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오니 반가운 알림이 반짝이고 있었다. 와, 100명이라니. 누가 보면 터무니없이 작은 숫자라 할지 모르지만, 100명의 사람들이 내 글을 본다는 사실이 신기하기 그지없던 나는 휴대폰 화면을 캡처한 후, 다급히 카톡창을 켰다.
[사진]
[엄망 나 구독자 100명 돌파했엉~] PM 1:18
노란색 1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신에 전화가 걸려왔다.
[어마마마♡]
"어, 왜?"
- 갑자기 무슨 구독자? 너 유튜브 해?
"아니이~ 유튜브 말고 브런치라고, 글 쓰는 사이트 있어. 거기서 요즘 글 써!"
- 그런 것도 있어? 근데 왜 엄마는 여태 몰랐을까~ 왜 말 안 했어!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말 안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적은 글이 당신과 관련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스타에 올렸는데 엄마가 못 봤나 보지, 대충 둘러대니 엄마가 '엄만 잘 모르잖아, 그런 거'하고 대꾸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엄마 아빠한테도 이 계정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들어 SNS에는 근황을 올리지 않으니 서울에 사는 딸이 대체 뭐하고 사나 매일같이 궁금했을 터였다. 전화를 끊은 후 카톡으로 작가 프로필을 공유해주었다. 얼마 안 가 진동이 부르르 울렸다.
이수진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김찬중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엄마와 아빠였다. 아빠는 이런 거 구독할 줄도 모르는데, 엄마한테 물어봤나 보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로부터 카톡도 하나 도착해있었다.
[울 딸 열심히 햐 무엇을 하든 열심히,] PM 1:43
요 근래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심심하다며 우는 소리를 하던 딸에게 소일거리가 생긴 게 기쁜 모양이었다. 이번 달은 매일매일 글을 쓰는 게 목표라고, 지켜봐 달라고 하니 기대하겠다는 답장이 다시 되돌아왔다.
이미 게시된 글에 하나씩 엄마의 라이킷이 눌린다. 열심히 읽고 난 후 누르는지 텀이 조금 길게.
* * *
OO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ㅁㅁㅁ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또 다른 알림이 도착했다. 프로필을 보니 갓 만든 계정인 듯하다. 느낌이 이상하다. 왠지 익숙한 이름들을 보고, 엄마에게 다시 카톡을 보냈다.
[혹시 나 글 쓰는 거 누구한테 알려줬어?!] PM 3:45
[왜] PM 3:45
말했구먼. 왜냐고 물어보는 거 보니까. 아니, 누가 나 구독해서~ 하고 침착하게 대답하니 잠시 후 답장이 도착한다.
[이모하고 외삼촌들한테 자랑했지!] PM 3:47
그럼 그렇지, 이 촉새.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직 친척들한테까지 글을 공개하기에는 내 글이 조금 부끄러운데. 그 잠깐 사이에 말도 없이 식구들에게 내 프로필을 돌렸을 엄마를 생각하니 황당하기도 하고, 그게 또 귀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들었다. 답장에는 딱 한 가지 감정만 담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끄럽잖아!] PM 3:47
[괜찮아] PM 3:48
민망에 절여진 나를 알아챘는지 서둘러 한마디를 덧붙인다.
[원래 식구가 먼저 구독자가 되는 거야] PM 3:48
그리고 한 문장을 더.
[영원 팬들이잖아] PM 3:49
식구들은 내 영원한 팬이라고. 불쑥 던져진 엄마의 말에 갑작스럽게 코끝이 찡해지는 건 왜일까.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이 돋아나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팬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때는 여러 번 있었다. 5년 전 대학에 합격했을 때, 본가에 내려가니 엄마 아빠의 식당에는 내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부끄러우니까 제발 좀 떼라고 성화를 부려도 몇 달을 식당에 걸어놓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집에 내려갈 때마다, 아, 그 어디 어디 다닌다는 딸? 하면서 손님들의 아는 체를 들어야만 했다. 민망했지만 실은 좀 좋았다. 내가 엄마 아빠의 자랑거리라는 사실이.
2년 전 서울 지하철역에 내 시가 걸렸을 때, 집에 내려가니 이번에는 내 시가 프린트된 액자가 크게 걸려있었다. 원고를 보내준 적도 없는데 그걸 일일이 다 따라 써서 출력한 것인지, 아기자기한 폰트와 배경으로 꾸며진 채였다. 이마저도 손님들 오고 가는 곳에 걸어놓았길래 괜히 한소리를 했다. 난 진짜 시인도 아니고 창피하니까 제발 방에다가 놓아달라고. 물론 엄마 아빠는 듣는 척도 안 했다. 잘 썼는데 왜 창피해하냐고 대꾸할 뿐.
사실 나는 대학도 여섯 개 중 달랑 하나를 붙어 겨우 들어갔고, 지하철역에 시가 걸린 것 또한 여러 번의 공모전을 낙선하고 얻은 결과였다.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고, 그렇게 특출 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 그런 평범함 마저도 사랑스럽게 여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또 아주 작은 성과조차도 너무나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내 가족들이다. 언제나 나에게 애정 가득한 기대와 응원을 보내주는, 영원한 나의 팬.
더불어 친척들 또한 명절에 인사 한 번 잘 못 하는 조카에게 또는 사촌에게, 늘 모자람 없는 애정을 보내준다. 그 크기와 형태가 각자 다 다른 모양이더라도 나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고작 나의 글 하나를 보기 위해 브런치라는 낯선 플랫폼에 들어와 구독 버튼을 눌러주는 것 또한 그 사랑의 모양 중 하나임을 안다.
더 열심히 이 공간을 가꿔서 구독자가 늘어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본다면 물론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수의 사람들로만 조용히 굴러가더라도 아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내 기쁨을 온 사방에 전달해주는 나의 사랑스러운 촉새와, 나의 영원한 팬들이 함께 해주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