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에서 게임 기획자까지(1)

꿈을 이룬 몽상가 #Level 13

by 스토리텔러

퇴사자, 계획이 틀어지다


퇴사하고 난 뒤의 삶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웠다. 일단 22일에 퇴사한 나는 24일부터 열흘 간 호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바쁜 일정 때문에 해외여행을 길게 다녀오기 힘든 나날을 보냈던 터라, 오래간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은 설렘과 즐거움 그 자체였다. 하고 싶었던 것들도 마음껏 했고, 사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 역시 거침없이 구매했다. 2년 치 퇴직금을 열흘 동안 다 탕진할 만큼 즐거움만이 가득했던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또 다른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던 내 대학 생활 마지막 한 학기. 나이 서른에 4학년 2학기를, 12학번인 내가 20학번과 학교를 같이 다니는 건 상상만 해도 웃긴 일이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웬 아저씨가 같이 수업을 듣냐면서 불쾌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젊은 피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토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그토록 싫어하고 짜증 났던 계절 학기를 내가 먼저 신나서 신청했다. 막상 할 때는 하기 싫었던 대학 수업이 이제 와서 왜 이렇게 듣고 싶었는지 나도 모른다.


3주간 들었던 계절학기는 매우 재밌었다. 예전에는 단순히 탁상공론으로 느껴졌던 수업들이, 실제로 일을 한 뒤에 배우니까 색다르게 다가왔다.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겪은 일들에 여러 이론들을 대입해서 들으니 이렇게 재밌고 흥미진진할 수가 없었다. 어린 친구들과의 조별 활동도 재밌었다.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고, 아직 젊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큰 안도감을 줬다. (물론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토록 즐겁게 수업을 들어서일까? 아주 쉽게 A+라는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역시 즐기는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다. 조금 아쉬운 건, 왜 그때는 이렇게 재밌게 수업을 듣지 못했을까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그 당시에는 재미없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게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퇴사자의 삶이 즐거운 건 딱 여기까지였다. 코로나가 갑자기 극심해지기 시작했고, 삶의 많은 영역들이 제한되기에 이르렀다. 벚꽃 핀 대학가를 걸으며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려던 계획도 무로 돌아갔고, '어차피 경력 자니까 취업에 구애받지 않는다'라는 마인드로 몇 번은 결석하고 해외여행을 다니려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이건 내가 원한 퇴사 후 삶이 아니었다. 여러 방면으로 우울 해져서였을까, 모든 것을 화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은 조금도 내 흥미를 이끌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한 학기를 보낸 것 같다. 화상이라 출석과 과제는 쉬워서 학점은 나름 준수하게 받았지만, 학사 경고를 받았던 4-1학기만큼이나 재미없는 한 학기였다.


나 스스로 재미를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브런치 작가를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여태까지 다녀왔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하지 못했던 나만의 세계관 구축에도 힘썼다. 다행히 이런 다양한 시도들 덕분에 지루해질 뻔했던 삶이 조금은 다채로워졌다. 아무 걱정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열중할 수 있는 시기였다.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밖으로 많이 못 돌아다녀서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걱정 없이 이런 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당연히 쉽게 취업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내 인생 가장 힘든 6개월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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