상태에서 도저히 아까 그 계단을 다시 오를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배가 고팠던 우린 숙소 주인 할아버지가 추천해준 집에 들어갔다. 여기서 내가 앞으로 평생 사랑하게 될 음식을 만났다. 바로 '무사카'. 치즈라고 착각할 정도로 잘게 으깬 감자, 치즈, 미트볼, 그리고 그냥 감자를 섞어놓은 음식.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는 감자와 살짝 매콤한 양념이 환상적이었다(귀국 후에도 무사카를 찾아다녔으나 이때의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샤워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동행분들은 씻은 뒤 잠드셨고 나 역시 낮잠을 조금 자기로 했다. 아마 이스탄불이었다면 '낮잠'을 잔다는 걸 생각도 못 했겠지만, 이제는 여유를 가져야 그 사이로 보이지 못한 것들이 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그렇다고 줄곧 잠을 잔 건 아니다. 한 시간 정도 잔 뒤, 앞으로 뭘 할지 찬찬히 고민했다. 시간은 이미 3시경. 해가 빨리 지는 시기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비수기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내가 생각해낸 건 ATV를 대여해서 타는 것이다. 산토리니는 워낙 좁아 스쿠터나 ATV만 있어도 섬을 다 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당장 주인 할아버지를 찾아가 괜찮은 렌털 샵이 없냐고 물었고, 그분은 친절하게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샵으로 나를 안내해줬다.
한국 운전면허증밖에 없던 나는 스쿠터를 대여 못 하고 ATV만 렌트할 수 있었다. 물론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 육중하게 달리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타본 경험도 있고 하니 말이다.
물론 전역 후에 바로 온 여행이라, 주행을 안 해본 지 2년이 넘어가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운행했다. 허나 그것도 한 15분. 손에 익자 신나게 피라마을 주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산토리니의 명물인 노을을 봐야 한다는 생각마저 잊을 정도로 말이다.
피라 마을은 정시마다 언덕의 교회에서 종을 친다. 때문에 종이 울리면 지금이 대충 정각 몇 시인지 알 수 있다. 피라 마을의 종소리는 참 푸르다. 바닷바람을 머금어서 그런지 울림이 맑다. 산토리니 사람들이 부러웠다. 새벽에는 종이 울리지 않는다 쳐도 이런 깨끗한 소리를 하루에 열두 번 이상 듣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한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어느 시간대에 위치해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만 비로소 안정감이 드는 것이다. 만약 한 시간에 한 번씩 시간을 알려주는 산 토리니의 종이 있다면, 조금은 시간을 확인해야한다는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신나게 ATV를 타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숙소 옆에 ATV를 주차시키고, 방으로 들어와서 짐을 풀었다. 동행분들은 어딘가로 저녁을 드시러 간 것 같았다. 아마 내 스마트폰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어 있었다면 같이 연락해서 밥을 먹었겠지만, 혼자 다니는 것에 매료된 나는 지나친 동행은 삼가는 주의였다. 내가 저녁으로 택한 곳은 산토리니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수블라키 집이었다.
맛도 맛이었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음식점은 바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손님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 역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게 지루했기에 그분과 대화를 시도했다. 놀랍게도 서울에 와본 적이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서울이 관광지로 인지도가 있는 것 같아 놀랐다. 그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통성명까지 하자 내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수블라키는 샌드위치와 다를 바 없지만 안에 감자가 들어가 있다는 게 조금 특이하다. 때문에 살짝 퍽퍽할 수도 있으나 나는 오히려 그게 수블라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덤으로 나오는 '알파 생맥주' 역시 일품이었다.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먹어본 맥주 중, 이스탄불의 투보그와 견줄만한 유일한 맥주였다.
술이 약한 나에게 생맥주 한 잔은 적당한 취기를 느끼게 해 줬고, 몸 역시 살짝 피로했기에 아주 기분 좋게 숙소로 들어올 수 있었다. 방에서는 자매분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있었다. 왜 밖에서 먹지 않았냐는 말에 '몸이 피곤해서'라고 하셨다. 확실히 여행 스타일이 나와는 다른 것 같았다. 사람마다 제각각이니 말이다.
나 역시 지금은 많이 피로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늘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씻고 바로 침대 위에 누웠다. 산토리니에서의 진정한 첫날이었고,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던 하루였다. 이렇게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른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게 '여유롭게'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스탄불에서는 항상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목적지가 분명했던 반면에, 산토리니에서는 화산섬 투어를 제외하고는 그냥 ATV가 이끄는 대로 돌아다녔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순간이 모험 같았고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달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스탄불을 떠날 때만 해도, 이스탄불이 그리우면 어떡하나 고민했지만 그건 쓸데없는 기우였다. 벌써부터 다음날이 기대되는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