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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피드를 밀면 생기는 일

by 김해뜻






"왜 인스타그램 글 다 지웠어?"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때맞춰 걸려온 전화는 조금 당황스러운 얘기로 시작했다.


"뜬금없이 뭔 소리야?"

"아니이. 너 인스타 게시글 다 지웠던데? 그거 갑자기 왜 그랬나 하구."


엄마는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톤이 조금 높아진다. 걱정할 때는 목소리가 살짝 커진다. 전화기 너머 평소보다 다소 높고 큰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푸하하 하고 웃었다.


"와, 그걸 그새 알아챘어? 엄마 진짜 대단하다~"

"대단하고 말고 가 아니라 왜 지웠냐니까~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일. 평소 2시간만 하던 과외를 오늘은 3시간 가까이한 게 일이라면 일이려나. 아니면 과외 학생이 생각보다 모의고사를 못 봐서 조금 심란한 게 일이려나? 사실 이런 일들은 엄마가 말하는 '일'의 범주에 속하기엔 너무 자질구레하다. 엄마에게 말할만한 '일'이라는 게 나한테 있었나,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역으로 향했다. 뭐라고 답할지 생각하는 고 잠깐 새를 못 견디고 전화기 너머로 딸, 하는 재촉이 들린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코를 마시며 답했다. 일은 무슨. 없어, 그런 거. 너털웃음과 함께 덧붙였다.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여태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하는 말이지. 요즘 좀 기운 없어 보이기도 했고.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아이고. 그냥 지우고 싶어서 지웠네요! 또 오버한다, 또."

"오버는! 엄마는 너 그거 싹 다 지운 거 보고 얘가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나,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러게 왜 갑자기 그래, 노인네 불안하게!"

"이것 봐. 환갑도 한참 남으신 분이 노인네는 무슨 노인네야? 진짜 우리 엄마 오버 아무나 못 따라간다니까."


깔깔거리면서 웃으니 저쪽에서도 황당한지 웃음소리가 들렸다. 너, 이 씨. 하면서 괜히 분한 척도 한다. 와중에 근래 들어 밝아 보이는 내 목소리에 조금은 안심이 된 건지, 음량이 살짝 줄어들었다. 이어서 밥은 먹었느니, 과외는 어땠느니, 늘 하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일 일정은 무엇인지도 이야기하고, 얼른 들어가서 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는다. 끊기 직전, 엄마는 다른 때와 달리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무슨 일 있는 거면 나중에라도 말해. 엄마 우리 딸이 말해주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알지?"


어휴, 아니래도 그런다. 끊어! 씩씩하게 대꾸하며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코를 또 마셨다. 추워서는 아니었다.


피드를 다 지웠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조금 기분이 울적해서. 세상 사람들은 나 빼고 다 잘, 즐겁게 사는 같은데 내 일상은 무료함 속에 잠잠히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따지자면 계정이나 어플을 지워서 다른 사람 사는 얘기를 안 보면 될 일인데 굳이 내 기록이 담긴 피드를 다 밀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사실 나는 정답을 안다.


유치하게도 누군가 알아채 주기를 바랐던 거다. 행복한 순간들의 기록을 굳이 지우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가랑비처럼 내린 공허함에 흠뻑 젖어 정신을 못 차리는 요즘의 내 일상을. 누군가 알아채서 '무슨 일 있냐'라고 물어봐주기를 내심 바랐던 게 맞다. 다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누군가'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새 게시글이 올라오는 것도 아닌데, 굳이 프로필을 눌러 또 굳이 피드를 구경하는 것은 날 정말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이 아닌 이상 어려운 일이다. 텅 빈 피드를 보고서 지레 걱정하며 내 안부를 물을 만큼 호들갑스러운 사람도 주변에 별로 없다. 그러니까 오직 엄마만이, 타지에 사는 자식들 일상을 보고 싶어 낯선 SNS를 들락날락거리는 엄마만이 내 사라진 피드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그 속에 담긴 딸의 울적함을 눈치채는 것도,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추궁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에 넘어가는 시늉을 해주는 것도, 전부 다.


나는 종종 사랑에 대해 고민한다. 사랑이란 뭘까?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 것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놀랍게도 사랑에 대한 목격은 그저 그런 일상 속에서,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오곤 한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작은 행동 하나하나도 눈여겨보는 것이 사랑이고, 목소리만 듣고 그날의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도 사랑이고, 거짓된 말에도 알았다 넘어가 주는 것도 사랑이고, 더 말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도 사랑이다. 엄마는 나를 이렇게 사랑한다.


누군가 힘든 것을 알아줬음 하다가도 한 사람에게만큼은 씩씩한 척, 괜찮은 척하고 싶은 것이 사랑이고, 걱정하는 목소리를 떠올리면 웃음과 눈물이 같이 나오는 것도 사랑이라면, 나는 이렇게 엄마를 사랑한다.


내일은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게시글을 올려야겠다. 오늘도 염려하는 누군가의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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