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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Jul 25. 2016

섬 - 잊기 싫은 그곳의 삶의 속도

섬, 그리고 미래로의 여행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날 많이도 바꿔놨다. 지인이 그랬다. 딱 제주도에 어울리는 애가 내려가서는 할 수 있는 거 다 하고 참 많이 부럽더라고. 음.. 그랬지. 거기서 난 다른 삶의 리듬을 찾았지. 나는 이제 육지에 돌아왔고, 나름의 리듬을 구축해가며 재미를 찾고 있다. 그런데도 제주, 혹은 제주의 리듬을 닮은 곳을 여행할 때마다 기분이 널을 뛴다. 지난번 제주 여행은 내 미련을 떨치는 시간인 줄만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상반기엔 유난히 제주에 많이 들렀다. 더 이상 도민이 아니니 미련을 떨쳐야 하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잃어버리기 싫은 그때의 삶의 리듬이 생각나 서글프기도 하고 혼란스러웠다.

첫 번째 방문. 섬을 그리워한 나머지 육지의 삶을 부정하고, 섬에서 좋았던 점만 곱씹었다. 어쩐지 눈치 보이고 갑갑하고, 진짜를 볼 수 없어 테마파크처럼 그럴듯한 모형을 만들어 넣고 즐기는 육지. 내 리듬대로 내가 설정한 방향으로 내키면 열심히 뛰고 아니면 숨을 고르고 적당히 누리고 살던 섬에서의 삶. 어디라도 가 있겠지 하는 막연하고 흐릿한 삶. 내가 나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들. 게으른 사람과 동물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시 가서 살고 싶었다.

두 번째 방문. 섬이라고 뭐 별게 있나 체념해버렸다. 섬은 섬대로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나 혼자 그때의 섬을 추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세 번째 방문(지금!). 그래, 이미 체념도 했고, 육지에서 잘 살기로 맘먹었고, 그냥 바람이나 쐴 겸 들렀는데. 어라? 세상에.... 새벽 서핑이며 산책이며 여전히 좋더라... 육지에서 아등바등 살기로 한 거 잘한 걸까 싶고, 역시 언젠간 다시 돌아와야 할 고향인가 싶었다.


그런가 하면 제주를 꼭 닮은 섬에만 가도 찡해지곤 했다. 필리핀에 다이빙 투어를 갔을 때다. 새벽에 비행기에서 내려 다시 봉고와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잠들지 않는 섬이냐 닭이 울고 마을 사람들은 두런두런 모여있으며 굳 모우닝-이라고 인사한다. 한국의 휴일 대목이라고 다섯 척 이상이 함께 움직였다. 원랜 한두 척씩 움직인다고 했다. 역시 치열하다 한국인들.  짐을 어질러두고 쪽잠을 자고 아침이 밝았다. 귀요미 퍼그가 퍼질러져 있는 숙소다. 지금부터는 하루에 3 깡씩 다이빙. 그러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뽀글뽀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바다 속

다이빙이 모두 끝난 시간 오후 3시. 마사지받고 누워있고 멍 때리고 과자 사 먹고. 맥주도 엄청 마시고 시내에서 족발 튀김도 먹었다. 그래, 내가 육지에서 잃어버렸던 건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지.

멍때리기 좋은 쨍하지 않은 풍경

도시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 멍하고 햇살이 눈부시고 부유하는 기분이 들고 숨도 천천히 쉬는 것 같고 어깨에 힘이 빠지고 꿈꾸는 상태인 듯했다. 이젠 섬에 살기 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의 나는 동남아는 늘그막에 휴양으로나 떠나는 줄로만 알았다. 이젠 기회가 닿으면 필리핀으로 다이빙 투어를 떠난다. 조급해하지 않고 모험을 즐긴다.

동료가 물어봤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뭐냐고. 호기심? 합리성? 좋은 또래집단? 비슷한 생활양식?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 하나로 정의할 수 없어 아무 말이나 하고 말았다. 육지에서는 의식하지 않으면 너무나 빠르게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꽉 막힌 네모의 공간에서는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다. 숲길, 오름을 걸을 일이 없어 빛 받는 바다 사진, 나뭇잎 사이로 살랑이는 바람이 느껴지는 사진만 봐도 울컥한다. 숨 쉬듯이 자연스러워 딱히 고민하지 않았던 것을 시간을 내서 고민해보아야 한다. 음.. 그러니까 인생에서 중요한 거요? 느리지만 꽉 찬 일상입니다. 남국의 여유로움을 영원히 잊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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