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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소중한 사람

'그냥'의 진짜 의미

by 김해뜻




- OO아, 바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음, 아니? 이제 집 가려고. 왜?"

- 어, 그럼 잠깐 동네에서 나 좀 볼래? 줄 거 있어서.

"줄 거 있다고? 어떤 거?"


만나면 얘기해줄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말에 '알겠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럼 □□역 롯데리아 앞에서 만나자. 각자 집의 중간, 항상 만나는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줄 게 뭐가 있지? 생일도 아직 한참 남았는데. 내가 뭘 부탁했었나?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정답을 고민하는 사이, 145번 버스는 도착지에 다다라 있었다.


"OO아!"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반갑게 인사했다. 밥 먹었어? 아니이. 나 오늘 하루 종일 굶었어. 그럼 햄버거 먹을까? 대화를 나누며 롯데리아 안으로 들어섰다. 친구와 나는 각자 햄버거를 주문하고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성격이 느긋하지 못한 나는 왜 불렀냐고 물었고, 친구는 웃으면서 다 먹고 얘기하자고 말을 돌렸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우리는 그간 쌓인 이야기를 했다. 막 자신의 새로운 적성을 찾아나가기 시작한 친구는 그 일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나는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완전 너랑 잘 어울리는데? 한 번 도전해봐. 친구는 특유의 꺄르륵, 하는 웃음을 지으며 내 팔뚝을 툭툭 쳤다. 역시 OO이는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너랑 잘 어울려서 하는 말이라고, 나는 굳이 덧붙이진 않았다. 내 말이 진심인지 빈말인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짧지는 않으니까.


주문한 음식을 다 먹은 후에도 한참을 앉아 얘기를 하던 중, 친구가 '아, 맞다!' 하며 작은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이거 뭐야?"

"풀어봐 봐!"


포장을 풀어보니 로즈골드빛 장식이 달린 목걸이였다. 갑자기 웬 목걸이냐 물으니, 친구는 단출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냥 너 생각나서 샀어."


그냥? 그냥 목걸이를 사 왔다고? 나는 당황한 눈으로 친구를 쳐다봤다. 친구는 덧붙였다.


"아니, 사실은 내 목걸이 사려고 매장 구경을 갔거든. 근데 그 목걸이 딱 보자마자 너랑 너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내 거 안 사고 너 것만 사 왔지. 덤덤한 친구의 말투에 할 말이 없어진 건 나였다. 선물에 대한 반응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특별히 고민하고 고민해서 사온 게 아니라, '그냥' 생각나서 사 온 선물이니까. 말없이 목걸이를 바라보는 데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몰려들었다. 이런 선물은 왠지 생일 같은 날에만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모두가 축하를 해주고, 나 또한 특별하다 느껴지는 날에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은 생각보다 다채로웠다. 얼떨떨하고, 당황스럽고, 그러나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잘 어울리는지 한 번 껴봐!"


해맑은 친구의 말에 나는 넘치게 감동한 마음을 누르고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꺼냈다. 작고 과하지 않은 장식이 반짝거리면서 빛나고 있었다. 목에 걸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친구의 말처럼 잘 어울렸다. 친구는 역시 내 눈썰미는 틀리지 않았다며 웃었다. 나는 여전히 친구의 마음에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가 했던 말이 한참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냥 너 생각나서 샀다'던.


나는 지금껏 '그냥'이라는 부사가 싫었다. 대답의 성의 없음을 가중시키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음식이 맛있냐는 물음에 '그냥 괜찮네'라고 답하거나, 잘못된 일의 설명을 요구할 때 '그냥 했어'라고 답하거나 하는 일들이 듣는 이를 좀 허무하게 만든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은, 내 안에 '그냥'의 정의를 조금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이라는 단어에는 큰 힘이 있다. 더 특별하고 더 구체적인 이유 없이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어떠한 설명 없이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를 전달할 수 있는 그 마법 같은 힘이. 내가 친구에게 '그냥' 떠오르는 사람이 되기까지, 또 '그냥' 무언가를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이 되기까지 숱한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친구가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 '그냥' 잘 어울릴 것 같으니 해보라는 말을 한다. 친구가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무언의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덧붙일 말이 필요가 없는, 저절로 서로를 알아차리는 '그냥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게 이다지도 기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냥'의 힘을 이어가기 위해서, 나는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 감사히, 더 소중히 여겨져야 할 것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기꺼이 곁에 있어주는 마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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