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어미에 담긴 사랑스러운 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서울 아닌 곳에서 펑펑 내리는 눈, 내내 집콕 중이다가 눈 온단 소식에 달려나간 내 친구, 그 다급함에 절로 끌려나간 슬리퍼 한 켤레, 그 위로 쏟아지던 선물이 바로 내게 도착했다. 내내 방에 박혀있느라 눈 오는지 볼 새도 없던 나는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 우와 진짜선물같아 ] PM 6:58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가 답한다.
[ 눈이 아니라 별이 쏟아지는 느낌쓰 ] PM 6:58
라고.
눈이 아니라 별이 쏟아진다니, 무슨 문학소녀 같다며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친구는 하루 종일 재미없게 보내다가 눈 오는 걸 보니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면서, 너도 좋아지라고 보내는 거라 말했다. 선물에 얹어진 또 다른 선물 같은 말이었다. 침대에 누워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아직 눈 오는 게 좋은 나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냐고 말하자, 친구가 덧붙이길 자기도 감동했단다. 아직 눈 보고 좋아하는 스스로가 순수하게 느껴져서. 우리는 또 한참 웃었고, 나는 생각했다. 아, 우리 아직 어리구나. 다행스럽게도.
엊그제 우리는 차갑게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 대해, 불운한 우리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 속상함을 만나서 털어놓지도 못하게 된 요즘의 시국을 미워하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 서로가 너무 침울해졌다 싶으면 너나할 것 없이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동네의 작은 분식집에 대한 이야기나, 집콕 생활 중의 무료함에 대한 이야기나, 서로의 일상 중에 있었던 황당한 순간들에 대해 토로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이 'ㅋㅋㅋㅋㅋ'을 남발하고는 했다. 각자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지만, 또 가끔은 알아주는 서로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대 중반의 이야기는 대개 보통 그런 공감대 속에서 흘러가곤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해맑음이 아직 있다. 떨어지는 눈을 보면서 이건 눈이 아니라 별 같다고 말하는 때 묻지 않은 감성이 있고, 눈 오는 장면을 선물이라고 보내주는 상냥함이 있으며, 그 선물에 감동하고 마는 여린 마음이 있다. 우리에게는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보고서도 별을 떠올릴 줄 아는, 그런 낭만이 있다. 그런 서로가 있어 고맙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의 영원한 낭만이 된다는 사실이, 이토록 낭만적일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