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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사랑

그들의 작은 전시관

by 김해뜻




부모님께서는 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신다. 길고 긴 코로나로 인해 집에 간지도 꽤 되었고, 차피 서울에서 하는 일도 딱히 없던 나는 당분간 집에서 쉴 목적으로 본가에 내려왔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서울에서 코로나 검사까지 받고서 말이다.


우리 집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자면 1층은 손님들이 이용하시는 식당, 1.5층은 우리 가족의 공간, 2층과 3층은 객실로 운영되고 있다. 오후 4시쯤 도착한 나는 방에 짐을 놓고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4시면 슬슬 손님들의 저녁식사 준비로 바쁠 엄마를 돕기 위해서였다. 사실 말이 돕기 위해서이지, 옆에서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쫑알거리는 게 주된 목표이기도 했다. 나는 엄마 옆에 착 달라붙어서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오늘 저녁 메뉴가 무엇인지, 아빠는 언제 오시는지, 오빠는 뭐하는지, 손님은 몇 분이며 오늘은 몇 상을 차려야 하는지 등등을.


내내 시끄럽게 떠들던 내 말문이 막힌 건 벽에 걸린 한 프린트물을 발견한 직후였다. 폰트는 명조체, 크기는 한 16포인트 정도 되려나? 무튼 큼지막하니 출력된 것의 정체는 재작년 내가 썼던 시였다.


사실 엄마 아빠의 이러한 전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전에 지하철역 시 공모에 내 시가 당선되었을 때는, 지인에게 부탁해 그 시를 큰 액자로 출력해 걸어놓았던 전적이 있다. 그것 또한 1층에 걸어두느냐 마느냐로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으나, 부탁까지 해 만든 정성을 봐서 하나는 1층에, 남은 하나는 방에 놓기로 합의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벽에 걸린 시는 '주머니 시'라는 작은 시집에 수록된 내 시였다. 이것까지 이렇게 걸어놨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또다시 화끈거리는 얼굴을 느끼며 엄마 곁으로 다가가 소곤소곤 말했다. 저건 또 언제 붙였어? 떼도 되지?


엄마는 뭐가?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가, 내가 가리키는 것을 보고서는 푸하하 하고 웃었다. 떼도 된다는 대답은 안 돌아왔으나 나는 서둘러 대답했다.


"뗀다? 알았지?"


나는 손님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잽싸게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종이는 압정 네 개로 튼튼히 고정되어있었다. 압정을 빼려고 보니 벽이 무척 딱딱해 잘 빠지지도 않았다. 나참, 잘 들어가지도 않는 걸 어떻게 박아놨대. 조용히 중얼거리며 네 개의 압정을 제거한 후, 종이를 얼른 방에다 가져다 놓았다. 뒤에서 엄마의 억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엄마가 일일이 다 타이핑해서 뽑은 건데!"


민망해하는 내 모습이 와중에 웃겼나 보다. 웃음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나는 성공적인 철거 작업 후 만족스럽게 저녁 식사를 했다.


손님들이 모두 올라가시고 테이블을 치우는 중이었다. 테이블 옆에 있던 수납장 안에는 여러 가지 책이 꽂혀있었다. 낚시 잡지, 섬 여행 안내서, 안전 책자 등등. 그중에 단연 눈에 띈 것은 맨 앞에 놓인 노란색 책 한 권이었다. 표지에는 빨간색 보드마카로 큰 글씨가 적혀있었다.



[ 우리 딸이 쓴 작품 수록 ]


이번에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건 왜 안 보이나 했더니, 여기 떡하니 있었네. 그 긴 글을 하나하나 타이핑해 걸어두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차마 이것까지 방에다 가져다 두는 건 엄마 아빠의 애정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나는 그냥 책을 남겨두고 돌아섰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사진 찍어놔야지. 볼 때마다 웃음이 나는 사진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하는 애정표현을 다소 어려워하는 우리 엄마 아빠는, 가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나를 향한 사랑을 뽐내고는 한다. 커다란 액자로, 크기가 16쯤 되어 보이는 큰 글씨로, 빨간색 보드마카로. 내가 집에 와 직접 확인하기까지 전까지는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우리 집 1층 벽에는 그래서 사랑이 걸려있다. 이곳을 오고 가며 그 사랑을 목격한 손님들은 아마 이 집의 딸이 가진 글솜씨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빈말로나마 자식이 글을 쓰냐며 호응을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은 전시관의 전시 주제는 나의 글이 아니고, 작가 또한 내가 아니다. 작가는 나의 부모님, 주제는 '딸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다. 그리고 아마 이것은 나라는 관객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왠지, 먼 훗날에도 종종 이 작은 전시관이 생각날 것만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 작품에 반해서, 그 사랑이 고마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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