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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 하이가 필요한 때

엔도르핀,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by 돌장미

인생 모든 순간 항상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일련의 경험들을 거치며 나는 매우 정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극내향인인데 취미와 취향 또한 성격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편이다. 너무 평범하기 그지없는 바람에 취미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 가끔 부끄러운 때가 있지만 나의 취미는 음악 감상, 독서, 식물 기르기다. 육아 휴직 중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글 쓰기와 수채화 그리기도 간간히 하게 되었다. 위 활동들은 모두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모두 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지독한 집순이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내가 즐겨하는 행위들의 편협한 활동범위로 인해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도 많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고, 잘 돌아다니질 않으니 남들이 아름다운 자연 구경하러 다니는 것도 가끔씩 무력하게 부러워만 할 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평화로운 일상이 가끔 단조로운 때가 있다.


우울증의 완치와 재발을 반복해서 겪으며 즐거운 기분, 행복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다. 좋은 기분과 관련된 여러 호르몬이 있는데 각 호르몬들의 간략한 특징과 분비되는 상황을 적어보았다. 물론 우리 몸에서는 특정 순간에 한 호르몬만 분비되지는 않지만 대표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예를 골랐다.

- 엔도르핀: 천연 진통제, 웃음 호르몬이라고도 불림. 예) 운동, 웃음, 마사지 등

- 도파민: 성취의 기쁨, 중독성과 관련 있음. 예) 목표를 달성했을 때, 칭찬받았을 때, 쇼핑 등

- 세로토닌: 마음의 안정, 우울증과 관련 많음. 예) 햇볕 쬐기, 명상, 감사하기, 사회적 인정

- 옥시토신: 사랑 호르몬, 인간관계 형성에 중요. 예) 포옹, 반려동물과의 교감 등


나의 경우 행복을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위주로 편식하여 창출하는 편이 있기 때문에 삶의 행복 균형에 있어 엔도르핀과 도파민 행복감이 약간 부족하다. 물론 칭찬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임신, 출산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일 중독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일로서 얻는 도파민적 쾌감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번아웃으로 이어졌음으로 향후 일을 통해 얻는 도파민 행복은 조절하고자 한다. 운동, 쇼핑, 게임, 유튜브 시청 등의 활동은 필요에 의해하는 것들이고 아무래도 나는 잘 즐기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나는 땀이 나고 숨이 찬 운동이 매우 싫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성찰을 통해 조금 더 현명한 삶을 살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건강한 행복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운동을 하는 것이다. 요즘 임신, 출산 후 증가한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운동인 스텝퍼 운동을 하고 있다. 마지못해 선택한 운동마저 정적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제자리에서 스텝퍼를 밟다 보면 숨도 차고 땀도 많이 난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긴 하지만 달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러너스 하이'를 체험판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란 격렬한 유산소 운동 중 또는 운동 직후에 나타나는 도취감, 스트레스 해소, 통증 완화, 기분 상승 상태이다. 마치 약간 취한 듯한 행복감이나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평온함이 느껴지는 상태와 비슷하다.


스텝퍼 유산소 운동은 시작 후 첫 5분을 잘 견디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스텝퍼에 올라타는 게 가장 중요하긴 하다.) 처음 스텝을 밟으면 양다리가 무겁고 몸 전체가 무거워 반복해서 움직이는 동작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리고 시간은 상대적이므로 처음 5분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진다. 힘든 첫 5분을 극복하는 나의 방법은 우선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액션 영화를 감상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5분을 극복한 후에는 비교적 다리에 통증을 덜 느끼고 숨이 찬 상태를 훨씬 더 잘 무시하며 운동을 진행할 수 있다. 마침 눈앞에서 액션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진행되고 있다면 속도를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마치 달리는 것처럼 다리와 팔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몸에서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마 이 부분에서 내가 느끼는 것이 유사 러너스 하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사' 러너스 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첫째, 내가 하는 운동의 강도가 실제로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과 둘째, 도취상태라고 말할 만큼의 행복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점 그리고 셋째, 이 상황을 지속하고 싶다는 충동까지는 들지 않는 점 등이 있다. 그래도 운동을 하는 도중 무기력감이 사라지고 30분간의 운동을 완료한 후 약간의 성취감이 느껴지는 점을 보아 역시 운동은 몸과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임신 전에는 필라테스 수업을 일주일에 두 번 들으면서 최소한의 운동량을 채우곤 했다. 필라테스는 그나마 선호하는 운동인데 매 수업마다 내용이 달라져서 지겹지 않고 스트레칭 동작이 포함되기 때문에 일상에서 쉽게 틀어지는 자세를 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운동을 외주화 하는 것에 대한 자책감과 앞으로 복직을 하면 당분간은 아이를 돌보느라 수업을 듣기 어려운 점이 나로 하여금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게 만들었다. 물론 스텝퍼도 처음엔 남편 등쌀에 못 이겨 시작한 운동이긴 하지만 하다 보니 다이어트에도 도움 되고 체력도 조금 좋아졌다.


사실 달리기 운동은 아마 요즘 가장 유행하는 운동 중 하나일 것이다. 주변에 km에 관계없이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도 여럿 있고 공원에 가면 단체로 또 개인으로 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 많은 이들이 러너스 하이를 즐기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이제는 나도 원한다, 러너스 하이를. 아주 잠깐만이라도 현실 세상을 잊을 수 있고 매우 고양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왕성한 엔도르핀 분비의 상태에 도달해보고 싶다. 땡볕에 더위로 고생하지 않으려면 아기를 재운 저녁 8시 이후에나 나가서 뛰어야 하는데 평온한 쾌적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나 같은 사람이 과연 할 수 있을까? 아직은 문 밖을 나가는 일의 역치가 너무 크다. 그 일의 활성화 에너지에 도달하기엔 나는 너무 고요한 인간이다. 그래도 복직 전, 한 번은 밖으로 나가 느끼고 싶다, 러너스 하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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