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스탄불 2014 (4)
정든 여행지를 떠난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심지어 그게 여행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스탄불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아직 30일이라는 긴 여행이 남아있었지만, 정든 이스탄불을 떠나는 것은 아쉬움을 한가득 끌어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적절한 시기에 그곳을 떠났던 것 같다. 아무리 새롭고 자극적인 것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고, 어쩌면 지루해질 수도 있다. 이스탄불에서의 일정은 정확히 그 경계선에 있었다. 아마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처럼 그곳을 그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다녀온 곳은 적어도 자녀가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로 다시 가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지만, 이스탄불만 생각하면 종종 그 신념을 깨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스탄불에서 꼭 먹어봐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다.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오렌지 주스, 차이, 그리고 고등어 케밥이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잘 듣다가 마지막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고등어 케밥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는 사람, 혹은 고등어로 만든 케밥이 뭐가 그리 맛있냐는 사람으로 나뉜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고등어 케밥에 흥미를 나타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단순히 이스탄불의 모든 것이 좋았던 터라 나만 맛있게 느낀 건 아니었다. 각종 인터넷에도 어느 지역의 누가 만든 고등어 케밥이 제일 맛있다는 글이 종종 보이기에, 단순히 홍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숙소에서 같은 여행객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이스탄불에서 꼭 고등어 케밥을 먹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은 아무 일정 없이 그저 자유롭게 하루를 보내려고 했기에, 목표가 생긴 나는 다음 행선지를 갈라타 다리로 잡았다. 간단하게 짐을 챙긴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길을 나서서 트램에 탔다. 이미 이곳 지리는 빠삭했기 때문에 어디에 가려면 어떤 교통수단을 택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물론 한 번은 들러본 지리여야 가능했지만, 그래도 이런 나 자신에 순간 조금 뿌듯해했었던 것 같다.
에미노뉴 역에 도착하고 난 뒤,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지나 다리 밑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자리를 깔고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흡사 수산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마리오 아저씨'라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고등어 케밥을 파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꼭 마리오 아저씨의 케밥을 먹으라고 다들 충고해줬기 때문이다. 그분은 생각보다 찾기 쉬웠다. 사람들이 줄을 제일 길게 서 있는 곳이기도 했고, 누가 봐도 마리오처럼 생기신 분이 고등어를 굽고 계셨기 때문이다.
빵 모양마저도 고등어 모양으로 준비해두신 마리오 아저씨의 고등어 케밥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이스탄불에 와서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케밥을 모두 먹어봤지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언정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어지간하면 세계 각국의 모든 음식을 먹어볼 수 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고등어 케밥은 달랐다. 맛있는 건 기본이었고, 미약하게 남아있는 갓 잡은 고등어의 비린내, 불맛, 그리고 케밥의 야채와 소스들이 잘 버무려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가장 맛있는 양념이었던, 바로 앞에 보이는 금각만의 경치가 이를 완성시켜줬다.
수많은 여행 중에 나를 가장 충격에 빠지게 했던 음식 상위권에는 항상 고등어 케밥이 들어간다. 이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고등어 케밥을 물고 있자니, 마치 내가 그들의 삶을 방문한 단순한 이방인이 아니라 그들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을 줬다. 그래서 더욱 감명 깊게 먹었던 게 아닐까? 내 작은 가방 안에 갑자기 낚싯대가 들어있고, 그 자리에서 자리를 깔아 금각만의 고등어들을 낚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기분이었다. 단연코 이스탄불에서 가장 완벽한 브런치였다.
고등어 케밥의 여운이 남아서 그런지, 오늘은 이스탄불 시민들의 삶을 좀 더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어 졌다. 문득 투어 때 잠시 들렀던 아시아 지구의 카디쿄이가 생각났다. 이스탄불 젊은 청년들이 자유롭게 거닐던 그 공간을 더 만끽하고 싶었다.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이 아니라 작은 거리 하나하나까지도. 첫날의 그 무서웠던 경험들은 이미 날아가고 없었다. 곧바로 페리를 타고 카디쿄이 항으로 향했다.
이미 한 번 와 본 적 있는 카디쿄이, 나는 일단 항구에 내려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번잡한 항구 일대를 벗어나니 평범한 동네의 거리가 등장했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공원, 아파트와 연립주택들 그리고 여러 생필품 마켓 등등. 역시 사람 사는 곳은 국가를 불문하고 비슷한 것 같았다. 이게 내가 알던,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가 장대하게 자리 잡은 그 이스탄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카디쿄이에서 무작적 해안 쪽으로 걷다가 만난 매력적인 요소가 하나 또 있었다. 바로 T3 라인이다(트램 T3호선이라 하면 적당하겠다). 일단 생긴 것부터가 아기자기하고 독특하다.
T3 라인은 조금 독특한 노선도를 가지고 있다.
노선도를 보면 알겠지만 2호선 내선순환처럼 종착역과 출발역이 따로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작은 트램에 타고 한 바퀴를 도는 T3라인은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을 주었다. 단 15분 만에 해당 일대를 한 바퀴 빙 돌면서 동네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즐거움에 심취되어, 나는 트램이 세 바퀴를 돌 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바깥의 풍경을 감상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시간은 벌써 3시를 향하고 있었다.
탁심 광장은 나에게 있어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 작년에 있었던 탁심 시위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밤 시간에는 소규모 시위대가 출몰할 수도 있으니 낮에 가보라는 가이드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이스티크랄 거리를 지나 도착한 탁심 광장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탁 트인 공간에 남녀노소가 모여 각자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어쩜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아 보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장난감을 파는 사람들까지 똑같았다. 팽이를 파는 분이 한국말로 "팽이~ 팽이~"라고 말하며 호객행위를 한 덕분인지 더더욱 익숙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탁심의 서늘한 공기를 즐기다 근처에 있는 제바히르란 백화점에 들르기로 했다. 제바히르는 한국에서의 보통 백화점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괜히 이스탄불, 터키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더 큰 백화점들이 생겨나서 다 지난 말이지만...) 제바히르에는 삼성 매장도 들어와 있었다. 매장 안에서 영업 중인 한국인들을 보니 새삼 삼성이 글로벌 기업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제바히르의 규모도 규모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놀이기구'였다. 지하에 대규모 놀이시설이 비치되어 있던 것이다. 오락실들을 비롯해 롤러코스터, 범퍼카, 등등,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서나 볼 법한 놀이기구들이 백화점 지하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경이로웠던 것은 역시 롤러코스터였다. 백화점의 각 층들을 넘나들며 길게 늘어져있는 롤러코스터는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와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카페에서 잠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졌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터키는 에스프레소의 시초가 된 지역이다. 스타벅스처럼 저명한 카페가 아닌 이상, 웬만한 커피집에서 파는 터키식 커피는 에스프레소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에스프레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카페에서 먹는 에스프레소를 한 층 더 농축시킨(사실 터키식 커피를 더 묽게 만든 것이 우리가 아는 에스프레소) 커피다.
이런 말이 있다. 터키에서 커피를 시키면, 5분 정도 기다렸다 마시라고. 그 이유는 에스프레소의 농축된 알갱이가 커피잔 위에 떠다니기 때문이다. 5분 정도 지나면 모든 알갱이가 바닥에 가라앉아, 마실 때 꺼끌꺼끌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 나는 커피를 잘 마시는 편이 아니지만, 분위기에 취해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생각보다 쓰기만 한 맛은 아님에 놀랐다. 역시나 본가는 다른가 보다.
그렇게 백화점에서의 쇼핑과 놀이기구를 즐기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다 되었다. 다시 이스티크랄 거리로 돌아온 나는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길거리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에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저 밤공기를 맡으며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순간이었다. 그러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바로 물담배 카페였다.
물담배가 어떤 맛인지 한 번쯤은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물담배라고 하니 뭔가 마약 같은 느낌도 들어서 괜스레 근처 사람들의 눈치를 봤지만, 이미 충분히 용감해져 있었기에 카운터에 가서 당당하게 애플 민트 맛을 주문했다.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오픈된 공간에 자유롭게 앉아서 물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이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줬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술탄아흐멧 광장 옆에서 물담배를 파는 카페들이 즐비했던 걸 생각하면, 이건 이스탄불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하나의 기호식품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맛보는 물담배를 피다 보니 은근히 현기증이 밀려왔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기 전에 얼른 자리를 빠져나왔다. 원래는 숙소까지 걸어오려고 했지만 현기증 때문에 트램을 타기로 했다. 어지러운 머리를 잠시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갈라타 다리에서 트램을 타고 멍하니 지나가는 사이, 원래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버렸다. 다시 내려서 반대로 가는 트램을 타야 한다는 귀찮음 때문에 잠시 짜증이 밀려왔지만, 저 멀리 보이는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본 순간 짜증은 환희로 바뀌었다. 성벽은 오전에 봤던 모습과는 달리 밤하늘 아래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던 것이다.
시에서 배치한 은근한 조명이 성벽 주위를 밝혔고, 덕분에 상당히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빛을 받으니 오히려 더욱 옛날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아 보는 눈이 즐거웠다. 공원에 가만히 앉아서 성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야 내 이스탄불 여행이 끝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전에 느낀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볼 걸 다 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까? 낮에 봤던 성벽이 단순히 밤에 보는 성벽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그 시간 동안 내 내면에는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신비로움 때문에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자아내는 신비한 빛이 더욱 영롱하게 보였던 것 같다.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매우 적당한 상태였다. 그대로 다시 숙소가 있는 술탄아흐멧 광장역까지 향했다. 현기증은 이미 없어졌다. 술탄아흐멧 역에서 내렸을 때, 나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아름답고, 여전히 내 뇌리에 깊게 박혀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밤 10시부터 술탄아흐멧 광장의 분수대는 형 형색 빛을 내며 주변을 밝힌다. 여러 색이 있지만 그중에 이 공간에 가장 잘 어울렸던 색은 보라색이었던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고혹적이면서도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색은 이스탄불과 딱 맞아떨어졌다. 정확히는 이스탄불에서 느끼는 내 감정선과 가장 잘 어울렸던 색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순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싶은 마음에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다시 돌아왔다. 여행을 온 것이기에 새로운 맛을 느끼고자, 처음 보는 '투보그'라는 맥주를 선택했다. 단연코 이때 마신 그 맥주가 태어나서 마신 맥주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다른 곳에서 마신 투보그는 이때만큼의 맛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술탄아흐멧 광장에서 투보그를 홀짝이고 있을 때, 한 현지 노인분이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서는 내 맥주를 가리키시더니, 손을 완강하게 가로저으셨다. 맥주를 마시지 말라는 듯한 손짓이셨다. 여기서 마시면 안 되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그분은 그 완강하던 손으로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를 가리키셨다. 나는 종교도 없고, 신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큰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했는지 완벽하게 알아챘다.
'신성함이 머무는 장소 앞이다. 경건함을 유지해달라.'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몽롱해진 눈을 들어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두 신전을 번갈아 바라봤다. 갑자기 손에 든 맥주캔이 매우 하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홀린 사람처럼 맥주캔을 쓰레기통으로 버리고서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다시 한번 두 신전을 번갈아 바라봤다. 으레 하던 걸 누군가에 의해 멈추게 되면 기분이 나쁘기 마련이지만, 이 순간은 오히려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요단 법석을 떨며 지나는 술탄아흐멧 광장. 하지만 두 신전이 세워질 당시 이곳은 어땠을까. 그 누구도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이 앞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이 앞을 지나고 있지 않았을까. 그게 이 공간이 갖는 정체성이었을 것이다. 그제야 난 이게 내가 원하는 여행의 감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상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이곳에서 어떤 감정에 젖어들었을지를 상상해보는 것.
이름 모를 할아버지의 한 몸짓으로 인해 이 여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이 도시에 돌아오겠노라고. 그때는 내 머릿속에 완벽하게 각인되어있는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활보하겠다고.
이스탄불 마지막 밤을 장식하기에 완벽한 순간이었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음 행선지였던 산 토리니 섬에 대한 기대감이 극에 달했다. 그렇게 술탄아흐멧 광장의 밤중에, 한 여행이 끝이 나고 한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