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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Jan 01. 2021

소외되어도 곧 특별해져

금방 맛있는 떡볶이가 될 거니까




  1월 1일. 아침과 점심 중간 즈음, 느지막이 기상을 한 나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새해 첫날인데 떡국 한 그릇은 해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전날 밤 호기롭게 제안한 까닭에 올해 떡국 당번은 나였다. 어젯밤 냉동고 구석에서 발견한 떡국 떡이 조리대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물 안에 푹 담가진 채로 말이다.  


  "그거 떡 다 넣지 마! 너무 많아."


  떡을 헹굴 요량으로 볼을 들자 옆에서 물을 떠마시던 오빠가 한 마디 얹었다. 엉. 성의 없는 대답이 개수대 물소리와 함께 쪼르륵 흘러내려갔다. 떡을 헹구고 나서는 냄비에 사골국물을 부었다. 국물이 끓어오르는 동안 파를 송송 썰고 작은 그릇에 계란을 풀어두었다. 마침내 끓어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만두를 네 주먹 정도 넣었다. 이제는 떡을 넣을 차례였다.


    얼마나 넣어야 하지, 다 넣지 마랬는데. 잠이 덜 깬 머리는 회전이 빠릿빠릿하지 않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와 떡이 담긴 그릇을 몇 번 번갈아보다가 대충 눈대중에 맞춰 쏟아버렸다. 넣고 보니 두 주먹 정도가 남았다. 너넨 선택받지 못한 떡들이구나. 남은 떡에 새 물을 받아주며 조리대 한 켠으로 대충 밀어 넣었다. 간은 뭘로 해야지? 난생처음 끓여보는 떡국이 더 중요한 순간이었다.


* * *


  늦은 아점으로 떡국을 포식한 탓에 저녁 시간은 자연스럽게 생략되었다. 밤 중에 귤이나 까먹을까, 하면서 부엌에 들어선 내 눈에 남은 떡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좀 출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해 먹을까, 고민하고 있자니 떡볶이 생각이 문득 났다.


  "언니, 떡볶이 먹을 거야?"


  떡국이 소화가 안 되었다며 저녁 생각이 없다던 언니도, 떡볶이 먹을 거냔 물음에는 씩 웃으며 손가락을 말았다. 오케이라는 표시였다. 부엌으로 다시 향해 떡볶이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어묵도 없고, 파도 점심때 다 썼고, 양파도 없고. 집에 있는 재료는 라면사리랑 떡이 다였다. 그래도 충분했다. 주인공은 있으니까.


  끓는 물에 양념을 풀고, 면사리를 넣었다. 면이 조금 익을 때 즈음 남겨둔 떡 두 주먹을 와르르 쏟아부었다. 먹음직스러운 색깔이 그 위에 입혀지고 있었다. 떡볶이 먹어! 내 목소리에 각자 방에 있던 가족들이 하나 둘 거실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거실에 상 하나를 펼쳐두고 떡볶이를 나눠먹었다. 으, 매워. 평소보다 맵게 된 떡볶이에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나는 열심히 떡을 공략했다.


  점심에 먹은 떡국은 좀 남았었는데 떡볶이는 어느 순간 싹싹 비워져 있었다. 빈 그릇을 개수대에 넣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낮에 먹은 떡국보다 떡볶이가 더 맛있었던 것 같아. 더 인기도 좋고.


   후발대 떡들의 성공적인 삶이네. 그런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살다 보면 오늘 낮의 떡국 떡 같은 상황을 겪곤 한다. 내일 아침이면 맛있는 재료로 소임을 다 할 거라는 생각에 밤새 '기대'라는 물에 담가져 있지만, 결국은 '이미 자리가 찾으니 다음에'라는 말로 구석에 치워져 버리는 때. 나도 똑같이 음식의 맛을 낼 수 있는 사람인데 남에게 밀려 그 음식에 투입되지 못하는 때가. 나는 종종 운 좋게 손에 들린 선발대일 때도 있었지만, 또 자주 선택받지 못한 후발대였다.


  언제 어떤 쓰임으로 제 역할을 다할지 모르고 멀뚱히 기다려야만 하는 후발대의 삶이 외롭다 생각했다. 선택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의 부족함을 파고들며 사는 것은 불운하다 생각했다. 사실은 특별한 이유로 후발대가 된 것이 아님에도. 아주 잠시, 내 상황이 미뤄졌다고 덤덤히 생각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나 때로는 후발대의 삶이 조금 더 맛있을 때가 있다. 떡국보다 더 맛있었던, 그래서 배가 부른 와중에도 계속 손이 갔던 떡볶이처럼 아주 잠시 미뤄진 시간을 견디면 더 빛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몇 번이고 취업의 문턱에서 발이 걸리는 내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라고, 새해 첫날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외되어도, 곧 특별해진다. 조금 늦어도, 반짝일 수 있다. 그러니 물에 담가져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만의 맛을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여전히 새하얗게 빛나고, 여전히 말랑말랑 부드럽고, 여전히 쫄깃하니 재미있는, 내 인생의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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