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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어치 감자

그가 마음을 지불하는 방법

by 김해뜻




초등학교 시절, 우리 남매는 매일 아침마다 각자 천 원씩 용돈을 받았다. 300원은 집에 돌아올 때 버스비였고, 나머지 700원은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간식을 사 먹을 비용이었다. 오빠는 간식비를 아끼는 편이었고, 동생은 친구들과 걸어 하교하며 버스비를 아끼곤 했다. 나는 둘 다 아니었다. 버스비는 버스비대로, 간식비는 간식비대로 쓰기 바빴다. 500원짜리 과자 하나를 사면 남은 200원으로 불량식품까지 하나씩 주워 담는 게 바로 나였다.


이처럼 군것질을 유독 즐겼던 나는 아빠에게 특히나 자주 혼이 나는 편이었다. 근검절약 정신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한소리씩 주워듣곤 했던 것이다. 집에 먹을 게 많은데 왜 몸에 안 좋은 걸 자꾸 돈 주고 사다 먹냐는 말이 주된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어차피 용돈은 엄마의 소관이고, 아빠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터치를 하지 않았다. 잔소리를 들을 때면 이해한 척했지만, 결국은 아빠 몰래 과자를 사들고 오는 요령만 늘었다.


하루는 아빠와 함께 제주 본도에 나간 적이 있다(어린 시절 나는 제주 부속섬에서 살았다). 나온 김에 리 섬에는 없는 것들을 사러 대형마트에 들렀다. 대충 필요한 것들을 사고 나오는 길에, 아빠는 갑자기 가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따라나섰다. 아빠가 향한 곳은 대형마트 주차장 한편에 쭈그려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 앞이었다. 등에 아이를 업은. 그 앞에는 감자 대여섯 소쿠리와, '한 바구니 500원'이라고 삐뚤빼뚤 글씨가 적힌 판자가 놓여있었다. 아빠는 아주머니께 말을 건넸다.


"여기 있는 거, 다 파시는 거죠?"

"어휴. 네네."


아빠는 '여기 있어'라고 한마디 하고는 갑작스레 사라졌다. 낯가림이 심하던 나는 아주머니께 무어라 말도 건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멀뚱히 서있기만 했다. 감자를 사려는 건가? 감자는 우리 섬에서도 팔 텐데. 그 정도의 생각만 한 채.


돌아온 아빠의 손에는 빈 과일상자가 들려있었다. 그는 상자를 내려놓고는 아주머니께 이거 다 살 테니까 여기 담아가겠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니냐며 손을 저었지만, 아빠는 우리 집이 감자를 많이 쓰는 집이라며 아랑곳 않고 소쿠리 속 감자를 상자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곁에 멀뚱히 서있었다.


대여섯 개 소쿠리를 몽땅 쏟아붓고 나니 과일상자 한 박스가 가득 찼다. 아빠는 아주머니께 돈을 드린 후, 이제 가자며 나를 불렀다. 순식간에 감자를 다 팔아버린 아주머니는 기분이 좋으신 듯 잘 가시라며 인사를 건넸다. 아빠는 예에, 하면서 머쓱하니 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는 품에 안은 과일상자를 한번 들어 보이며 내게 말했다. 딸랑구, 봤지. 500원이 이만큼 큰돈이야. 하고.


부엌에 있는 감자 더미를 본 엄마는 이걸 이렇게 많이 사 오면 어쩌냐고 아빠를 타박했지만, 아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게 말할 뿐이었다.


"딸, 기억해야 해. 500원의 가치가 뭔지."


어린 시절 아빠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때 감자를 사던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500원이 어쩌고, 하면서 뿌듯하게 웃던 얼굴도 함께.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과자를 사 먹은 것을 들킬 때마다 '잊지 마, 500원~' 하던 게 얄미웠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된 지금은 그 '500원'이 좀 다르게 느껴진다.


아빠는 아마, 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그 모든 감자를 사지 않았을 것이다. 감자 한 상자는 다시 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어찌 보면 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그 많은 감자를 샀던 이유는 아마도, 더위 속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와 등에 업힌 아이를 미처 외면하지 못했던, 아빠의 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500원의 가치는 그래서 단순히 감자 한 소쿠리의 가치가 아니다. 아빠의 500원은, 누군가에게는 더 빨리 집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준 버스비였을 테고, 따뜻한 마음을 머쓱하니 감추는 포장 비용이었을 테고, 커가는 자식에게 '진정한 쓰임'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교육 비용이었을 테다. 나는 어릴 적 아빠의 그 마음을 아주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에, 그걸 한참 큰 지금에서도 기억하고 또 되새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갑 속에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 카드로 다 되는 세상에 특별히 쓸 일이 없을뿐더러, 보관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갑에 500원 동전 한 두 개 정도와 천 원짜리 몇 장은 들고 다닌다. 그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지불해야 하는 순간이 올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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